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영 원내대표는 8일 경기도 양평의 한 리조트에서 진행된 소속 의원 연찬회 1박 2일 일정 중 첫날 회의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이념적 정체성을 명확하게 하고, 합리적 중도와 개혁적 보수의 길로 좀 더 명확하게 표시하고 나가야 한다는 입장과 지금은 보수 쪽으로 가는 것으로 읽혀질 가능성 있어서 당내 존재하는 합리적 진보세력의 현실을 인정하면서 가야한다는 얘기들이 서로 팽팽하게 오갔다”고 밝혔다.
개혁적 보수의 길로 가자는 쪽은 유 전 대표 측의 주장이고, 합리적 진보를 인정하자는 측은 호남계열을 의미한다. 김 원내대표의 설명은 이날 난상토론을 벌였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는 얘기와 같다. 1~2부로 나뉘어 진행된 이날 토론은 6시간 가까이 진행됐고, 9일 자정에 이르러서야 마무리됐다.
이날 토론은 지난 6‧13 지방선거 패배뒤 향후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당의 노선에 있어 개혁보수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유 전 대표의 발제를 통해 촉발됐다. 비공개로 진행된 두 차례의 토론에선 ‘당 정체성’을 둘러싼 더 강한 주장과 논박이 벌어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 전 대표는 1차 비공개 토론 뒤 별도 브리핑에서 “제 주장의 핵심은 바른미래당이 선명한 개혁보수 정당임을 분명히 하고, 보수 재건의 주역이 되자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보수도 진보도 좋다, 동시에 보수도 진보도 아닌 그런 애매한 입장으로 지지를 호소할 수 없다”며 “한국당과 경쟁해 한국당보다 경제‧안보를 더 잘 챙기고 문재인 정권의 실정을 견제, 바로잡는 강력한 보수야당이 되자고 주장했다”고도 했다.
그는 국민의당이 과거 2016년 20대 총선 당시 거뒀던 성과가 다음 총선에도 이어질 것이란 주장과 현재 손학규 대표가 추진 중인 연동형비례제 추진 등을 싸잡아 비판했다. 바른미래당은 지난해 1월 바른정당 출신의 유 전 대표와 국민의당 출신의 안철수 전 대표가 통합해 만든 정당이다. 유 전 대표로선 다수파인 국민의당 계열을 상대로 비판적인 주장을 편 셈이다.
유 전 대표는 특히 총선 전략에 있어 보수 정체성이 주효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수도권에서 중도로 승부할 것인가, 아니면 개혁보수로 승부할 것인가를 잘 생각해보라”며 “아직 친박 대(對) 비박 싸움에서 한 걸음도 못 나가고 문 대통령의 실정을 견제조차 못 하고 있는 자한당을 대체하는 개혁보수로 승부하는 것이 훨씬 나은 전략”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3등 전략? 기껏 정의당과 3~4등을 다투고 비례대표나 몇 석 건지려는 전략으론 전멸할 것”이라며 “우리 당이 이대로 갈 때 2016년 총선과 같은 상황이 또 오리라고 생각하느냐”고 작심 발언을 했다. 비례제에 승부를 걸어선 안 되며,아직 호남이 민주당과 문 대통령에 지지를 하기 전과 같은 상황이 재연되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호남계 의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1차 회의의 비공개 부분에선 유 전 대표가 첫 발언자로 기조 발제를 한 뒤 김동철 전 원내대표와 박주선 전 대표가 차례로 발언하는 식으로 토론이 진행됐다고 한다.
김 전 원내대표는 ‘민평당과의 통합론’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바른미래당은 이학재 의원이 탈당한 뒤 민평당 활동을 하고 있는 비례대표, 의총에 잘 오지 않는 이언주 의원 등을 제외하면 23~24명 정도의 작은 정당”이라며 “그래서 지지율이 낮은 것이지, 당 정체성 때문이 아니다”라며 유 전 대표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그는 “민주당이 살아 있는 정당이냐, 한국당이 제대로 된 정당이냐”고 되물은 뒤 “민주당에 실망하고 한국당에 절망한 세력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더 하락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면서 한국당 등 보수와 손잡아선 정권을 되찾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호남을 분열시켜선 아무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며 민평당과의 통합을 주장하기도 했다.
박 전 대표는 “지금은 융복합의 시대”라며 “보수, 진보 논쟁은 구태의연하고 낡고 허무한 논쟁”이라고 유 전 대표를 비판했다. 그 역시 민평당 장병완 원내대표와 황주홍 의원 등을 만났던 일을 언급하며, “민평당과 세력이 합쳐지면 역할이 커지고 새 인물이 함께 할 가능성이 커진다”며 호남계의 통합을 주장했다.
유 전 대표와 호남계의 토론에서 개혁보수가 절실하다는 쪽과 민주당으로부터 이탈할 수 있는 세력을 포섭하기 위한 ‘중도 노선’을 유지하자는 쪽이 팽팽하게 맞섰다. 다만 민평당과의 당 대 당 통합 논의는 다수 의견으로 일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격론을 벌인 것을 놓고 당 안팎에선 유 전 대표로 대표되는 보수 성향과 호남계열이 이별을 위한 자락을 깔았다는 의견과 중도에 있던 당의 정체성을 보수 쪽으로 일부 이동시키긴 했으나 결별에 이르기까진 아직 갈 길이 멀고 여지가 남았다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