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하마평과 억측 속에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던 개각 문제에 마침표를 찍은 만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다시금 고삐를 죌 여건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하노이 회담이 비핵화 합의 없이 끝난 상황에서 다음 주 문 대통령이 방문하는 브루나이와 말레이시아, 캄보디아가 그 첫 무대가 될 전망이다.
9일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10일부터 6박 7일간 일정으로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회원국인 세 나라를 순방한다.
문 대통령이 집권 중반기를 맞아 경제 활력 제고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는 점에서 이번 순방은 신남방정책을 내실화한다는 데 주된 목적이 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목적은 하노이 회담 결렬 후 첫 정상외교인 이번 순방에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보, 평화 모멘텀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전날 브리핑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관련한 우리 정부의 정책과 노력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3개국을 중심으로 아세안 차원의 지속적 지지와 협조를 확인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한반도를 넘어 역내의 평화·안정을 확보하고 증진하기 위한 협력의 토대를 단단하게 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이번 순방국 중 브루나이와 캄보디아가 북한과 수교를 맺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피살 사건으로 북한과 외교 관계를 중단한 말레이시아 역시 마하티르 모하맛 총리가 직접 나서서 외교 관계를 재개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은 세 나라 정상을 만나 하노이 회담 결렬 후 소강상태에 접어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힘을 실어달라고 당부할 것으로 보인다.
며칠 새 북한의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복구 움직임 등이 북미 관계에 새로운 변수로 등장한 만큼 문 대통령이 이번 순방에서 한반도 상황과 관련해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두 차례 북미정상회담이 싱가포르와 베트남에서 열리는 등 아세안이 한반도 비핵화의 상징적 장소로 떠오른 만큼 순방지에서 발표되는 문 대통령의 메시지 역시 또 다른 무게감을 지닐 수 있어서다.
하노이 회담 결렬,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문제 등 북미 대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에도 북미 양측의 대화 의지가 확인되고 있는 점은 순방을 앞둔 문 대통령에게 힘이 될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 그리고 김 위원장과 나의 관계는 매우 좋다"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북한은 8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2차 북미정상회담이 합의문 없이 결렬된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 그 책임을 미국에 돌리면서도 미국을 향해 노골적인 비난은 하지 않았다.
북미 모두 지난해부터 이어 온 협상의 판을 완전히 깨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만약 그(김 위원장)가 서로의 이해에 부합하지 않는 어떤 것을 한다면 나는 부정적으로 놀랄 것"이라고 말해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복구 움직임에 여전히 경계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은 이번 순방 등을 통해 상대를 향한 북미 양측의 '압박 전술'이 비핵화의 판을 흐트러뜨리기 전 비핵화 대화를 다시금 추동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