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팔십줄 넘어 익힌 한글, 일상이 설레기 시작했다"

가부장제 때문에 한글 못 배웠던 '칠곡 가시나들'
평균 연령 86세, 한글 배우며 교복도 입고 시도 써
글자 배우며 일상에서 끊임없이 설렘 끄집어내
때로 유머러스하게, 때로 쿨하게 삶의 상처 표현
나이 팔십 넘어 찾게온 설렘, 방해하는 건 자녀들
노년에 대한 고정관념 깨자 '웰컴 투 에이징’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15~19:55)
■ 방송일 : 2019년 2월 22일 (금요일)
■ 진 행 :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
■ 출 연 : 김재환 감독


◇ 정관용> 인생 팔십줄 넘어서 한글을 배우고 가나다라 익히고 이 시를 쓰시고. 그러다 보니 온 세상이 놀거리, 볼거리로 가득하다 이런 일곱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휴먼 다큐멘터리 칠곡 가시나들. 다음 주에 개봉을 앞두고 있어서 오늘 이 영화를 만든 김재환 감독을 초대했습니다. 김재환 감독 어서 오십시오.

◆ 김재환> 안녕하세요, 김재환입니다.


◇ 정관용> 여기 등장인물이 일곱 분이에요?

◆ 김재환> 네, 일곱 분입니다.

◇ 정관용> 모두 다 80대?

◆ 김재환> 평균 나이 86세고요. 1930년대생이시고 제일 연세가 많으신 분이 아흔 되십니다.

◇ 정관용> 그런데 다 어머니뻘 이상인데 가시나들이라고 해도 돼요?

◆ 김재환> 가시나들이요? 그분들이 스스로 우리는 칠곡 가시나들 이렇게 부르시거든요. 그리고 약간의 뭐 반발심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할머니들이 한글을 못 배우신 이유가 가시나들 가르치면 뭐 해, 하는 가부장적인 이제 그런 문화의 피해를 고스란히 당하신 분들인데 그래, 우리 칠곡 가시나들이다 이런 카운터 펀치 같은 느낌도 있죠.

◇ 정관용> 어떻게 이러한 영화를 만들 생각을 하셨어요?

◆ 김재환> 제가 이제 어머니 속을 썩이는 작품들이 많이 제작을 해 왔거든요.

◇ 정관용> 어떤 거죠?

◆ 김재환> 트루맛쇼, MB의 추억, 쿼바디스 그리고 이제 양쪽에서 욕을 먹었던 미스 프레지던트. 좌우에서 그냥 한쪽은 빨갱이다, 한쪽은 태극기부대를 미화했다 이제 이러면서 다 욕을 먹었던 작품인데 어머니가 되게 마음고생을 하셨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식사를 하는데 제가 만든 영화를 항상 친구들이랑 이렇게 영화관에서 쫙 일렬로 앉아서 보시는데.

◇ 정관용> 어머니 친구분들과 같이.

◆ 김재환> 권사님들이세요. 그런데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 목사님한테 예수 믿는 사람 맞습니까 이런 질문을 던지니까 마음이 편하시지가 않았죠.

◇ 정관용> 그런 영화도 있었죠. 성직자 비리를 다룬 쿼바디스.

◆ 김재환> 친구들이랑 까르르 할 수 있는 영화 한 편만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어머니도 연세가 드셨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제 그러던 차에 2016년 초였어요. 김사인 시인이 진행하는 시시한 다방이라는 팟캐스트가 있는데 거기에 칠곡 할머니가 나오셔서 시를 읽어주시는 거예요. 가슴에 팍 꽂혔고 한편으로는 그래, 이번에 효도 하자 이런 생각이 있었습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그 김사인 시인의 팟캐스트를 듣기 전에는 이 칠곡에 이런 할머니들이 계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죠?

◆ 김재환> 전혀 몰랐습니다.

◇ 정관용> 그래서 그냥 막무가내로 찾아갔습니까, 어떻게 했습니까?

◆ 김재환> 그 시를 듣는데 이게 굉장히 부드러운 목소리도 아니었고요. 카랑카랑한 이제 80대 할머니의 목소리였어요. 그런데 저한테는 그게 굉장히 깊은 울림이 돼서 박혔거든요. 그래서 칠곡에 내려가면 할머니를 그냥 만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만나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갔더니 칠곡이 너무 넓은 거예요. 한글학교가 무려 27개나 있는 거예요.

◇ 정관용> 칠곡군에만?

◆ 김재환> 칠곡군에만. 그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수업을 참관하는 데만 두 달이 걸렸습니다. 잘못 걸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정관용> 그러다가?

◆ 김재환> 그러다가 이제 약목면 복성2리에 있는 이 할머니들. 촬영을 하고자 마음을 먹었는데.

◇ 정관용> 그 약목면 복성2리? 그게 그 김사인 시인에 등장한 바로 거기인가요.

◆ 김재환> 아니요. 다른 데예요. 그런데 제가 여기 할머니들에게 꽂혔던 이유는 반장할머니 목소리가 저희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 목소리랑 똑같고요, 일단. 그게 결정적이었고 그리고 연세가 조금 많으세요. 그런데 시골은 저도 잘 몰랐는데 70대까지는 너무 바빠요.

◇ 정관용> 농사지어야 되니까.

◆ 김재환> 시골의 노동의 상당 부분, 거의 대부분을 할아버지보다 할머니가 담당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분들은 촬영을 할 수가 없어요, 너무 바빠서. 그래서 이제 이분들은 노동을 졸업하신 분들이라 그래서 그냥 경쾌하게 할머니들께 접근을 했습니다.

영화 <칠곡 가시나들> 스틸컷 (사진=필앤플랜 제공)

◇ 정관용> 접근해서 영화 좀 찍겠습니다 했어요?

◆ 김재환> 아니요. 몇 달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냥 수업을 참관하고.

◇ 정관용> 아니, 공부하는데 앉아 있어도 뭐라고 안 하세요?

◆ 김재환> 그 옆방에 있고 카메라 갖다놓고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 할머니들께서 마음을 여셔야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런데 이제 반장 할머니가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다가오시더라고요. 그런데 사탕을 제 입에 쑥 넣어주셨어요. 그전까지 약간 할머니도 경계심이 있었고 낯선 젊은 친구들이 왔다 이런 거였는데 그때 이제 사탕을 제 입에 강제로 밀어넣으신 그 이후로 서로 까르르 하는 관계로 발전을 했죠.

◇ 정관용> 그러니까 저는 영화 찍는 사람입니다라는 얘기는 이미 했죠?

◆ 김재환> 처음에. 네. 처음에는 영화 찍는 사람인데 할머니들 수업을 들어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 정관용> 그냥 수업 들어보고 싶어서?

◆ 김재환> 나중에는 할머니들이 궁금하셔서 계속 와서 말 걸고 이제 놀리느라고 저희한테 술 주고 다 받아마셨죠. 술 너무 잘 드시는 거예요.

◇ 정관용> 할머니들이.

◆ 김재환> 주신 거 다 받아마시다가 칠곡에서 죽을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계속 젊은 사람들 놀려먹는 재미에 할머니께서 저에게 오히려 접근을 하시다가 낚이신 거죠. 그래서 칠곡 가시나들이라는 작품도 3년 만에 탄생했습니다.

◇ 정관용> 이제 본격적으로 친해진 다음에는 제가 할머니들 주인공으로 영화 하나 만들겠습니다 하니까 동의하세요?

◆ 김재환> 할머니들이 영화를 잘 모르세요. 그러니까 할머니들께서 태어나 처음으로 보신 영화가 칠곡 가시나들이에요. 그러니까 칠곡에는 영화관이 없었어요. 할머니들한테 영화를 아무리 설명해도 할머니들 TV에서 보신 영화만 기억하실 뿐이지 이 영화가 뭔지 기억이 잘 없으셨어요.

◇ 정관용> 그런데 어떻게 흔쾌히 동의를 얻어냈냐고요.

◆ 김재환> 할머니들께서 재미있으니까 뭔지 모르지만 그냥 이렇게 그냥 유쾌하게 계속해서 흘러왔는데 사실 가족들의 반대가 처음에는 좀 심했대요.

◇ 정관용> 가족?

◆ 김재환> 수업만 찍으라고.

◇ 정관용> 수업만 찍어라.

◆ 김재환> 왜냐하면 도시에서 온 낯선 젊은 친구들이 와서 우리 엄마, 시골에 홀로 계신 할아버님 다 돌아가시고 다 홀로 되셨거든요. 이분들과 친하게 지낸다. 아무리 저라도 경계심이 들죠.

◇ 정관용> 그런데 지금 영화 예고편 같은 거 보면 여고생 교복도 입혀서 찍고 막 그러셨더라고요?

영화 <칠곡 가시나들> 스틸컷 (사진=필앤플랜 제공)

◆ 김재환> 그 교복이 제가 입힌 게 아니고요. 1년에 한 번씩 학예회를 하는데 할머니들께서 발표하실 때 교복을 입으셨는데 사연이 있어요. 할머니들이 제가 이제 그 말을 듣고 굉장히 가슴이 아팠는데 가장 눈물이 폭풍처럼 쏟아질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감독님? 이러시더라고요. 언제냐고 했더니 열심히 일하고 집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고개를 들어봤는데 저쪽에 교복 입은 여학생을 보면 눈에서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대요.

◇ 정관용> 나는 한 번도 못 입어봤는데.

◆ 김재환> 나는 한 번도 못 입어봤고 나는 선생님을 가져본 적이 없는데 그런 생각 때문에 눈물이 나셨다고. 그래서 한글학교 선생님께서 교복을 입는 콘셉트로 학예회 발표를 하셨어요.

◇ 정관용> 재미있네요, 그것도. 그 선생님이 주석희 선생님이에요. 이분의 교육방식하고 숙제 이런 게 아주 독특하다면서요?

◆ 김재환> 할머니들 일상에서 설렘을 끄집어내는 데 아주 놀라운 재능을 갖고 있어요.

◇ 정관용> 설렘?

◆ 김재환> 설렘이요. 그러니까 저는 설렘이 일상을 달리 보게 만드는 에너지 같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간판 읽기 그리고 뭐 TV 보면서 어떤 단어 모르는 단어 가져오기. 그러니까 요즘 신조어 같은 거 있으면 가져오면 되는 거죠. 그리고 이렇게 놀이기구. 놀이기구 아니고 운동기구 보고 읽어보시기. 계속해서 할머니들이 이렇게 일상 속에서 .

◇ 정관용> 한글을 써먹도록.

◆ 김재환> 써먹도록 만들고 삶의 지평이 넓어지는 거죠. 제가 참 가슴이 아팠던 것 중에 하나가 일제시대 때부터 우체국이 있었어요, 그 마을에. 그런데 단 한 번도 그 공간에 들어가보신 적이 없는 거예요.

◇ 정관용> 편지를 쓰거나 받아본 적이 없다는 얘기죠?

◆ 김재환> 한글을 쓸 수 없으니까. 글도 모르는 게 여기 왜 들어왔어 할까 봐. 그랬는데 이제 선생님께 수업을 우편번호 우리 집 주소 쓰기 이런 것들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시니까 아들한테 편지 한번 해 보세요라는 이야기를 듣고.

◇ 정관용> 이제 가능하죠.

◆ 김재환> 한 발 한 발 우체국으로 걸어가시는데 뭉클했습니다, 저도.

◇ 정관용> 그리고 이제 시도 쓰신다고요?

◆ 김재환> 사실 시가 아니에요. 할머니들이 쓰신 그림일기예요. 그런데 그 일기에 제목을 붙여서 시집으로 출간이 됐거든요. 그래서 다들 시인이라 그러는데 놀랍죠. 처음 한글 배웠는데 어떻게 이렇게 순수한 글들이 나오나. 처음 배워서 그런가?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순수하고 아름다운 시를 쓰십니다.

◇ 정관용> 박금분 할머니 내 마음이라고 하는 제목인데요. 몸이 아프면 빨리 죽어야지 싶으고 재미있게 놀 때는 좀 살아야지 싶으다. 내 마음이 이래 왔다 갔다 한다. 이게 끝입니다. 적나라하시네요.

(사진=필앤플랜 제공)

◆ 김재환> 할머니들이 그러세요. 죽음에 대해서 되게 쿨하세요. 그러니까 우리가 노년을 생각하거나 이러면 어르신들은 굉장히 죽음에 사로잡힌 자일 것이다. 뭐 과거를 뜯어먹고 사는 회고적인 존재일 거라고 바라보는데 그 사실 철저하게 젊은 사람들 시선이거든요. 굉장히 죽음에 대해서 쿨하세요.

할머니들이 자주 저한테 놀리는 주제 중에 하나가 이거였어요. 아무 미련도 없고 내가 오늘이라도 콱 죽어버리고 싶은데 안 죽는 이유는 그래도 영화는 보고 죽어야 될 것 같아서 참는다고. 그래서 저는 할머니랑 농담을 하죠. 할머니, 몸이 너무 힘드시면 빨리 돌아가셔도 된다고. 돌아가셔도 된다고. 영화는 걱정하지 마시고 영화는 나중에 천국에서 보실 수 있으니까. 그러면 이제 안 죽을 거다! 이러면서 또 꺄르르 하시고. 할머니들이 건강이 더 좋아지셨어요. 영화를 보고 죽어야겠다는 일념으로.

◇ 정관용> 박월선 할머님의 사랑이라고 하는 작품. 사랑이라카이 부끄럽다. 내 사랑도 모르고 살았다. 젊을 때는 쪼매 사랑해 주대 그래도 뽀뽀는 안 해 봤다. 이런 작품이 있어요. 영화에 보니까 이 시를 낭송하신 뒤에 다른 할머니가 거짓말이라고 그러더라고요.

◆ 김재환> 아니요. 박월순 할머니 당신께서 그러셨습니다. 다 한 다음에 거짓말. 그리고 한 3초 있다가 참말 그러세요. 그래서 거짓말인지 참말인지 가지고 할머니께서 이제 다른 할머니들이 막 놀리시는 거예요. 뽀뽀도 안 해 보고 애는 어떻게 낳았냐? 그러니까 박월선 할머니는 가능하지 또 이러시고 이래서 막.

◇ 정관용> 진실은 가려져 있군요.

◆ 김재환> 네, 진실은 가려져 있는데. 그런데 사실 그 시 안에 많은 게 있어요. 할머니께서 일찍 남편이 돌아가시고 어떻게 보면 많은 사랑을 받지 못했죠. 그런데 그걸 뽀뽀도 안 해 봤다, 뽀뽀는 안 해 봤다라는 이제 그 단어 그 유머로 승화시키셨지만 그 속에는 삶의 할머니 주름 그 깊이만큼 깊게 패인 주름같이 할머니 삶에 이렇게 새겨진 상처 같은 것들이 이렇게 어떻게 보면 유머로 표현이 된 거거든요.

◇ 정관용> 이렇게 한글을 깨우치고 그림일기도 쓰시고 그러다 보니 놀거리, 볼거리로 세상이 가득하다. 점점 그런 에너지들이 더 강화되던가요, 할머님들.

◆ 김재환> 네. 할머니들이 이렇게 설레하세요. 오늘 무슨 재미로 살지? 4년 전 한글학교가 생긴 다음부터 한글을 아니까 이제 정서적인 지평도 넓어지고 공간적인 지평도 넓어지거든요. 그리고 계속해서 설렐 거리가 많아져요. 그런데 할머니들 설렘을 가장 방해하는 분이 누구인지 아세요?

◇ 정관용> 누구요?

◆ 김재환> 자녀들이에요.

◇ 정관용> 그래요. 보통 못 하게 하죠?

◆ 김재환> 엄마 큰일 나요, 넘어지면 큰일 나요.

◇ 정관용> 어디 여행 가고 싶다 그러면 못 가게 하고.

◆ 김재환> 골치 아프게 왜 그거 하고 있냐고. 하지 마소 경상도 남자들은 그렇게 하는데 자녀분들이 되게 엄마한테 저런 설렘이 있었구나. 영화 보시고 막 우시면서 내가 엄마를 잘 몰랐다고 그런 얘기를 많이 하셨어요.

◇ 정관용> 전국에 이런 할머님들 한글학교가 대단히 많다면서요? 아까 칠곡군에만 몇 군데?

◆ 김재환> 27군데 있습니다.

영화 <칠곡 가시나들> 스틸컷 (사진=필앤플랜 제공)

◇ 정관용> 전국에 몇 군데 있어요?

◆ 김재환> 비공식적으로 저희가 확인한 곳이 600군데가 넘는데요. 2017년에 교육부 산하에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라는 데가 있어요. 여기서 이제 자료를 발표했는데 전국에 한글을 쓰거나 읽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311만 명이나 된다.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많아요.

◇ 정관용> 그렇게 될 겁니다. 인생을 재미있게 사는 비법을 평균 나이 여든여섯 살 이 할머님들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다. 영화 찍고 편집하면서 그런 인생 재미있게 사는 비법 깨우치셨나요?

◆ 김재환> 도시 할머니들이 영화를 보신 소감이 너무 부러워하세요.

◇ 정관용> 부러워해요?

◆ 김재환> 네. 그게 뭘까, 가진 건 도시 할머니들이 더 많은데. 제가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저도 나이 듦에 대해서 젊은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겠지만 두려움 같은 게 있거든요. 그런데 이 분들은 대개 쿨하고 재미있게 이제 나이 듦을 받아들이시는데 그래서 칠곡 가시나들 여섯 자 이 영화의 주제는 재미있게 나이 듦이거든요. 두 자로 줄이면 설렘입니다. 일상을 다르게 해서 보이게 만드는 에너지 같은 게 설렘인데 쉘위댄스의 칠곡 할머니 버전. 이게 저는 칠곡 가시나들이라고 생각하고 저는 만들었는데 이 할머니들은 왜 재미있게 나이 들까, 왜 행복할까? 좋은 게 많은 인생이에요.

◇ 정관용> 설렘이 많고 좋은 게 많고.

◆ 김재환> 나이 들수록 좋은 게 많아야 행복할 수 있고 삶에서 어떤 그런 큰 에너지 같은 걸 점점 얻는데 좋은 친구, 좋은 선생님, 배움에 대한 열정, 설렘. 나이가 들수록 배워야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하나 안타까운 거 할아버지 학생이 없어요. 칠곡군에 할머니 학생만 400여 명이 있는데 3년 전에는 할아버지 학생이 세 분 계셨거든요. 작년 학예회 때 제가 봤는데 한 분도 안 계세요. 그러니까 나이 들수록 할아버지들의 삶은 할머니보다 힘들어요. 할머니 삶이 훨씬 풍성하고 할아버지들은 삶의 대가를 치르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정관용> 완성된 영화를 일곱 할머니들이 봤나요?

◆ 김재환> 보셨습니다.

◇ 정관용> 뭐라고 하시던가요?

◆ 김재환> 이제 죽어도 되겠다고. 이제 죽어도 되겠네, 서울 감독님 하는데 저는 부산 사투리 쓰거든요. 그런데 할머니들한테는 서울 감독이라고 이렇게 하시는데 제가 이제 박금분 반장님의 단축번호 2번입니다. 그 정도로 친해졌는데 툭하면 저한테 전화를 하세요. 그래서 어느 날은 굉장히 1년쯤 지난 다음에 할머니가 전화를 하셔서 촬영이 언제 끝나냐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부담스러우신가,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전혀 카메라 의식도 안 하고. 이런 생각이었는데 촬영 끝나면 안 올 거냐고? 우는 거예요. 촬영 끝날 생각을 하시면서 우시는 거예요. 그래서 할머니 아니에요, 제가 촬영 끝나도 할머니 뵈러 가고 한 달에 한 번씩 우리 밥 먹자고 그랬는데 촬영 끝나기 전에 선생님도 걱정이 많았어요. 다 돌아가시게 생겼다고. 그랬는데 자주 만나고 이러고 있습니다.

◇ 정관용> 한 달에 한 번씩 가고 계시죠?

◆ 김재환> 한 달에 한 번 이상 가고 있고요.

김재환 감독(사진=시사자키 제작진)

◇ 정관용> 그리고 영화 완성된 것에 대해서 좋아들 하시고?

◆ 김재환> 너무 좋아하세요. 자녀들이 이제 할머니들 붙잡고 엄마 이런 면이 있었던 거 몰랐다고 이러면서.

◇ 정관용> 자녀들도 함께 봤군요, 영화를?

◆ 김재환> 초청했어요. 칠곡군에 드디어 작년 12월에 영화관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개관 기념작으로 공개를 했고요. 자녀들이 이렇게 엄마를 꼭 안아주니까 할머니 다시 에너지를 얻으시는 거죠.

◇ 정관용> 혹시 이 영화 처음 만들 계기로 본인의 어머니 얘기 꺼냈잖아요. 감독님의 어머님은 혹시 보셨나요?

◆ 김재환> 아니요. 아직 시사회 때 초청 안 했어요. 왜냐하면 어머님의 즐거움을 앗아갈 수 없죠. 동료 권사님들 이렇게 일렬로 쫙 영화관에 앉아서 그때 보셔야 되는데. 그럴 수 없죠.


◇ 정관용> 알겠습니다. 제가 보니까 지리산에 계신 다른 아직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할머니님들께 영화를 보여드린 적이 있다고요?

◆ 김재환> 보여드리지 않고요. 저희가 모금을 했어요. 제가 충격을 받은 건 저희한테는 너무나 당연한 그런 일상인 영화관을 가는 그런 행위가 할머니들은 평생 처음이었다는 데 충격을 받았어요. 아흔 되셨는데 처음이다. 그리고 주변을 봤더니 다른 할머니들이 보이는 거예요. 그리고 전국에 있는 할머니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로부터 이제 많은 글도 받고 있어요. 편지도 받고. 함양에 계시는 선생님께서 쓰신 글을 어떤 작가님께서 박경희 작가님께서 CBS의 작가생활도 하셨던 작가님께서 제게 보내주셨어요. 그래서 그 할머니들을 만나러 갔는데 정말 감동적이었고요.

어떤 함양에 있는 안의중학교라는 데서 모여서 수업을 진행하는데 1시간여가 넘도록 차를 갈아타고 오시는 거예요, 80대 할머니들이. 그런데 차 타기 위해서 30분, 40분을 걸어요. 그리고 손 달달달달 떨려오면서 글을 쓰시는 걸 보고 제가 막 눈물이 났는데 거기에 이제 저희가 관객들이 기부해 주신 금액과 똑같은 금액을 제가 기부하고 해서 할머니들에게 처음 태어나 처음 영화 선물하기라고 해서 찾아가는 영화관 상영회를 할 거 거든요. 그래서 그 장소를 보기 위해서 이렇게 갔다 왔는데.

◇ 정관용> 아직 상영회는 한 건 아니고?

◆ 김재환> 3월 2일 합니다. 할머니들이 다른 할머니들 보면서 또 다른 재미와 용기를 저는 얻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 정관용> 이번 영화는 개봉관에서도 개봉되겠지만 그렇게 방방곡곡 할머님들을 찾아가는 상영회도 많이 하겠네요, 앞으로.

◆ 김재환> 하고 싶어요.

◇ 정관용> 그래야죠.

◆ 김재환> 태어나 처음 영화라는 거를 접해 보시고 또 다른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 다른 용기 같은 거 얻을 수 있거든요. 또 다른 설렘을 찾아나서고.

◇ 정관용> 한성혜 님께서 이 영화 보고 싶네요. 할머님들 너무 귀여우시던데. 동백나무님께서는 예고편 보니 너무 웃겨요, 보고 싶어요. 하노이메트리님께서는 놀거리, 볼거니 많으니 할머님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기를. 이런 의견 보내주셨네요. 오는 수요일 개봉이라고요?

◆ 김재환> 수요일 개봉입니다.

영화 <칠곡 가시나들>이 오는 27일 개봉된다 (사진=필앤플랜 제공)

◇ 정관용> 상영관은 많이 잡았나요?

◆ 김재환>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그동안 제 영화를 아주 싫어했습니다. 전국 4개 극장에서 개봉하는 쓴맛도 봤는데요. 이번에 아주 유쾌하고 반응도 좋은데 이번에도 많이 안 는다. 그럼 멀티플렉스 극장 아주 미워하게 될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시사회의 반응은 아주 대단히 좋았다고 하던데요.

◆ 김재환> 네, 반응이 좋았습니다.

◇ 정관용> 감독님 스스로 얘기했듯이 맛집의 실체를 다룬 트루맛쇼, 정치권을 다룬 MB의 추억. 이런 사회 고발적 다큐멘터리를 쭉 만드시다가 이번에는 완전히 따뜻한 휴먼 다큐멘터리로 돌아섰어요, 그렇죠? 사회고발 다큐멘터리 이제 안 해요?

◆ 김재환> 칠곡 가시나들이라고 제가 제목을 말씀드렸더니 이번에는 또 칠곡에서 뭘 고발할 거냐? 제 이미지가 이렇구나 이런 생각을 했는데 사실은 밝고 재미있고 유쾌한 작품 제 전공이고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또 고발이라는 면도 있어요. 노년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고발하는 거죠. 그러니까 나이 든 자들은 과거 뜯어먹고 사는 존재, 죽음에 사로잡힌 존재로만 바라보고 아마 투자자가 있다면 그랬겠죠. 더 울리라고.

모두 울려버리겠어. 이래야 먹힌다고 생각을 하실 텐데 투자자 없거든요. 망하면 저 혼자 망하면 되고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노년을 그럼 편견 없이 바라보면 부모님의 다른 면이 보여요. 자녀들이 가장 엄마의 설렘을 할머니의 설렘을 방해하는 존재라는 걸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어요.

◇ 정관용> 그래야 되겠네요. 그래서 또 이 영화가 웰컴 투 에이징 다큐멘터리다. 나이 듦을 환영하는 웰컴 투 에이징. 칠곡 가시나들을 들고 오신 김재환 감독 함께 만났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재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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