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너 자신을 사랑하라', '너 자신으로 살아라'는 오래된 명제를 이야기함에도 신선하고 담백한 감각을 놓치지 않는다. 덕분에 공연이 끝날 때 즈음이면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작품은 현대 문학의 거장 요제프 클라인의 미발표 원고를 둘러싼 이스라엘 국립 도서관과 78세 노파 '호프'의 재판 이야기를 다룬다.
실제 이스라엘 국립 도서관이 2009년 제기했던 카프카 원고 반환 소송을 모티브로 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누가 원고 소유의 정당성을 가졌는지가 아닌, 호프라는 여자가 왜 30년 넘게 원고를 지켜왔는지를 조명한다.
법정극 형태를 띠는 가운데 호프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전개로 그가 왜 그토록 '종이 뭉치'에 집착하게 됐는지를 보여준다.
화려한 무대 세트나 첨단 기술 하나 없지만 무대는 자연스럽게 2차 세계대전 발발부터 유대인 수용소, 기차역, 호프와 엄마 '마리'의 누추한 거주 공간, 법정까지를 담아낸다.
초반 다소 난해하고 복잡한 전개에 지루해질 수 있지만 1인 2역 형식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영리하게 연결해낸다.
이 때문에 엄마에게도, 연인에게도, 세상에도, 스스로에게도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호프가 원고를 지키는 일에만 매달리게 되는 과정이 충분히 설득력 있게 전개된다.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는 미발표 원고를 의인화한 캐릭터 'K'이다.
낡아서 해진 종이를 표현한 듯한 소매와 옷깃의 흰 의상을 입고 등장하는 'K'는 자칫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호프 내면의 힘을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큰 축을 담당한다.
'K'는 자신을 지키는 일에만 매달리는 호프에게 "너의 인생을 살아야 할 때"라고 격려한다. 이는 이해받지 못할 모습을 한가지씩은 가진 관객들에게 건네는 위로이기도 하다.
무대 분위기는 오래된 책장이나 빛바랜 동화처럼 따뜻하다.
음악도 참신하다. 밝은 듯 슬프고, 슬픈 듯 희망을 담고 있는 세련된 노래들이 이어진다.
'2018 예술공연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뮤지컬 부문에 선정됐다. 신진 창작자인 강남 작가와 김효은 작곡가의 데뷔작이지만, 탄탄한 구성과 높은 완성도로 '신작' 같지 않은 느낌을 준다.
3월 28일부터 두산아트센터 연강홀로 무대를 옮겨 공연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