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가운데 최근 국내외 역사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는 프로젝트가 고려와 조선 왕릉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협력이다.
고려(918∼1392년)는 개성과 강화를 수도로 400여년을 이어간 나라였고 500년 역사의 조선(1392∼1910년) 왕조도 왕릉이 현재의 남북한에 걸쳐 있다.
2009년 남측이 세계유산에 등재한 조선 왕릉에는 서울·경기 일대 왕릉 40기가 포함됐지만 북한 황해북도 개풍의 제릉(齊陵)과 후릉(厚陵)은 빠졌다.
제릉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왕비 신의왕후 능이고 후릉은 제2대 임금 정종과 왕비 정안왕후를 모신 능이다.
4년 뒤인 2013년 북측이 세계유산으로 등재한 개성역사유적지구에는 고려 태조 왕건의 현릉(顯陵)과 공민왕·노국공주의 현릉(玄陵)·정릉(正陵) 등 여러 기의 고려 왕릉이 포함됐다.
그러나 강화에 있는 고종 홍릉(洪陵), 희종 석릉(碩陵), 강종의 왕비이자 고종 어머니인 원덕태후 곤릉(坤陵), 원종 왕비 순경태후 가릉(嘉陵) 등 고려 왕릉 4기는 제외됐다. 같은 왕조의 중요 유적이면서도 세계유산 등재에서 빠지는 남북 분단의 냉엄한 현실을 보여준 대목이었다.
인천시 출연기관인 인천문화재단은 강화도에 있는 고려 왕릉 4기를 남북이 협력해 세계유산으로 추가 등재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2015년부터 검토해왔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제도는 등재 당시 미발견 상태였거나 조사가 충분하지 않아 포함되지 않았지만 그 뒤에라도 등재 유산의 완정성과 진정성을 충족하는 데 도움이 되는 유적을 확인하면 '확장 등재'라는 개념으로 등재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남북이 의지를 갖고 추진하면 상대방 지역에 있어 누락된 고려·조선 왕릉을 세계유산으로 추가 등재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11월에는 남북이 사상 처음으로 씨름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공동 등재해 화제가 됐다.
유네스코 '무형유산 보호협약 정부 간 위원회'는 24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씨름의 남북 공동 등재를 결정했다. 위원회는 당시 "씨름은 남북 전통문화의 중요한 일부이고 공동체에 관한 사회·문화적 의미에서 공통점을 갖는다"며 "평화와 화해를 위한 차원"이라고 밝혔다.
씨름의 남북 공동 등재는 지난해 4·27 판문점 회담 이후 우리 정부가 먼저 나서 북측과 협의해 진행했다.
고려·조선 왕릉의 세계유산 등재 협력도 남북이 상대측에 누락된 유적을 확장 등재하기 위해 교차 신청하는 방안 등이 연구자들 사이에 거론되고 있다.
인천문화재단 김락기 인천역사문화센터장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교차 등재를 주장하면 현실성이 떨어지는 제안이라는 의견들이 나왔지만 최근에는 중국의 동포 학자까지 동조 제안을 하는 등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중국 옌볜(延邊)대 역사학부의 조선족 학자인 정경일 교수는 지난해 11월 경기도에서 열린 국제학술행사에서 북측이 등재한 개성역사지구 유적에 강화의 고려 왕릉을 포함하고 남측이 등재한 조선 왕릉에 개풍의 제릉, 후릉을 포함해 확장 등재하자는 제안을 했다.
학계에서는 강화 고인돌도 이런 사례에 포함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2000년 남측에서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이란 이름으로 세계유산에 올린 유적에 북측 황해도와 평안도 등지에 분포한 고인돌을 추가해 '한반도 고인돌'로 확장 등재하면 전 세계 고인돌의 상당수가 밀집한 한반도의 역사적 유구성을 널리 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인천시는 인천문화재단이 그동안 정리한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강화 고려 왕릉의 세계유산 교차 등재를 문화재청에 정식 건의할 계획이다. 김 센터장은 "분단의 현실도 남북이 공유한 유구한 역사를 갈라놓지는 못한다"며 "강화 고려 왕릉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개성역사지구' 안내판을, 개풍 조선 왕릉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 왕릉' 안내판을 세우는 작업은 남북이 한겨레라는 상징일 뿐만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라는 점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