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널 : 표준 FM 98.1 (07:00~07:30)
■ 진행 : 임미현 앵커
■ 대담 : 홍제표 기자
◇ 홍제표 > 트럼프의 '변심'입니다.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지 2주일 가까이 되면서 원인 분석은 어느 정도 이뤄졌습니다. 북미 간에 주장이 엇갈리긴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내 정치적 이유로 인해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전략으로 판을 깼다는 게 일반적 분석입니다. 저도 지난 주 이 시간에 '워싱턴 정치'라는 변수에 대해 방송한 적이 있지만 이후 상황은 더 안 좋아진 것 같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노선 전환이 일시적 미봉책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거죠.
◆ 임미현 > 다시 말하면, 북한이 요구했던 '단계적·동시적 해결'을 수용하는 듯하더니 '일괄타결'로 입장을 바꿨다는 거죠?
◇ 홍제표 > 네, 미국이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이라고 표현한 일괄타결 방식은 북핵협상이 수십년 제자리 걸음을 했던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비핵화부터 해라, 보상은 그 후에 하겠다'는 미국 요구에 북한은 '뭘 믿고 무장해제 하란 말이냐' '패전국 다루듯 한다'는 식으로 강력 반발해왔습니다. 그래서 바뀐 게 단계별로 나눠서 차근차근 신뢰를 쌓으며 문제를 풀자는 방식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임 오바마 행정부와 비교해 북핵문제에 관한 한 결정적으로 달라진 부분이 탑다운 방식과 바로 이 단계적 접근법입니다. 이렇게 해서 북핵 해결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서로 가격이 안 맞으면 흥정(협상)을 통해서 계속 좁혀져나갈 여지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일괄타결, 즉 과거의 방식으로 원점 회귀해버린 것이죠.
◆ 임미현 > 그렇다면 상황이 생각보다 좋지 않은 셈이군요
◇ 홍제표 > 얼마 전까지만 해도 회담 결렬에도 불구하고 낙관적 요소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두 정상이 여전히 신뢰를 표시하고 있고, 한미군사훈련이 축소되거나 아예 중단되는 등의 퇴행 현상도 없었습니다. 관심을 끄는 일괄타결 방식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권이 세지긴 했지만 일시적 현상 정도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지난달 27일 밤과 28일 오전을 기점으로 급변하기 시작하더니 1주일쯤 지나면서 기본 전략처럼 거의 굳어졌습니다. 단계적 방식을 설파하던 '온건파' 스티븐 비건마저 어제 일괄타결을 의미하는 '빅딜' 수용을 압박하며 노선을 '전향'해버렸습니다. 지난 8일에는 미 국무부 고위 관리가 "트럼프 행정부 내 누구도 단계적 접근법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제재 면제 여부에 대해 '노(No)'라고 일언지하에 거절한 바로 그 당국자입니다.
◆ 임미현 > 미국의 태도 급변, 왜 그런 걸까요?
◇ 홍제표 >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응변이 효과를 보니까 그대로 굳어져 버린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노이 정상회담 와중에 개최된 '코언 청문회'를 덮기 위해 '빅딜 아니면 노딜' 전술을 썼고 결국 성공했습니다. 뉴스를 더 큰 뉴스로 덮은 것입니다. 다만 이것은 단지 하루 이틀 사이에 벌어진 것은 아니고 최소한 며칠 전부터 징후가 있었습니다. 볼턴이 비건의 대북협상 방식에 대해 그 상관인 폼페이오에게 강력 항의했다는 워싱턴포스트 등의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북한이 약점을 보이자 칼자루를 쥐었다고 보고 압박을 가하는 것이죠. 득의양양해진 것입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의 말을 들어보시겠습니다.
"볼턴 역할이 부각되는 상황이지만 근본적으로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없다는 점에서 강경책이 전개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당분간 이런 기조는 지속될 것으로 본다. 왜냐면 현재 북한에 대한 제재가 먹히고 있다는 인식이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전략적 인내 차원의 접근을 당분간 할 것으로 본다"
◆ 임미현 > 좀 전에 언급한 북한의 약점이라는 게 뭘 말하는 거죠?
◇ 홍제표 > 하노이 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1분' 발언 기억나실 겁니다.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우리에게 충분히 이야기 할 시간을 주시면 좋겠다. 우리는 1분이라도 귀중하니까" 한 발언입니다. 김 위원장의 외교적 미숙함을 드러낸 결정적 장면이라고 생각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서두르지 않는다" 발언과 완전 대비되는 것입니다. 물론, 북한이 경제제재로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을 미국이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이런 발언이 방송을 타고 생생하게 공개된 이상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좋든싫든 이 약점을 파고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 위원장으로선 제재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포장, 또는 위장해서 협상력을 높일 필요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북한은 경제제재를, 최소한 대외적으로는, 돈의 문제가 아닌 정치의 문제로 간주해왔습니다. 북미 간 신뢰의 징표로 본다는 것인데, 김 위원장은 이런 측면을 간과한 셈입니다. 1차 싱가포르 회담의 성과를 믿고 너무 과신한 것 같습니다.
◆ 임미현 > 지금으로선 미국은 물론 북한도 꿈쩍하지 않을 것 같은데, 아까운 시간이 흘러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 홍제표 > 우선 말씀하신대로 천재일우의 기회가 자칫 허무하게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입니다. 볼턴이 말했듯 현재 레버리지(지렛대)를 잡았다는 미국은 북한이 항복할 때까지 밀어붙일 기세입니다. 그렇다고 북한이 물러나기도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향후 대선정국에서 '워싱턴 정치' 변수가 작용하면서 예측불허의 상황이 될 공산이 큽니다. 정세 관리에 실패할 경우 강 대 강 대치 끝에 2017년 같은 무력충돌 위기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죠. 물론 반대의 경우도 가능합니다. 재선을 위해서는 외교적 업적 쌓기가 절실하기 때문에 올 연말쯤 극적 대타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무역전쟁에도 불구하고 경제 실적이 시원치 않은 판에 외교도 이란핵에 이어 중거리핵협정(INF)마저 파기했고 중동 상황도 좋지 않은데다 유럽연합(EU)과의 관계도 최악입니다. 북한 외에 돌파구가 없는 것입니다. 문정인 청와대 외교안보특보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클린턴도 실패했다. 부시도 실패했다. 오바마도 실패했다. 그런데 나는 단 한 푼도 안 쓰고 북한 핵문제 해결했다. 이런 칭송을 듣고 싶어하는 대통령이라고 한다면 아직도 외교적 타결의 여지는 상당히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낙관론적 전망이기 때문에 한국의 주체적 노력, 촉진자로서의 중재 역할은 어느 때보다 커졌습니다. 그야 말로 비핵화 평화 프로세스가 최대 고비를 맞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한 마디 덧붙인다면, 트럼프 대통령님, 노벨상 꼭 받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