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민사1부(부장판사 윤승은)는 기아자동차 근로자 가모씨 등 2만 7356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통상임금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핵심 쟁점이었던 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은 원심과 마찬가지로 인정했지만 중식비와 가족수당은 통상임금에서 제외했다.
이와함께 이번 항소심의 관전 포인트는 회사 측의 신의칙 항변을 재판부가 받아들일지 여부였다. 신의칙은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는 법률상 대원칙이다. 2013년 대법원은 회사의 경영 사정이 매우 위태로운 경우에는 노동자들이 통상임금과 관련해 소급 청구해도 신의칙에 어긋나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시했다.
기아차 역시 이를 근거로 회사 사정의 어려움을 주장했으나 1심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 2심 재판부 역시 "미지급 법정수당 규모가 기아차의 당기순이익, 매출액, 동원 가능한 자금의 규모, 기업의 수익성 등에 비추어 볼 때 회사에 중대한 어려움을 초래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해당 부분과 관련해 이달 14일 있었던 대법원의 시영운수 통상임금 판결을 중점적으로 고려했다. 대법원은 인천 시영운수 소속 버스기사 22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면서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신의칙에 위반되는 지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회사가 주장하는 '경영상의 어려움'을 매우 엄격히 봐야 한다는 취지다.
다만 재판부는 원심에서 인정된 가족수당 1만 원과 중식대는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이에 노동자 측의 청구금액 6588억 원 중 3125억 원을 인용했다. 1심 인용금액(3126억 원)보다 1억 원 줄었다. 1심 선고 당시 계산된 지연이자가 1097억 원인 점을 고려하면 기아차는 노동자들에게 최소 4222억 원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
2심에서 회사 측은 노동자들이 근무 중 10분 씩 쉬는 휴게시간에 대해서도 근로시간으로 포함할 수 없다 문제 삼았다. 그러나 원심과 마찬가지로 2심 재판부도 휴게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했다.
이날 선고 후 기아차 노조 측은 "소송이 9년 째 길어지면서 회사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점에 공감한다"며 "회사가 이번 판결을 바탕으로 노조와 원만하게 협상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