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을 밝게하는 긍정 에너지를 지닌 발레리노 김기완을 7일 서울 서초구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만났다. 김기완과 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동생 김기민이다. 두 형제 발레리노는 국내외에서 승승장구하며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러시아 마린스키단 수석무용수로 세계 무대에서 활약중인 친동생 김기민을 보며 형은 부담을 느끼기보다 같은 예술가로서 존경스러움을 표했다. 수석 자리에 오른 톱 무용수지만 인터뷰 내내 겸손함이 묻어났다. "춤을 마음껏 추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는 김기완은 발레의 평균치를 하루하루 끌어올리며 단단하게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고 있었다.
▶수석무용수로 승급됐다는 얘기를 들었을때 기분이 어땠나?
사흘에 걸쳐서 단원들이 파트별로 계약을 하는데, 강수진 단장님이 저를 처음으로 호출했다. 얘기를 들었을 때 당연히 기분이 너무 좋았다. 홀가분한 것도 있었다. 사실은 기대를 매년 하긴 했는데 올해 드디어 기다리던 수석이 된 거니까….
부모님 기뻐하셨는데 특히나 동생(김기민)이 너무 좋아하더라. 동생이 제일 먼저 SNS에 형이 됐다고 발레단에서 공표도 되기 전에 제 승급 사실을 올렸더라. 평소에 동생이 표현을 잘 안하는 편인데 형이 잘 되니 부담을 덜고 더 기뻐했던 것 같다. 그 마음이 느껴지니까 저도 뭉클했다.
▶승급한 것을 보면 지난 시즌에 활약이 대단했던 것 같다?
작년에 특별하게 잘했다기 보다는 어떤 평균치가 쌓여갔다고 할까. 공연은 라이브이기 때문에 항상 완벽하게 좋을 수는 없고 편차가 있게 마련인데 전반적으로 평균치가 올라가는 것은 느꼈다. 코치님이나 단장님이 봤을 때 무용수에 대한 신뢰감이 중요하다. 실수를 하건 안하건 간에 믿고 보게 되는 그런 믿음들이 쌓여가는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어떻게 발레를 하게 됐나?
12살 때 처음 발레를 했다. 춘천에 있는 학원에서는 재능이 있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학원에 발레하는 남자가 저랑 동생 밖에 없어서 그만두지 말라고 칭찬해주셨던 것 같다. (웃음) 서울로 올라와 예원학교에 와서는 우물안 개구리였다는 걸 깨달았지만 어느순간부터 더 진지하게 연습을 했다. 어린시절에 이원국 선생님의 '돈키호테' 무대를 보고 너무 반했던 것도 계기가 됐다. 남자 무용수의 춤이란 이런 것이구나 그때 알았다. 이원국 선생님이 국립발레단 현역이실때 저희를 틈틈히 가르쳐 주셨는데 추석 때 동생과 저를 불러 밤 늦게까지 연습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솔직히 좋은 점이 많다. 가장 좋은 점은 동생과 발레하면서 보낸 시간이 많았다는 것이다. 동생이 대학을 조기입학을 해서 저랑 한예종(한국예술종합대학교) 같은 학번이었다. 4년 동안 동생과 연습을 가장 많이 했다. 발레하면 딱히 친구들도 많이 만날 기회가 없는데 동생과 함께하면서 공유하는 게 많아졌다. 저는 막판에 부상으로 수술도 했고 동생도 나름대로 마린스키 가기 전에 고민하는 것도 많았는데 서로 힘든 시기를 함께 보내면서 정신적으로 돈독해진 것 같다.
물론 부담스러운 부분도 있다. 제 동생이지만 저는 동생이 다른 차원에 있는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쁜 부담감은 아니다. 압박감이라기보다는 저에게 힘을 내게 해주는 것이 있다. 가까운 형제가 커다란 예술가가 돼 있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슬럼프는 없었나?
2009년 12월 대학교 때 아킬레스건이 끊어져 철심을 박고 1년 넘게 발레를 쉬었다. 지금도 비가 오면 그 부분이 욱신거린다. 그때 국제 콩쿨 예선에 합격해서 많이 나가야하는 시기였는데 저는 다쳐서 못나갔고, 동생이 제 파트너와 나가서 우승을 했었다. 스스로 실력의 차이가 벌어진 것이 느껴졌다. 처음 만난 의사선생님은 운동을 하면 안된다고 하셨는데 다행히 발레를 잘 아시는 정형외과 의사선생님을 만나서 수술을 받고 재활할 수 있었다. 2010년을 재활치료로 보내고 2011년 초부터 연습을 다시 시작해서 그해 8월에 발레단에 입단했다.
▶재활치료가 끝난지 몇개월만에 몸을 회복하는 것은 어려웠을텐데?
동생이 저한테 '고집이 있다'고 하는데 근성은 있는 것 같다. 다쳤을 때도 '너를 이길 수 없어도 나한테는 지지 않겠다', '지금은 절대 포기 안한다'는 생각으로 버텼던 것 같다.
단점은 피지컬적인 부분이다. 신체 조건이 클래식 발레가 요구하는 규격는 못미친다. 데뷔 때보다 나아졌지만 절대적인 규격에 들어가지는 못한다. 다리 라인이나 발등이 훌륭하지 않은 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관객들은 봐주지 않으니까 무대에서 이 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연습을 통해서 매일매일 풀어 가는 것이 제 숙제이다.
장점은…한 분야가 특출나다고 하기보다는 고만고만한 것 같다.(웃음) 개인적으로는 연기하거나 감정표현하는 드라마 발레가 더 재밌고 편하다. 최근 <말괄량이 길들이기>라는 작품에서 에드립을 하는 게 자연스럽고 편하게 느껴졌다. 초반에 술에 취한 듯한 마임도 느낌대로 하는 것인데 단원들이 경험을 살려 리얼하게 표현했다고 하더라.(웃음) 코믹한 작품이다보니 제 성격과도 맞았던 것 같다. 물론 비극적인 연기도 자신있다. 드라마를 잘 하는 무용수로 기억되고 싶다.
한 명만 꼽기에는 존경하고 멋있는 예술가들이 너무 많다. 그래도 꼽자면 현실에서는 제 동생이다. 김기민이라는 무용수는 하나의 아이콘이기 때문에 실제로 영감을 많이 받고 있다. 최근에는 전설급 무용수 중에 한 명인 '마뉴엘 레그릴'을 동생의 일본 투어 공연 때 만났는데 제가 너무 좋아해서 부탁해 같이 동생과 밥을 먹게 됐다. 엄청난 예술가인데도 친근하게 대해주고 조언도 많이 해주셔서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고 있다.
▶발레는 멘탈 관리가 중요한 것 같은데 밝고 긍정적인 것 같다. 평소에 어떻게 마인드 컨트롤을 하나?
자기 전에 좋아하는 전설의 발레 영상을 많이 본다. 이미지 트레이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용수들의 멋진 춤을 보면서 내가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거기에 감정 이입을 하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것이다. 좋은 쪽으로 목표를 두면 현실의 슬럼프도 잊게 되는 것 같다. 자기 전 영상을 보면 전막 순서도 자연스럽게 외우게 돼고, 다음날 아침에 슬프고 힘들었던 일도 잊게 된다.
▶다음 목표는?
안 다쳤으면 좋겠다.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 무용수가 무대에 있는 것은 한정된 시간이기 때문에 다치지 않고 오래 춤을 추고 싶다. 열심히는 하고 있는데 더 잘 췄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