◇ 매번 임기 못 채운 '경찰청장 자리'…朴정부땐 달랐지만
그런데 정부가 경찰청장의 임기를 보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뭐라고 하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다. 경찰수장의 '못 채운 임기'는 경찰이 얼마나 윗선의 '정치적 입김'에 취약한 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지표인 셈이다. 가까운 예로 이명박 정부의 경우 4명의 청장 중 임기를 꽉 채운 수장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반면 박근혜 정부의 경우(탄핵으로 임기가 4년이었음에도)는 4명의 청장 중 2명이나 임기를 채웠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경찰은 치안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극도로 간섭을 자제했다는 말인가.
안타깝지만 정반대일 수도 있겠다. 시간이 지나고 박근혜 정부 시절 사건들이 하나둘씩 베일을 벗으면서, 당시 경찰수장들이 스스로 정치권력에 백기투항해 한 몸처럼 돼버린 것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들기 때문이다.
"세상에 비밀은 없고, 죄지은 자는 벌을 받게 돼 있다"는 옛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바야흐로 박근혜 정부 시절 경찰청장들의 '수난사'가 개봉박두한 모양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경찰청장은 순서대로 김기용, 이성한, 강신명, 이철성 등 4명이었다.
김기용 전 청장은 박근혜 정부가 임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사표를 받은 케이스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 첫 경찰청장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고보니 어쩌면 김기용 전 청장으로선 그때 경질이 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2013년 3월 경질될 당시 김 청장의 임기는 10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어서 다들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알고보니 김기용 전 청장은 '김학의 사건'의 또다른 희생양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김학의 차관 임명을 강행하려던 찰나에 경찰 수뇌부가 '김학의 불가론'을 주장하자 미운 털이 박혔던 것이다.
이후 김기용 전 청장은 당시 갑작스런 경질과 관련해 "제가 뭐 때문에 경질됐다는 건 알고 싶지도 않았다. 정부의 수반이 이제 뭐 잠시나마 일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을 한다는데 거기다 대놓고 고위관료로서 내가 계속 (내 입장만)주장하면 조직에 피해가 오기 때문에 그럴 순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억울한 심정이었겠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일로 김기용 전 청장은 박근혜 정부의 나머지 경찰청장과는 다른 길을 걷게됐는지도 모른다.
김기용 청장이 물러난 뒤 차기 청장 바통은 이성한 부산청장이 이어받았다.
새로 바뀐 이성한 경찰청장은 2013년 4월 첫 인사에서 경찰청 수사국장, 수사기획관은 물론 범죄정보과장과 특수수사과장을 모두 교체했다.
총수가 바뀐만큼 인사 요인이 생겼다고도 할 수 있지만, 수사 핵심 보직(수사기획관)을 4개월만에 바꾼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이로인해 기존의 '김학의 사건 수사팀'은 거의 해체 수순을 밟았다.
만약 김기용 청장이 임기 2년 보장을 근거로 총수의 자리에 버티고 있었다면 '김학의 수사팀 해체'는 오롯이 본인의 '업(業)'으로 남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성한 전 청장은 당시 '김학의 수사팀 해체'와 관련해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른 상태다. 청와대와의 교감 속에 수사팀 좌천 인사를 강행했다면 '직권남용'에 해당할 수 있다. 최근 이 전 청장은 법무법인 광장의 고문직도 내려놓았다.
이성한 전 청장의 임기는 1년 5개월이었다. 이후 새 경찰청장은 강신명 경찰청장으로 바뀌었다. 강신명 청장은 박근혜 정부의 '경찰 아이콘'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대구 청구고를 졸업하고 경찰대 2기였던 강 전 청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과 동시에 대통령 정무수석실 사회안전비서관에 발탈됐다. 사회안전비서관은 청와대와 경찰의 가교 역할을 하는 곳으로 각종 경찰 수사와 범죄첩보 등을 관리하는 경찰 내 요직이자 경찰총수로 가는 첩경인 자리이다.
그때는 '김학의 사건'으로 경찰수장까지 교체되고 수사팀이 해체되는 폭풍우가 쳤던 시기라 강신명 사회안전비서관의 당시 역할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후 강신명 비서관은 서울청장을 거쳐 경찰대 출신 첫 경찰청장에 오르지만, 지금은 박근혜 정부 시절 경찰청장중 가장 먼저 검찰에 소환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가 지난 21일 강신명 전 경찰청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12시간동안 강도높은 조사를 벌인 것이다. 검찰은 강 전 청장이 2016년 총선 과정에서 경찰청 정보국이 작성한 선거 전략 문건을 보고 받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강 전 청장으로선 졸지에 '김학의 사건'과 '2016년 총선 개입 의혹'에 두발이 모두 빠진 형국이 돼버렸다.
임기 2년을 채운 강신명 청장의 후임으로는 이철성 청장이 낙점됐다. 이 전 청장의 경우 음주교통사고 전력 등으로 청문회에서 곤욕을 치렀지만 총수의 자리에 올랐다.
이 전 청장 역시 박근혜 정부 시절 사회안전비서관과 치안비서관을 연이어 역임했고 이후 경찰청 차장을 거쳐 경찰청장에 임명됐다.
검찰은 이 전 청장의 경우 청와대 비서관 시절 경찰의 불법적인 정보수집과 보고 과정에 관여했는지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 전 청장의 경우 박근혜 정부 첫 경찰청 정보국장이기도 했다.
◇ 朴정부 경찰청장들이 역대 청장들과 다른점은?
역대 경찰청장들의 퇴임 후는 대체로 순탄치가 못했다. 검찰청사를 드나든 사람도 적지 않았다. 역대 경찰청장 20명 중 9명이 개인 비리 등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고, 이 중 6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대부분이 뇌물 수수 등 개인비리 관련이었다.
하지만 지금 검찰 수사 대상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박근혜 정부 시절 3명의 경찰청장들은 궤가 조금 다르다.
개인 비리라기 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편향으로 불행을 자초했다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누구보다 공평무사해야할 경찰 조직을 이끄는 수장이 정치적 편향을 가지고 공무를 처리했다면, 그 폐해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개인 비리는 도려내면 되지만, 어그러진 조직 문화를 다시 되돌리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취지에서 법으로 정한 경찰청장의 '임기 2년'도 앞으로 사문화될 지도 모르겠다. 자고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은 자연스레 소멸의 길을 걸었다.
국민들은 권력과 하나가 돼 '임기 2년'을 채운 경찰청장을 보고 싶은 게 아니라, 불법을 도모하는 권력앞에 '임기를 걸고서라도' 맞서는 무장의 기개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