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죄 양형 강화, '엄정 처벌' 기조 넘어서야"

명예훼손죄는 자정 가능성 열려 있어…형벌권 발동 자제 필요
전파가능성은 감경 뿐 아니라 가중 요소에도 반영해야
양형위, 벌금형 양형기준 도입도 검토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가 마련한 명예훼손죄 양형기준안에 대해 관련 전문가들이 '엄정 처벌'식의 기준 강화에 유의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11일 서울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열린 양형기준안 제14차 공청회에서 명예훼손범죄 양형기준안에 대한 지정토론을 맡은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명예훼손죄가 초래하는 해악의 특성상 자정 가능성이 늘 열려있다는 점을 양형에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형위는 지난달 15일 의결한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와 모욕죄 양형기준안을 이날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기본 징역 4개월에서 1년, 출판물이나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징역 6개월에서 1년 4개월이 선고된다. 가중 양형기준을 적용하면 각각 최대 2년 3개월, 3년 9개월까지 가능하다.

기존에 인터넷을 이용한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은 7년 이하의 징역 등에 처해지는 중죄임에도 대부분 벌금형에 그쳐왔다. 이에 이번 양형기준안을 통해 실질적인 처벌을 강화하고 양형 예측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가 나왔다.

반면에 대부분 국가에서 명예훼손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을 고려하면 표현의 자유를 크게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됐다.

홍 교수는 "허위사실 공표가 공인에 관한 것이거나 공적 관심 사안인 경우에 위법성을 조각하고 친고죄로 바꾸는 형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다"며 "피해자가 권력자인 경우 스스로 해명하고 반박해 피해가 해결될 여지 등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양형위의 송오섭 전문위원은 "양형인자에 '공공의 이익 실현을 주된 목적으로 한 경우' 등을 참작하도록 했다"며 "이외에도 전파 가능성이 낮은 경우 등을 고려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현재 전파 가능성은 감경사유로 포함됐지만, 다수에게 전파가능성이 높은 수단을 고의적으로 사용해서 반복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경우 등을 '가중' 사유로도 중대하게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현행법에서 처벌 근거가 없는 소수자 집단에 대한 혐오표현 문제 역시 이번 양형기준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가 잡힐 것으로 보인다. 양형인자에 '별다른 이유 없이 특정 집단이나 다수의 피해자를 상대로 한 무차별 범행'을 포함해 가중 사유가 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성별·장애·종교·나이·지역 등 집단의 구체적 요소에 대해서는 추후 논의키로 했다.

또 다른 지정토론자인 최정민 변호사는 허위사실 뿐 아니라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양형기준안도 마련해 국민의 예측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경우 벌금형이 대부분이며 위헌론도 제기되고 있다. 양형위는 현재 양형기준이 없는 벌금형에 대해서도 향후 주요 의제로 설정해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답변했다.

한편 이날 공개된 양형기준안에서는 통상적으로 심신미약으로 분류돼 양형 시 감경 사유가 되는 만취 상태를 명예훼손죄에서는 반영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고의로 만취해 심신미약 상태로 범행을 저지르거나 만취 상태에서 타인에게 해악을 미칠 소질이 있는 경우라면 형량이 감경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어날 수 있도록 일반 가중인자로 반영했다. 피해자에게 극도의 성적 수치심을 야기하거나 가정파탄, 자살 등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형량이 늘어난다.

명예훼손죄 외에도 유사수신행위법위반범죄와 전자금융거래법위반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에 대해 공청회가 진행됐다. 양형위는 이날 제기된 의견들을 통해 양형기준안을 일부 수정하고 전체회의를 통해 최종 양형기준안을 확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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