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경영에 경종 울린 주주혁명…떨고 있는 대기업 총수들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국민연금발 '주주혁명'으로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이 이사직에서 퇴출당하자 관행이란 이름 아래 전권을 휘둘러 오던 대기업 오너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대한항공 지분 33%를 보유한 조양호 회장은 부실경영과 황제경영에 분노한 소액주주들의 결집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국민연금이 지난 25일 적극적인 주주권행사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국민연금보다 세곱절이나 많은 지분을 가진 조양호 회장이 맥없이 쓰러질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대한항공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은 11.56%의 주식을 보유해 조 회장 연임 저지를 위해서는 22%가량의 지분을 모아야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조양호 경영권 박탈 쪽에 힘을 실어준 주주지분은 35.9%로 국민연금을 제외하고도 24.34%가 결집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7월 의결권 행사 지침을 도입한 국민연금이 올해들어 단순한 의결권행사에서 확대된 주주권행사 쪽으로 진일보하면서 연금의 주주권행사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아졌고 계속 되풀이되는 조씨일가의 갑질과 부실.비리경영의 피로감도 극에 달했다.

그동안 조씨일가의 전횡과 부실경영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대응책 없이 지켜보기만 하던 주주들에게 국민연금의 조양호 연임반대 결정이 극에 달한 불만을 한 곳으로 모아내는 촉매제가 된 것으로 분석된다.

김남근 민변 부회장은(대리인) "이번 주주총회는 재벌 총수가 회사내부에서 회사에 손해를 입힌 행위에 책임을 물은 첫 사례로, 이를 계기로 회사 내부를 개혁할 수 있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고 평가했다.


채이배 의원은 "주주의 힘으로 재벌총수가 경영에서 퇴출되는 좋은 선례를 남긴 것 같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이번을 기회로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에 힘이 실리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국 대기업 사상 처음으로 오너가 주주의 힘에 의해 퇴출당하는 일이 벌어지자 대기업 소유주들의 긴장감은 어느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 이한형기자
국민연금이 주주권행사에 나서고 소액주주나 외국인 주주들이 이에 호응하는 형태의 제2, 제3의 주주혁명은 언제나 반복될 수 있고 소액주주들이 나설 경우 지분 격차가 아무리 커도 퇴출위기로 내몰릴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상훈 국민연금 수탁위원(변호사)은 대한항공 주총 직후 "국민연금이 합리적 선택을 했다"면서 "앞으로도 적극적 역할을 기대하고, 스튜어드십코드의 도입 취지에 맞춰 적극적으로 기업을 감시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2019년 들어서만 대한항공 조양호 이사 연임 저지 건 외에도 ▲남양유업의 배당확대, ▲현대그린푸드의 배당 관련 공개관리기업 지정 이슈, ▲한진칼의 정관변경 제안(3월29일), ▲SK(주) 사내이사 선임반대 등을 통해 대기업 소유주들의 전횡을 견제하는데 발벗고 나서고 있다.

국민연금에 따르면, 2017년 12월말 현재 국민연금이 지분 5%이상 보유한 국내기업 숫자는 286개이며 이 가운데 지분이 10%를 넘는 기업체 수는 97개로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은 모두 국민연금발 주주혁명의 사정권내에 들어 있는 상황이다.

경제계에서는 국민연금이 민간기업의 경영권을 좌지우지하는 '연금사회주의'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반대론과 대한항공 사례는 주주가치와 기업가치 훼손시 경영권을 잃을 수도 있다는 선례가 됐다는 찬성론이 엇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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