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입니다. 한전이 자체적으로 국제표준에 부합하는 부패 방지 시스템을 만든 것이니까요. 향후 국내 전력수급이 한층 투명해지길 바라는 안팎의 기대도 적지 않았을 겁니다.
한전은 그러나 불과 10일 만에 신재생에너지 부정부패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썼습니다. 전주지검 형사1부(신현성 부장검사)는 지난 17일 수사브리핑을 열고 "한전 전·현직 '임직원'들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태양광발전소를 손쉽게 분양받고, 시공업자에게 공사대금을 깎는 수법으로 뇌물을 챙겨온 관행을 들춰냈다"고 밝혔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이번에 덜미를 잡힌 이들은 공사업체에 각종 편의를 제공하는 대가로 공사대금을 후려치는 수법으로 적게는 천만 원에서 많게는 억대의 뇌물을 챙겼습니다. 그런 뒤에도 '부지 내에 잡초가 많다'라거나, '나무 때문에 그늘이 진다'며 공사비를 깎았고, 막무가내로 수년간 공사비 일부를 주지 않는 등 갑질까지 일삼았습니다.
한전은 관련 사실을 모두 인정하면서도, 검찰 수사에 한 가지 토를 달았습니다. 한전 측은 브리핑에 참석한 대다수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검거된 이들이 직원은 맞는데, 임원은 아니다"며 "'임'자를 빼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전무 이상 고위직만 임원이고, 범행한 이들은 본부장급(1급) 이하 1·2·3급 직원"이라는 이유였습니다.
"대국민 사과나 회사 차원의 입장 발표는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전부터 계속 수사가 진행됐던 사안이고, 시스템도 정비하고 징계 수준도 강화했지만 지금 당장 뭘 발표할 건 없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한전이 부패 척결을 위해 수년간 '공든 탑'을 쌓았다며 자부하는 사이, 일부 간부는 태양광업자를 자신의 집무실로 불러 사업 설명을 요구하는 등 사익추구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사내 한 감사부서 간부는 감사원 감사를 받던 말단 실무자들에게 허위 진술을 하라고 종용하기도 했는데, 이는 동료들의 비리를 감싸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람도 시스템도 당최 나아진 게 없던 셈입니다.
김종갑 한전 대표이사는 취임 일성으로 수익선 개선·사회적 책임 등 과제를 제시하면서 "투명·준법·윤리 경영이 기본이고…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처절한 내부 반성과 사과로 과오를 인정하는 게 부패 척결의 시작이자 기초입니다. 공들여 쌓은 탑이 모래성이라면 무너지는 건 한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