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성접대'… 재수사 위해 짚어야 할 포인트

피해 여성들의 진술 신빙성에 대한 판단
수사기관에 미제출된 동영상 자료 더 있나
사라진 디지털 자료 3만건의 행방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진=자료사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의혹을 두고 검찰과 경찰의 진실공방이 가열되는 상황에서, 대검 진상조사단이 재수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있다.

◇ 피해 여성들 진술의 신빙성

지난 1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열린 검찰 과거사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및 고 장자연씨 사건 진상 규명 촉구 기자회견'에서 배우 윤지오씨가 '한국여성의전화'와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관계자들과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에 따르면, 검찰은 김 전 차관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는 피해 여성들의 진술이 법적 증거로서 효력을 갖기 어렵다고 봤다.

성접대 의혹과 관련 있는 여성 30여명을 포함해 참고인 등 총 64명을 조사했는데 이들의 진술에 일관성이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본 것이다.

2013년 1차 검찰 조사 당시 성관계 동영상에 등장하는 피해자를 특정하는 과정에서, 피해여성 A씨는 다른 피해여성 B씨를 지목했지만, 오히려 B씨는 본인이 아니라고 부인했다고 한다.

이듬해 A씨의 재수사 촉구로 2차 조사가 시작되자 돌연 A씨가 영상 속 인물이 본인이라고 진술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당시 검찰은 건설업자 윤중천씨로부터 강제로 성관계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C씨의 진술도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C씨는 윤씨가 건네준 음료를 마시자 정신을 잃고 강간을 당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대검찰청에서 압수물을 포렌식한 결과, C씨와 윤씨가 연인관계인듯한 정황을 드러내는 문자 메시지가 발견됐다고 한다.

이밖에 서로 동거를 하기도 한 점 등을 볼 때 C씨가 '성범죄 피해자'로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게 검찰 설명이다.

이에 반해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피해 여성들이 일관된 진술을 했다"고 주장한다.

김 전 차관 등 유력 인사들이 수시로 별장을 방문해 강제로 성관계를 강요했다는 점에 대해 피해 여성들이 일치된 진술을 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해당 진술들이 김 전 차관의 특수강간을 입증하는 데 있어 '핵심'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경찰에서와 달리 왜 검찰 수사단계에서만 증거로 사용하기 어려운 진술을 했다고 주장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당시 수사팀에 있던 경찰 관계자는 "장기간 가혹한 범죄에 시달린 피해 여성들은 본인들에게 우호적인 태도의 사람이 질문해도 위축되고 똑바로 답변하기 어렵다"며 "당시 검찰이 어떻게 조사를 진행했는지 낱낱히 봐야한다"고 강조했다.

또 C씨에 대해서도 "C씨는 애초 성폭행 피해자가 아닌 사기 피해자로 송치했다"며 "검찰이 다른 얘기를 하면서 논점을 흐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1·2차 수사 당시 수사기관에서 피해 여성들의 진술이 김 전 차관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 있어 핵심이라고 본 만큼 이에 대한 판단이 조사단의 선결과제라는 분석이 나온다.

◇ 미공개 동영상이 더 존재하나?

장자연(왼쪽)ㆍ김학의 (CG)(사진=연합뉴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와 경찰은 모두 김 전 차관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성관계 동영상'이 아닌 피해 여성들의 진술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동영상만으로는 범죄시기나 범죄사실을 특정하기 어려워서다. 현재까지 검찰이 확보한 동영상 자료는 피해 여성들과 김 전차관·윤씨의 진술 중 누구의 말에 신빙성이 있을지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별도자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사단이 지금껏 수사기관에 제출되지 않은 동영상을 찾아낸다면 국면이 달라질 수 있다.

당시 수사팀에 있던 검찰은 피해 여성 A씨로부터 제출되지 않은 동영상이 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한다.

검찰에 따르면 A씨는 조사 과정에서 윤씨와 성관계를 맺은 영상이 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해당 동영상은 1·2차 조사 당시 수사기관에 제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해당 동영상에 윤씨나 김 전 차관의 범죄사실이 담겨 있다면 새로운 증거가 발견된만큼 조사단의 조사에 힘이 실릴 수 있다.

불법촬영 혐의는 공소시효가 7년으로 2015년에 시효가 이미 끝났지만, 특수강간 혐의는 공소시효가 15년이어서 수사대상이 될 수 있다. 특수강간 혐의는 흉기나 그 밖의 위험한 물건을 지녔거나 2명 이상이 합동해 강간할 경우 성립한다.

◇ 사라진 3만건 자료의 행방

앞서 조사단은 지난 4일 "경찰이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확보한 3만건 이상의 디지털 증거가 송치 과정에서 누락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해당 자료에는 각종 고화질의 동영상 자료 등 김 전 차관 사건의 중요 물증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윤씨로부터 각종 향응을 받은 고위인사, 즉 '윤중천 리스트'에 대한 수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조사단은 별장 성접대 의혹과 관련해 고위간부와 유력 정치인, 기업 대표 등이 부당한 청탁과 함께 성상납 등 향응을 수수했는지를 확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단이 해당 자료를 확보할 경우 사회 각계 고위인사에 대한 조사로도 확대되거나 검찰 재수사를 이끌어낼 가능성도 있다.

지난 2013년 당시 수사기관은 윤중천 리스트에 대해 수사를 시도했지만 뚜렷한 혐의점을 잡지 못해 답보상태에 그쳤다.

이와 함께 3만건은 당시 수사를 진행한 수사기관의 부실수사 및 은폐의혹에 대해서도 단서를 줄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검찰은 경찰이 해당 자료를 넘기는 과정에서 누락했고 끝내 폐기했다는 입장이다. 반면 경찰은 별장 성접대와 관련된 자료는 누락 없이 모두 넘겼다고 말하고 있다.

경찰 측은 자료들을 압수물 목록에 담아서 넘겼고, 이는 '킥스(KICS·형사사법기관 전자업무 관리 시스템)'에도 명확히 흔적이 남는다고 주장했다.

사실관계를 두고 양측이 진실공방으로 치닫는 양상인만큼, 향후 조사단의 조사 결과에 따라 자료 누락에 대한 책임소재가 결정될 전망이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