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심 선고가 무기한 지연되자 이 부회장과 박영수 특별검사 측은 의견서와 상고이유보충서 등을 끊임없이 주고 받으며 이른바 '서류 전쟁'을 벌이고 있다.
11일 법원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2월 13일 사건이 대법원에 접수된 후 이 부회장 측은 총 76차례, 박 특검 측은 총 18차례 의견서를 상고심 재판부인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에 제출했다. 이 부회장 측 의견서 중 이 부회장 개인 명의로 된 의견서는 14건이었다.
또 상고 과정에서 제출한 상고이유서에 기재된 법리를 보강하는 상고이유보충서도 이 부회장 측이 총 7차례, 박 특검 측이 총 5차례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의견서와 상고이유보충서를 합쳐 양쪽이 제출한 서류가 100건을 훌쩍 넘었다.
이 부회장 측 제출서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은 상고심 접수 후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 등에서 불거진 변수가 많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 씨의 항소심 재판부가 삼성의 승마지원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과 관련해 뇌물액수를 70억여원으로 판단한 것이 이 부회장 측의 불안감을 자극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 전 대통령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한 이 부회장의 1심 판결과는 유사하면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항소심 판결과는 대치되는 것이었다.
이 부회장의 1심 재판부는 삼성이 약속 혹은 지급한 213억원 중 코어스포츠 용역대금과 마필 구입비, 보험료 등 72억여원을 뇌물로 인정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삼성이 지원한 말의 소유권 자체는 최씨에게 넘어간 것이 아니다'라며 이에 해당하는 36억원을 뇌물 액수에서 제외했다.
결국 이 부회장 측은 뇌물 수수자인 박 전 대통령 등의 항소심 재판부 판단이 대법원에서 그대로 받아 들여져 뇌물액수가 70억여원으로 인정되면 공여자인 이 부회장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해 의견서 제출에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
또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도 심상치 않은 변수라고 판단한 것으로도 보인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만큼 경영승계 문제를 주요 쟁점으로 삼는 이 부회장의 상고심 재판에도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를 통해 의혹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항소심에서 무죄 판단이 나왔던 이 부회장의 제3자 뇌물수수 혐의를 새롭게 뒷받침하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는 예상도 법조계 일각에서 나온다.
앞서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는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204억원과 관련해 경영권 승계라는 포괄적 현안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제3자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분식회계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당시 삼성에 경영권 승계라는 현안이 존재했다는 정황증거가 될 수 있고, 이로 인해 제3자 뇌물수수 혐의도 유죄로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을 변호하는 법무법인 태평양 측에서는 '신중한 변론을 위해 다양한 의견을 재판부에 제시한 것에 불과하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상당수 법조인들은 이 같은 변수들이 무더기 의견서 제출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법정변론 없이 양측이 제출한 서류만으로 법리적 쟁점을 검토하는 상고심의 특성상 제출 서류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부회장 측 제출서류가 특검보다 4배 이상 많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 측의 이 같은 분위기는 '선처해달라'는 탄원서 건수가 '엄벌해달라'는 진정서 건수보다 훨씬 많은 것에서도 일부 감지할 수 있다.
지난해 2월 13일 사건이 접수된 뒤 이달 10일까지 접수된 탄원서는 총 26건으로, 같은 기간 접수된 진정서(3건)의 약 9배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