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시인은 15일 페이스북에 글을 통해 "저는 진실을 말한 대가로 소송에 휘말렸다. 다시는 저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성추행 가해자가 피해자를 뻔뻔스레 고소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진실을 은폐하는데 앞장선 사람들은 반성하기 바란다"면서 "저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문단 원로들이 도와주지 않아서 힘든 싸움이었다"고 덧붙였다.
앞서 고은 시인은 자신의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최 시인과 박지성 시인에게 각각 1000만원의 배상을 포함해 총 1억70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이상윤 부장판사)는 "최 시인이 제보를 하게 된 동기, 당시 상황 묘사에 특별하게 허위로 볼 만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며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다만 박진성 시인에게는 명예훼손 책임을 인정해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에서는 최 시인이 제출한 90년대 일기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시인은 소송에 휘말린 이후 문학 원로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증언을 꺼려해 증거 수집에 어려움을 겪었다.
살면서 꾸준히 일기를 써온 최 시인은 다행히 1994년에 인사동 술집에서 고 시인의 추태를 목격한 뒤 자신의 심경을 쓴 글귀를 발견해 재판부에 제출했고, 이 일기장이 결정적인 증거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써 최 시인은 <괴물>이라는 시를 통해서 고 시인의 성폭력 사실을 폭로한지 1년 2개월만에 법원으로부터 자신의 주장이 허위가 아님을 인정받았다.
여성계는 이번 판결에 대해 "진실과 미투가 승리했다"며 환영을 표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이날 논평에서 "고은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은 미투 국면에서 용기 내 피해 사실을 고발한 피해자와 증언자의 입을 막고 위축시키는 만행"이라며 "고은을 비롯해 지금도 피해자들에게 무고죄와 명예훼손 등으로 2차 피해를 가하는 가해자들은 각성하고 사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