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환(62) 전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은 6일 개최 1주년을 맞아 진행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함께한 4천명에게 정말로 고마웠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은 추운 날씨와 적은 예산 등의 어려움을 딛고 국내ㆍ외에서 성공적인 행사로 호평을 받았다. 전통과 현대, 아날로그와 첨단기술을 조화롭게 연결했으며 인간과 평화를 강조한 메시지가 세계인에게 잘 전달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상으로 돌아온 그는 PMC프러덕션 예술총감독으로서 자신의 대표작이자 국내 대표 넌버설 공연(비언어극)인 '난타' 후속작인 '더 스페이스' 구상에 여념이 없다. 그는 "'난타'가 리듬을 위주로 한 넌버벌 쇼였다면 '더 스페이스'는 영상이 위주"라며 "올림픽 개·폐회식에서처럼 '와우 포인트'(감탄을 자아내는 장면)도 몇 군데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서울 대학로 PMC프러덕션 사무실에서 나눈 그와의 일문일답.
-- 올림픽을 마치고 지난 1년간 어떻게 지냈나.
▲ 조금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눈이 많이 안 좋아져 여러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았다. 망막 손상이라는데 유전성일 수도, 과로나 스트레스 때문일 수도 있다고 한다. 잘 쉬면서 치료도 받고 새 작품 구상도 하며 지냈다.
-- 올림픽 총감독은 '독이 든 성배'에 비유될 정도로 보는 이도 많고 부담도 큰 자리였다. 돌이켜 생각해봐도 이 직을 수락한 것에 후회는 없나.
▲ 스트레스가 심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셰익스피어 작품 중 '끝이 좋으면 다 좋아'란 희곡이 있다. 그게 딱 내 마음이다. 지금은 모든 게 잘 끝나서 좋다.
-- 올림픽 개·폐회식에 대해 '기대 이상이었다'는 호평이 많았다.
▲ 과분할 정도로 칭찬을 많이 들었다. 힘들었지만 정말 보람된 일이었다. 1주년을 맞아 꼭 한 가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출연자, 스태프, 자원봉사자 등 함께한 4천명에 대한 감사다. 작년 겨울은 유독 왜 그렇게 추웠는지 모르겠다. 다들 고생을 정말 많이 했다. 개·폐회식은 4천명 모두가 노력하고 애를 써서 이뤄낸 성과다. 이번 기회를 빌려 정말 수고하셨고 고맙다는 말을 꼭 한번 하고 싶었다. 평창에 45일 동안 있었는데 날씨가 좋은 날이 딱 이틀이었다. 그게 개회식 날과 폐회식 날이었다. 하늘이 도와줬다는 생각밖에 안 드는데, 그냥 도와준 게 아니라 4천명의 정성에 하늘도 감동한 것 같다.
-- 가장 만족스러웠던 장면을 꼽아본다면.
▲ 가장 가슴 졸였던 장면은 단연 성화 점화다. 사실 모든 개·폐회식이 성화 점화 한순간을 위한 거다. 슬로프가 120개 계단으로 바뀌고, 그곳을 남북 성화 주자가 함께 뛰어 올라가고, 성화를 김연아 선수에게 전달하고, 김연아 선수가 아이스댄싱을 선보인 후 점화대에 불을 붙이고, 서른 개 불기둥을 통해 성화 점화가 완벽하게 이뤄진 바로 그 순간을 가장 잊을 수 없다. 모든 긴장이 녹아내리고 벅참이 밀려든 순간이었다.
-- 반대로 가장 아쉬운 부분도 있나.
▲ 관객이나 시청자들은 눈치채지 못한 실수가 하나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 개회 선언이 끝나면 대기 중이던 장구 연주자 180명이 리프트를 통해 바닥에서 중앙무대로 한꺼번에 등장하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리프트가 순간 고장으로 20초가량 작동하지 않았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모든 게 망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당시 중앙 컨트롤 룸은 난리가 났었다. 헬기샷과 정상급 내외빈샷 등으로 시간을 벌다가 예비 작동기로 리프트를 작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20년처럼 느껴졌던 20초였다.
-- '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 송승환의 차기작'에 대한 관심도 크다.
▲ '더 스페이스'라는 넌버벌 작품으로 관객들과 다시 만나게 된다. 2020년 가을 개막을 목표로 제작 중이다. 컨셉과 스토리 구상은 다 끝냈다.
-- 어떤 작품인가.
▲ '난타'처럼 글로벌한 소재를 찾다 보니 우주를 선택하게 됐다. 지구를 사랑하는 두 신(神)이 지구 폭발의 순간에 마지막 지구인이 될 두 사람을 우주선에 태워 대체 행성에 보내는 이야기다. 아담과 이브처럼 새로운 인류의 시작을 바라지만,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지 않고 계속 싸우면서 두 신은 고민에 빠진다. 우주를 소재 삼았지만 코믹하고 유쾌한 공연이 될 것이다.
-- 1997년 '난타' 제작 이후 22년 만에 내놓는 넌버벌 후속 작품이기도 한데.
▲ '난타'가 리듬 위주였다면 '더 스페이스'는 영상이 중심이다. 영상이 무대의 보조적 수단이나 세트로 쓰이는 공연이 아니다. 무대 위 배우와 영상, 관객이 인터랙션(상호작용)하는 작품이 될 것이다. 평창에서도 영상의 효과를 이미 경험했다.
-- 공연에서 영상기술은 이미 흔히 사용되고 있지 않나.
▲ 영상기술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이야기에 녹아드는지가 중요하다. 로봇팔에 대형 모니터 8개를 장착하는 '로봇 스크린'과 홀로그램을 무대 위에 구현하는 '홀로넷' 기술 등이 활용될 것이다. 영상을 사용한 마술도 선보이려 한다. 배우가 무대 위와 영상 속을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한다. 무대적 아날로그와 첨단기술의 융복합으로 관객에게 더 큰 감동을 선사하고 싶다. 올림픽 개·폐회식에서처럼 '와우 포인트'도 몇 군데 준비하고 있다.
-- 올림픽 총감독 이후 사람들 기대치가 더 높아졌을 텐데 부담스럽진 않나.
▲ 올림픽 때 내가 느낄 수 있는 부담은 다 느꼈다.(웃음) 이제 웬만한 부담은 이겨낼 수 있다. 멍하니 있으면 오만가지 생각이 더 든다. 부담되고 큰일이 있을수록 더 집중하고 몰두하면 스트레스가 오히려 완화된다.
--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THAAD·사드) 여파로 중국인 관광객이 자주 찾는 '난타' 충정로 극장이 문을 닫기도 했다.
▲ 그건 오롯이 사드 영향 때문이다. 넌버벌 공연 경쟁력 자체가 떨어졌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넌버벌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신작이 안 나오는 것은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더 스페이스'를 정말 잘 만들어 보려 한다.
-- 하와이, 파타야에 난타 전용관을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는데.
▲ 파타야 사업은 보류됐고 하와이 공연은 잘 추진되고 있다. 작년 12월 '난타' LA 공연에 하와이 프로모터들이 왔었고 아마 올해 여름에 구체적 조건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극장 조건 등을 알아보고 있다.
-- 역시 일 이야기 할 때가 제일 신나 보인다. 더 시도하고 싶은 공연이 있는지.
▲ '쟁이'는 어쩔 수 없다. 공연 만들 때가 제일 사는 것 같고, 살아 있는 것 같다. 좋은 아이디어가 생기면 계속 공연을 만들고 싶다. 제가 또 배우이기도 하니까, 인생 마지막 부근에선 멋진 노역 연기도 하고 싶다. 드라마든 연극이든 영화든 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