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대법원 정문 앞'…양승태의 노림수는?

11일 오전 ‘사법농단 의혹’ 의 최정점으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검찰출석을 앞두고 대법원 정문 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사진=황진환 기자)
제왕적 사법부 수장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검찰 조사에 앞서 들른 곳은 다름 아닌 '대법원'이었다.

내심 대법원 건물 내부에서 기자회견이 성사되길 기대했지만, 법원 내외부의 우려와 반대에 직면하자 그가 차선으로 선택한 곳이 대법원 정문 앞이었다.

이미 법원노조 등이 대법원 정문 근처에 진을 치고 스피커를 통해 구호를 외치며 양 전 대법원장의 입장표명 자체를 원천 봉쇄하려고 나선 터라 기자회견 장소로는 적절치 않았다.

출근시간대에 대법원 정문앞에서 때아닌 기자회견이 벌어지면서 김명수 대법원장 등의 출근 시간도 뒤로 미뤄졌다.

이같은 혼란과 민폐에도 불구하고 양 전 대법원이 굳이 이곳을 택한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전 인생을 법원에서서 근무한 사람으로서 (검찰) 조사 전에 법원을 한번 들렀다가 가고싶은 마음이었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이같은 양 전 대법원장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일단 '대법원 정문앞'이라는 장소가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후배 법관들에게 누가 대법원장인지 똑똑히 봐두라"는 무언의 압박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김명수 사법부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의 표현이란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해 6월 사법농단 의혹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하자 성남시 자택 인근 놀이터에서 기자회견을 자처하며 이렇게 얘기했다.

"재판이 잘못됐다고 왜곡 전파되는 것에 법관들은 기가 차는데, 대법원장이 왜 단호하게 이야기해주지 않느냐고 섭섭하게 생각할 것이다"

실제 법원 내부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기소 이후가 더 걱정이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지금까지는 억지로 꾹꾹 눌러왔지만 재판이 시작되면 법원내 신구 권력 싸움이 수면위로 오를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두 번째 노림수는 헌정사상 최초로 검찰에 소환된 전 사법부 수장이 검찰 포토라인만큼은 피하고 싶었을 것이란 추측이다.

전직 대통령들도 검찰 포토라인데 섰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역시 '특권의식'의 발로라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 정문앞에서의 기자회견을 본인의 입장표명으로 갈음하고 검찰 포토라인에는 서지 않은 채 곧장 서울중앙지검 특별조사실로 향했다.

검찰 조사와 관련해서는 이날 "검찰에서 구체적 사실관계를 기억나는 대로 답하고, 오해가 있으면 풀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 드리겠다. 선입견 없는 공정한 시각에서 이 사건이 해명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혐의 인정'과는 상당한 거리감이 느껴지는 반면 일종의 '가이드라인'처럼 보이는 대목이다.

지난해 6월 놀이터 앞 입장 발표시 검찰 수사에 응할 것인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검찰에서 수사를 한답니까"라고 되물었던 그였다.

노림수만 있었지, 지난해 6월과 달라진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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