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재판 나온 현직 판사 "임종헌 지시로 문건 작성"

임종헌 "재판장님 이건 유도신문입니다" 수차례 이의제기
재판부, 사법농단 '스모킹건' USB 정식 증거로 채택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사법농단 재판에 첫 증인으로 나온 현직 판사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제기된 문건들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임 전 차장은 검찰 측 증인신문 중 수차례 이의를 제기하며 날선 모습을 보였다.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임 전 차장의 공판에는 정다주 의정부지법 부장판사가 증인으로 나왔다. 정 부장판사는 2013~2015년 법원행정처에서 기획조정심의관으로 일하면서 당시 기획조정실장이었던 임 전 차장의 지시를 직접 받은 인물이다.

정 부장판사는 2013년 12월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통상임금 판결을 선고한 다음날 정치권과 청와대, 언론 등의 동향을 파악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해당 보고서를 임 전 차장의 지시로 작성한 사실이 있냐는 검찰 측 질문에 정 부장판사는 "네 그렇습니다"라고 답변했다.

이날 검찰의 신문 내용에 따르면 보고서에는 '판결 선고 후 민정 라인을 통해 판결 취지가 잘 보고·전달됐음', '대법원이 재판 과정에서 재계와 정부의 입장을 최대한 파악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임', '재계의 입장을 십분 고려해준 것으로 받아들임' 등의 문구가 적시됐다.

정 부장판사는 "공보관실에서 작성된 문건을 정리한 후 청와대 반응 등을 추가한 것"이라며 "청와대 반응을 기재하게 된 경위나 청와대 법무비서관에게 전달한 부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이외에도 '상고법원 입법추진환경 전망과 대응전략 보고서'에서 현 정부와 사법부 관계 재정립방안 등의 내용을 임 전 차장 지시로 작성했다고 답변했다.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와의 관계 개선 전략을 검토한 부분으로 '재판거래'의 기획이 담긴 부분이다.

이처럼 통상임금과 상고법원,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재판 관련 보고서를 잇따라 작성하면서 정 부장판사 스스로도 문제의식을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정 부장판사는 "(문건들에) 사법부의 권한이 남용된 내용이 많이 포함돼 있었고 비밀스럽게 작성되는 등의 측면에서 부담을 느꼈다"고 답변했다. 민감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임 전 차장에게만 보고하고 다른 심의관들과는 공유하지 못했다고도 덧붙였다.

양 전 대법원장이 당시 역점 사업으로 추진했던 상고법원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는 발언도 나왔다. 정 부장판사는 당시 대법원이 상고법원 입법을 위해 법원행정처 전체 부서가 투입되는 등의 행정력을 동원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어 "상고법원 설치로 인해 사법부 구조 최상위에서 인사권을 쥔 대법원장의 눈치를 더욱 심하게 볼 것이라는 우려를 표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또한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비서실에 근무했던 성창호 부장판사로부터 수시로 대법원장의 의중을 전달받았다고 증언했다. 성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에게 진행 중인 업무를 한 달에 한 번씩 보고하도록 독촉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다만 당시 법원행정처의 분위기가 매우 관료적이고 강압적이었다거나 다른 심의관들이 임 전 차장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기 어려워 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정확히 아는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날 임 전 차장은 증인신문에 앞서 "재판부에 전향적인 소송지휘권 행사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검찰이 증인에게 유도 신문을 통해 원하는 답변을 이끌어 내거나 예단을 갖게 할 우려가 있는 신문이 이뤄질 경우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겠다는 취지다.

실제로 검사 측 증인신문 과정에서 임 전 차장은 수차례 "유도신문"이라거나 "증인이 직접 경험한 사항이 아니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특히 미리 검찰 측이 교부한 신문 순서를 보며 검찰이 증인에게 질문을 하기도 전에 이의를 제기했다.

검찰 측은 "증인신문을 하기도 전에 이의를 제기 하고 신문 중과 증인 답변 후에도 또 이의를 제기하면서 절차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며 "검사의 신문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나씩 가르치려는 듯 지적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판부는 "재판부가 신문을 허용한 것은 이미 적합하다고 본 것이고 출석한 증인은 검사가 묻고자 하는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에 따라 답변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신문이 끝난 후 반대신문 통해 지적하라"고 경고했다.

한편 이날 증인신문에 앞서 재판부는 검찰이 임 전 차장의 사무실에서 압수한 휴대저장장치(USB)를 공판기일 5회 만에 증거로 채택했다. 임 전 차장 측은 위법수집증거인 USB의 증거능력이 부인돼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해왔지만 법원은 압수수색 과정은 물론이고 USB 원본이 반출된 부분 역시 적법하다고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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