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전도연 "영화가 슬프기만 했다면 용기 못 냈을 것"

[노컷 인터뷰] '생일' 순남 역 전도연 ①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생일' 순남 역을 맡은 배우 전도연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사진=매니지먼트 숲 제공)
전도연은 영화 '생일'(감독 이종언)을 두 번 고사했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에 트라우마를 남겼던 큰 사건이었고, 제안받았을 땐 세월호를 소재로 한 장편 상업영화가 만들어지기도 전이었기에 부담이 앞섰다. '밀양'(2007)의 신애 등 비슷한 상황의 역할을 기존에 했다는 점도 고려했다.

하지만 전도연은 끝내 '생일'의 순남이 됐다. 세월호 참사로 아들 수호(윤찬영 분)를 잃고 아무런 생기도 남아있지 않은 채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순남으로.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전도연은 작품을 거절했지만 완전히 놓아버리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종언 감독과는 '밀양' 때 각각 연출부와 배우로 만난 인연이 있고, 거절하고 나서도 순남 캐릭터를 두고 의견을 교류했기 때문이란다.

물론 중요한 건 시나리오였다. 펑펑 울었지만 눈물만 나진 않았다. 전도연은 책을 다 읽고 나서 따뜻함과 후련함을 동시에 느꼈고, 한결 홀가분해진 느낌까지 받았다고 했다.

◇ 따뜻함과 후련함이 공존한 시나리오

이종언 감독은 2015년부터 안산 '치유공간 이웃'에 가서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그때 '생일'이라는 영화를 구상했다. 정확히는,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아이들을 추억하는 자리인 '생일 모임'을 소재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 감독이 보고 들은 것을 옮겨온 시나리오를 보고 전도연은 "엄청 울었다." 그런데 눈물만 나진 않았다. 그는 "따뜻함이나 시원함, 후련함이 있는 거다. 슬픔이 슬픔으로 끝나지 않고, 여운이 길고, 어떤 따뜻함이 있어서 선택했다. 뭔가 한결 홀가분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밝혔다.

단번에 '생일' 출연을 결정하지는 못했다. 전도연은 "되게 여러 가지로 어렵고 부담스러웠다. 세월호 이야기이기도 하고, 또 (비슷한 역할로) '밀양'의 신애도 있었으니…"라며 "감독님은 제가 거절한 것에 대해 충분히 이해해주셨다"고 말했다.

다만, '거절' 이후에도 '생일'에 대한 두 사람의 소통은 계속됐다. 띄엄띄엄 연락을 나누며, 순남이란 인물과 이야기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자꾸 이야기하면서 저도 그 작품을 계속 생각하게 되고, 완전히 놓지 못했던 것 같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만약에 이 영화가 그냥, 슬프고 아픈 거로만 끝났으면 엄두가 안 나서 제가 선택을 못했을 것 같아요. 시나리오 다 읽고 덮고 나서의 느낌은 따뜻함이었어요. '아, 그렇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앞으로 열심히 또 살아야 하지. 어떻게든 살아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생일'을) 남다르게 생각하는 이유는 시나리오가 좋고 나쁨을 떠나서, 제가 이 이야기를 대면하기까지 용기가 필요했던 작품이라서 그랬어요. 다른 작품 선택할 때와 의미가 달랐던 것 같아요. 이 영화가 계속 아프고 슬프자고 이야기하는 영화였다면 용기도 내지 않았을 것 같아요. 다른 이야기라서 제가 용기가 났던 것 같고요. 사는 사람은 살고, 오늘은 힘들지만 이 힘듦을 감사함으로 바꿀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 순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


전도연은 '생일'에서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고 사는 순남 역을 맡았다. (사진=NEW 제공)
캐릭터에 다가가는 방식은 여느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생일'에서만 특별히 다르게 한 부분은 없었다. 단지 지금 느끼는 감정이 '순남'의 것인지 '전도연'의 것인지를 자주 돌아봤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이 여자라면 어떨까, 하는 걸 뜨문뜨문 생각했다는 전도연. 우선 본인과 순남은 다른 존재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내 감정은 이런데 순남이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전도연은 "제가 본 순남을 이해해주고 받아주고 싶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애인 같고 친구 같고 아들 같았던 수호를 잃었을 때, 그냥 '아, 내 아들이 죽었구나'라고만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이걸 받아들이는 시간은 다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순남에겐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봤다. 정일(설경구 분)은 (순남에게) '성격이 이상해졌어'라고 하지만, 순남에겐 필요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저는 존중해주고 이해해주고 싶었다"고 부연했다.

순남은 아픔을 매 순간 드러내지는 않지만, 한 번 폭발하면 걷잡을 수 없는 슬픔과 허무함, 절망감을 안고 사는 인물이었다. 그만큼 제작진은 배우들이 감정을 손상 없이 가져갈 수 있도록, 최대한 촬영을 순서대로 하려고 했다.

전도연이 현장에서 꼭 기억하려고 했던 건 '처음 느낀 감정'이었다. 그는 "이 씬에 대해 제가 처음 느낀 감정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게 사실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더 느껴지는 건 디테일이지, 그 이상의 다른 감정은 없었던 것 같다. 처음 이 시나리오를 접했을 때 감정을 안 잊어버리려고 했다"고 전했다.

◇ 수호와 예솔을 대하는 순남의 마음

순남은 '생일'에 나오는 거의 모든 인물과 연결돼 있다. 아들 수호를 잃은 엄마로 딸 예솔(김보민 분)과 같이 살고, 마트 캐셔 직원으로 일하며 세월호에 대해 무심하고 냉정한 말을 내뱉는 동료들을 맞닥뜨린다. 동시에 치유와 위로를 위해 생일 모임을 준비하는 엄마 아빠들과 이웃, 수호의 친구들과도 만난다.

순남의 슬픔을 관통하는 인물은 죽은 수호였다. 수호를 비롯해 가족과 세상에 품은 마음은, 순남이라는 사람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순남에게 수호와 예솔은 어떤 존재였는지를 물었다.

전도연은 '생일'에서 딸 예솔 역의 김보민, 남편 정일 역의 설경구와 함께 연기했다. (사진=NEW 제공)
"그러니까… 순남한테 예솔이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닌데 수호의 존재가 너무 컸던 것 같아요. 수호는 아들이고 친구이고 애인이고 남편 대신해서 이 가정의 가장처럼 있던 아이니까요. 수호의 죽음으로 인해 예솔이는 (자기의) 그 슬픔을 엄마 앞에서 드러내지 못하잖아요.

예솔이는… 제가 감독님한테 되게 중요하다, 이 씬 너무 중요하다고 한 씬이 식탁에서 (예솔이를) 쫓아낸 다음에 그날 저녁 잠든 예솔이한테 '미안해'라고 하는 씬이었어요. 그 여자는 어떤 감정을 계속 느끼는데, 그걸 어떻게 풀면서 살았을까, 어떻게 내일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 씬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고요. 이런 생활이 익숙하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엄마가 너무 못나서 그래. 미안해'라는 말을 하잖아요. 아마 계속 그러면서 살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그 씬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전도연이 말한 장면은 식탁에서 순남이 예솔을 크게 혼내는 장면이다. 수호의 새 옷은 때마다 사 오지만 자신의 것을 빠뜨리는 엄마를 보며 예솔은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순남은 '오빠는 지금 밥도 못 먹는데 반찬 투정을 하느냐'며 불같이 화를 낸다. 순남이 가장 모질게 표현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항상 예솔이한테 (감정이) 터져 나오는 데에 되게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어요. 예솔이는 항상 그걸(순남의 감정을) 받았었고요. (예솔이는) 그 나이대에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다 거세당했다고 봤어요. 그 씬 찍을 때 리허설을 못 했어요. 대략적인 동선만 알려주고 촬영에 들어갔거든요. 근데 아이가 되게 놀란 거죠. 너무 무서워하더라고요. (웃음) 저도 예솔이 반응이 당황스러워서 대사도 빼먹게 됐어요. 예솔이가 너무 울어서요. 아빠가 예솔이를 안고 나갔죠. (저를) 너무 무서워해서 제가 오라고 해도 안 오더라고요. (웃음) 나가서 진정하고 다시 들어와서 연기했어요. 나중에 들으니 '도연이 엄마가 그렇게 무서울 줄 몰랐다'고 했어요. (웃음)"

◇ 생각지도 못하게 어려웠던 장면

'생일'은 쉴 새 없이 눈물샘을 공략하는 전투적인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이미 겪었던 현실보다 덜 아프게 그린다. 천인공노할 말이나 행동이 나오지 않고, 남은 자들의 오열도 '범람'하지 않는다.

전도연은 순남이 수호가 참사 당일 마지막으로 쓴 카카오톡 메시지를 읽는 장면, 앞서 말한 예솔과의 다툼 장면에서 '순남으로서 울컥울컥했다'고 털어놨다.

가장 힘들었던 장면을 물었을 때도 전도연은 "다 힘들었다"고 답했다. "그때그때 씬이 다 힘들었던 것 같은데, 예솔이하고의 씬은 예솔이에게 모질게 한 것 때문에 되게 많이 아팠다"고 말했다.

배우 전도연 (사진=매니지먼트 숲 제공)
"정말 되게 의외로" 하기 힘들었던 건 정일과 함께한 장면이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가족 곁을 지키지 못했던 정일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이혼 서류를 내미는 장면이었다. 대사는 짧았다. "오래 생각한 거야."

"정일한테 이혼서류 주는 씬에서 아무렇지 않게 '오래 생각한 거야'라고 대사를 해요. 그 한 마디가 되게 어렵게 느껴졌어요, 생각지도 못하게. 이 한 마디가… 그 한 마디 뱉기가 되게 어려웠던 것 같아요. 무슨 마음일까. 뭔가 내가 지키고 있는 것에 대해서 남편조차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는 거였잖아요. 정말 (어렵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씬인데 정말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정일은 '어떤 사정'으로 아들이 죽는 큰일이 벌어지는데도 가족과 슬픔을 나누지 못한다. 돌아온 정일에게 냉담한 순남. 그때 순남은 어떤 마음으로 정일을 대했을까.

전도연은 "정일의 변호사 비용을 대줄 만큼 (사정을) 모르지 않지만, 원망인 것 같다"며 "정일이 있었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 텐데, '너는 가정을 지키지 못했어'라는 원망이 크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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