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한국에서 과로의 개념은 하는 일에 따라 상대적인 편이다. 아직도 직업의 귀천에 대한 인식이 남아있고, 타인의 직업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다 보니 같은 시간을 일하고도 과로 여부에 대해서는 서로의 생각이 엇갈리는 것이다. 이런 대표적인 직업 중 하나가 의사다. 하지만 의사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과로가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사들은 평균적으로 오전 8시 22분에 출근해 10시간 37분을 일하고 오후 6시 59분에 퇴근한다. 점심시간 1시간을 빼더라도 매일 권장 근로시간(8시간)을 1시간 37분이나 넘겨 '과로'하는 셈이다. 이 중 가장 오래 일하는 경우는 전임의들로 평균 13시간 14분을 병원에서 체류했다. 봉직 의사와 대학교수는 근무시간이 각각 10시간 25분, 11시간 54분이었다.
의사들의 이런 근로 여건은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도 여전하다. 보건업은 노사 합의만 이뤄지면 주 52시간 근무가 적용되지 않는 특례업종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그나마 특례업종의 경우 11시간 연속 휴게시간을 보장하라는 조건이 달렸지만, 응급진료, 야간진료 등으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런 과로가 의사들의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물론 환자의 안전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강북삼성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김수근 교수가 2016년 의료정책포럼에 기고한 논문을 보면 대학병원 소속 교수들은 통상 오전 7시를 전후해 출근한다. 외래 진료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되지만, 대부분의 전문과들이 그에 앞서 학술 집담회를 진행하는 탓이다.
외래 진료나 전문 시술, 수술 같은 일과가 끝나도 바로 퇴근하기 어렵다. 입원 환자 회진을 한 다음 별도의 연구과제를 수행하거나 기타 행정적인 업무들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논문은 "진료 실적뿐 아니라 학술적 성과를 강조하는 경쟁적 환경 속에서 그들은 상당한 압력을 느끼며 '자발적으로' 밤늦게까지 남아있다"고 일상화된 과로를 표현했다.
의사의 과로로 인한 부작용은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해도 상당하다.
응급실 등에서 야간 호출을 받은 의사는 집중력과 기억력이 떨어졌으며, 밤잠을 설친 의사일수록 복강경 시뮬레이터에서 작업 시간이 길어지고 오류 횟수도 많았다. 또 운전 시뮬레이터를 이용한 자동차 운전 주행 테스트에서는 야간 호출 횟수가 많은 의사에게서 주행 안정성이 떨어졌다. 야간에 호출을 받은 의사의 운전 기능이 음주운전과 동등하거나 더 낮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는 결국 환자의 안전에 영향을 미쳤는데, 전날 당직이었던 의사가 집도한 수술 환자에게 합병증이 45% 더 많았다거나, 장시간 근무한 의사에게서 약물 처방 오류가 많았다는 보고가 대표적이다.
장시간 근로에 따른 건강 악화는 직업을 떠나 그 근거가 더욱 명확하다.
김수근 교수는 논문에서 "장시간 근로는 스트레스가 많고 피곤하며 수면시간 부족을 초래한다"면서 "근무시간이 늘수록 근로자들은 증가한 혈압을 가지는 시간이 더 많고, 이는 심뇌혈관질환의 발생에 기여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장시간 근무로 지속하는 긴장과 스트레스가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의 호르몬축에 부조화를 일으키고, 스트레스에 대한 교감신경계의 반응을 항진시킨다는 연구결과도 제시했다. 항진된 교감신경계가 심근의 기능부전을 일으키고 심혈관질환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일본에서는 1개월간 11시간 이상 연장 근무를 한 근로자에게서 심혈관계질환 발생 위험이 2.94배나 높았다는 역학 조사결과도 나온 바 있다. 이는 설 연휴에 자신의 몸조차 돌보지 않은 채 과로하다 급성심정지로 숨진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센터장이 떠올려지는 대목이다.
김수근 교수는 "의사들에게 과로사 수준의 노동이 다반사고, 이게 큰 문제라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라며 "이제는 의료 안전과 의사 자신의 건강을 위해 근로시간을 제한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는 의료기관들이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을 준수할 수 있도록 관리 감독해야 한다"면서 "환자들도 의사의 직무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