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심 대법원 건물 내부에서 기자회견이 성사되길 기대했지만, 법원 내외부의 우려와 반대에 직면하자 그가 차선으로 선택한 곳이 대법원 정문 앞이었다.
이미 법원노조 등이 대법원 정문 근처에 진을 치고 스피커를 통해 구호를 외치며 양 전 대법원장의 입장표명 자체를 원천 봉쇄하려고 나선 터라 기자회견 장소로는 적절치 않았다.
출근시간대에 대법원 정문앞에서 때아닌 기자회견이 벌어지면서 김명수 대법원장 등의 출근 시간도 뒤로 미뤄졌다.
이같은 혼란과 민폐에도 불구하고 양 전 대법원이 굳이 이곳을 택한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전 인생을 법원에서서 근무한 사람으로서 (검찰) 조사 전에 법원을 한번 들렀다가 가고싶은 마음이었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이같은 양 전 대법원장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일단 '대법원 정문앞'이라는 장소가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후배 법관들에게 누가 대법원장인지 똑똑히 봐두라"는 무언의 압박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김명수 사법부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의 표현이란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해 6월 사법농단 의혹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하자 성남시 자택 인근 놀이터에서 기자회견을 자처하며 이렇게 얘기했다.
"재판이 잘못됐다고 왜곡 전파되는 것에 법관들은 기가 차는데, 대법원장이 왜 단호하게 이야기해주지 않느냐고 섭섭하게 생각할 것이다"
실제 법원 내부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기소 이후가 더 걱정이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지금까지는 억지로 꾹꾹 눌러왔지만 재판이 시작되면 법원내 신구 권력 싸움이 수면위로 오를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두 번째 노림수는 헌정사상 최초로 검찰에 소환된 전 사법부 수장이 검찰 포토라인만큼은 피하고 싶었을 것이란 추측이다.
전직 대통령들도 검찰 포토라인데 섰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역시 '특권의식'의 발로라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 정문앞에서의 기자회견을 본인의 입장표명으로 갈음하고 검찰 포토라인에는 서지 않은 채 곧장 서울중앙지검 특별조사실로 향했다.
검찰 조사와 관련해서는 이날 "검찰에서 구체적 사실관계를 기억나는 대로 답하고, 오해가 있으면 풀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 드리겠다. 선입견 없는 공정한 시각에서 이 사건이 해명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혐의 인정'과는 상당한 거리감이 느껴지는 반면 일종의 '가이드라인'처럼 보이는 대목이다.
지난해 6월 놀이터 앞 입장 발표시 검찰 수사에 응할 것인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검찰에서 수사를 한답니까"라고 되물었던 그였다.
노림수만 있었지, 지난해 6월과 달라진 것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