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4월, 어쩌다 불(火)의 재물이 됐나

식목일 즈음, 화마에 휩싸인 방방곡곡
강풍, 건조, 산악…4월 산불의 키워드

강원 고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속초까지 번진 5일 소방대원들이 강원 속초시 노학동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강원도에서 동시다발로 발생한 산불이 급속도로 확산돼 영동지역이 초토화됐다. 매해 4월을 전후해 발생한 강원도 산불의 악몽이 재현된 것이다.

4일 오후 7시 17분께 강원도 고성에서 발생한 산불은 강풍을 타고 고성 토성 천진 방향과 속초 장사동 방향으로 확산했다. 소방당국은 긴급히 초기 진화에 나섰으나 강풍 탓에 큰 불길을 잡는데 실패했다.

급속도로 번진 산불은 속초 도심까지 접근하며 그 기세를 키웠다. 한밤 중 주민들에게는 대피령이 내려졌고, 화마를 피하기 위한 시민들의 피난행렬로 도로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오후 8시 20분께는 고성군 토성면의 한 도로에서 A(58) 씨가 연기에 갇혀 숨지는 등 사망자가 발생했다.

고성과 속초에서 산불 피해가 속출할 즈음인 오후 11시 50분께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에서도 산불이 발생했다. 이 불 역시 강풍으로 빠르게 확산되며 동해시까지 덮쳤다.

수많은 가구와 시설물이 전소됐고, 식목일을 앞두고 푸르러야 할 산림 역시 잿더미로 변했다.

4일 오후 2시 45분께 시작한 강원 인제군 남면 남전리 산불이 해가 진 뒤에도 번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식목일 전, 화마에 휩싸인 한반도


앞선 오후 2시 45분께 강원도 인제에서도 산불이 발생했다. 이 불 역시 강풍을 타고 계속 번지면서 민가까지 위협해 주민들이 대피했다.

4일과 5일 이틀에 걸친 산불은 강원도에만 발생하지 않았다.

5일 부산 해운대구 운봉산 화재가 재발화해 소방 당국이 진화에 나섰다. (사진=부산경찰청 제공)
임야 20ha를 태우고 18시간 만에 꺼진 부산 해운대구 운봉산 산불도 재발화했다. 5일 0시 10분께 부산 해운대 운봉산에서는 진화됐던 불씨가 되살아나며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또 기존에 불이 나지 않았던 기장군 삼각산 인근에서도 오전 2시께 불이 났다.

포항시 북구 창포동 묘공산 산 정상 인근에서 산불이 난 모습 (사진=독자 제공)
포항시 운제산에서도 지난 3일 발생한 산불의 불씨가 되살아나 재발화했다. 다행히 이 곳의 산불은 4시간 30여분만에 진화됐다. 또 묘공산 정상 인근에서도 5일 오전 9시 24분께 산불이 발생했다.

충남 아산 설화산에서도 산불이 재발화했다. 4일 오전 발생한 불은 오후 8시께 진화됐으나 밤사이 불씨가 되살아났고 5일 오전까지도 타오르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의 한 야산에서도 불이나며 전국 곳곳이 화마에 뒤덮인 이틀이었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올해 1월~이달 3일 전국에서 산불 556건이 발생했다. 날짜를 좁혀보면 최근 일주일간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은 70여건이 넘는다.

◇ 강원도 덮친 최악 산불…원인은?

한국전력은 강원도 속초, 고성 산불의 원인으로 지목된 변압기 폭발설과 관련해 "해당 전신주에는 변압기가 없고 개폐기가 달려있다"고 밝혔다.

5일 고성 산불 최초 발화 추정 지역인 강원 고성군 토성면 미시령로에서 정부 및 한국전기안전공사 관계자들이 전신주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변압기는 2만2900v의 고압전력을 일반 가정에서 쓸 수 있는 220v나 380v로 낮춰주는 설비인데, 해당 전신주에는 과전류가 발생할 때 전기를 끊어주는 역할을 하는 개폐기가 달려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이날 CBS노컷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최초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강원도 토성군 원암리 전신주에는 변압기기 아니고 개폐기가 달려있다"면서 "기술적으로 개폐기는 폭발하지 않고 아크를 일으키는데, 당시 왜 아크를 일으켰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강풍이 불었던 만큼 외부 물질이 연결선에 달라붙어 아크를 발생시켰을 수도 있다"고 설명하고, "현장에 투입된 감식반이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원인으로 발생한 화재가 주변 날씨와 조건이 맞아 떨어지며 대형 화재로 확산됐다고 전문가는 분석하고 있다.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박재성 교수는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건조한 날씨 그리고 강한 바람 그리고 3월이나 4월에 영동 지방의 특성이 양간지풍이라고 해서 양양과 간선 사이에 굉장히 강한 돌풍이 불게 된다"면서 "그러한 강풍을 타고 화재가 급속도로 확산됐다"고 설명했다.

또 박 교수는 "강원도의 경사가 심하고 수풀이 우거진 그러한 산악 지형 또한 산불의 요소"라고 설명하며 "강원도에 있는 침엽수림이 송진 등으로 불이 붙으면 급격히 확산이 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밤새 계속된 산불로 인해 국가재난사태 선포가 내려진 5일 강원도 고성에 한 건물과 차량이 불에 타 잿더미로 변해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실제로 4일 오전 강원 영동지역에는 나무가 뽑힐 정도의 강풍이 불어 기상청은 강풍경보를 발령했다. 또 영동지역은 건조경보까지 내려져 있어서 산불이 발생하면 확산하기 좋은 대기환경 이었다.

이에 산림청도 전국에는 산불경보 수준을 '경계'로 발령했지만, 강원도는 그 한 단계 위인 '심각' 단계로 발령하며 산불 방지에 힘을 쏟고 있었다.

하지만 불씨를 타고 번진 산불은 시야 제한이 있던 야간 시간대에 강한 바람을 타고 확산되며 삽시간에 강원도를 휩쓸었다.

정부는 5일 오전 9시를 기해 '재난사태'를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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