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대신 '초등생 콜걸'…'관음증' 키우는 언론

클럽 성범죄 고발하는 기사 인용 보도하며 자극적 제목
선정적인 사례에만 초점·여자 초등학생 성적 대상화에 비판
"'콜걸'이라는 단어 필수적 아냐…언론들은 순화했어야"
"제목 '섹시'해야 읽힌다는 생각…저널리즘 가치 잃었다"
"기사 본질 자체 흐려지고 대중 관음증만 자극"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지난달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클럽 '버닝썬' 출입구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버닝썬' 사건으로 인해 클럽 내 성범죄 심각성이 대두된 가운데 자극적인 제목을 앞세운 보도들이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일보는 최근 서울 강남 클럽을 그린 소설 '메이드 인 강남'을 집필한 주원규 작가를 인터뷰 했다. 주원규 작가는 이 인터뷰에서 소설 속에 담긴 강남 클럽의 성매매·마약 보급·경찰 유착 등의 실태를 밝혔다. 문제는 해당 인터뷰를 인용한 타 매체들의 보도에서 발생했다.

주원규 작가는 기사에서 "콜걸 중에는 초등학교 6학년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다른 매체들이 인용 보도를 하면서 '초등생 콜걸'이라는 대목을 부각시켜 제목에 넣은 것이다. 일간지인 중앙일보를 비롯해 온라인 매체 인사이트, 지역지인 새전북신문 등이 여기에 포함됐다.

해당 기사들은 곧장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졌고, 당초 강조하려던 강남 클럽 내 각종 범죄 실태들은 '초등생 콜걸'이라는 단어에 가려졌다. 범죄 실태를 고발하는 기사임에도 선정적·자극적 사례에만 초점을 맞춘 언론에 비판이 쏟아졌다. 초등학생에 '콜걸'이라는 단어가 더해져 생산되는 왜곡된 성적 대상화에도 우려를 표했다.

한 독자(@give**********)는 "초등생 콜걸이 아니라 아동 성폭행이라고 단어 고쳐쓰라. 역겨워 죽겠다"고 일침했고, 또 다른 독자(@white******)는 "초등학생에게 약을 먹여서 성매매하라고 넘긴 걸 두고 어떻게 '초등학생 콜걸'이라고 부르느냐"고 단어 자체의 문제점을 짚었다.


'초등생 콜걸'이 성범죄 심각성 전달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단어가 아닌 이상, 인터뷰 대상이 실제 이 같은 발언을 했다 하더라도 언론은 순화시켜야 했다는 지적이다. 방송 프로그램들에서 비속어 등을 무음 처리 하는 것과 비슷한 논리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아주 어린 아이들까지 성매매 대상이 됐다는 의미를 꼭 '콜걸'이라는 단어를 써야 전달이 되는 건 아니다. 고발 차원에서 인터뷰이가 그런 단어를 썼다고 해도 언론은 자극적이고 불필요한 용어를 제목으로 뽑거나 하지 않고 순화해야 한다. 방송에서도 욕설이나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단어의 경우 자체 처리를 한다. 마찬가지 개념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결국 저널리즘 가치보다는 조회수를 중시하는 언론사들의 행태가 반복적으로 이런 상황을 만드는 것이라고 봤다.

최 교수는 "늘 이야기하지만 클릭을 유도해 조회수를 높이려는 의도밖에는 없다고 본다. 소위 제목을 '섹시'하게 뽑아야 본다는 생각으로 일부러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이용한 거다. 저널리즘의 가치를 잃고 선정성과 자극성만 남았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관음증'을 자극하는 기사들이 양산될수록 독자들 또한 성범죄 등 심각한 사건 자체를 흥미 위주로 보게 된다. 모방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최 교수는 "기사 본질 자체가 흐려진다. 여성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연령 관계없이 무차별적으로 일어나는 것에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데 대중의 관음증만 자극한다. 모든 남성 독자들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이런 성매매 시스템이 있다는 걸 알고 찾아 나서 모방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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