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애국열사릉에 묻힌 독립지사들

민족대표 오화영·김창준, 임시정부 인사 김규식·조소앙 등 안치
대한민국 건국훈장 수훈자 많아…"북한 행적 밝혀 민족적 차원서 재평가해야"

오화영, 김창준, 강제하, 오동진은 평안도 혹은 황해도 출신으로 모두 3·1운동에 참가했다.

독립운동가이자 목사인 오화영과 김창준은 민족대표 33인으로 활동했다.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난 오화영은 개성 지역 독립선언서 배포를 담당했고, 평남 강서 출생인 김창준은 민족대표 중 나이가 가장 적었다. 두 사람은 3·1운동 이후 2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강제하는 1919년 4월 1일 평북 창성에서 열린 만세시위에 나섰고, 평북 의주 출신인 오동진은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에서 독립을 부르짖었다.

3ㆍ1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북한의 국립묘지에 해당하는 애국열사릉에 묻혔다는 것이다.

북한은 평양 대성산에 혁명열사릉, 신미동에 그보다 급이 낮은 애국열사릉을 조성해 운영한다. 1975년 만든 혁명열사릉에는 노동계급 혁명의 위업을 실현하려다 희생됐거나 빛나는 생애를 마친 투사가 잠들었고, 1986년 건립한 애국열사릉은 조국과 인민을 위해 원수와 싸우다 희생된 사람을 모셨다.

혁명열사릉과 애국열사릉에 무덤이 있는 사람은 북한이 공적을 인정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혁명열사릉에 묘가 있는 독립지사로는 일제에 저항해 무장투쟁을 한 최윤구와 최효일이 있다.

유명한 독립지사의 묘는 대부분 애국열사릉에 있는데, 국내 학계에는 1990년대 초반 처음으로 안장자 명단이 알려졌다. 당시 애국열사릉에는 약 250위가 있었으나, 이후 그 수가 꾸준히 늘어나 현재는 1천위 안팎이 존재한다고 전한다.

이 가운데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관련된 인물은 10명 남짓이다.


임시정부 인사는 김규식·유동열·엄항섭·윤기섭·조소앙·조완구·최동오로,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이후 북한으로 끌려갔다.

젊은 시절부터 영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했던 김규식은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해 탄원서를 제출했고, 임시정부 부주석을 지냈다. 광복 이후에는 김구와 함께 남북 분단을 막고자 했으나 결실을 보지 못했다.

개인·민족·국가 간 균등과 정치·경제·교육 균등을 통해 이상사회를 건설하자는 삼균주의(三均主義)를 주창한 조소앙은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의 임시헌장 초안과 1941년 임시정부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건국강령 초안을 작성한 사상가다.

조완구는 3·1운동 직후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 요직을 두루 거쳤고, 윤기섭은 중국 만주로 망명한 뒤 신흥무관학교에서 독립군을 양성하고 임시정부 군무장(軍務長)을 지냈다. 일본에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유동열은 임시정부가 창설한 광복군 참모총장으로 활동했다.

최동오는 임시정부 법무부장과 임시의정원 법사위원장으로 일했고, 엄항섭은 임시정부 선전부장과 김구 판공비서를 지냈다.

이외에도 항일무장투쟁을 벌이다 해방 이전에 사망한 평북 출신 인사인 장철호와 양세봉도 애국열사릉에 묘가 있다.

아울러 강화도에서 태어나 3·1운동에 참가한 뒤 사회주의 항일운동을 한 조봉암 가묘도 애국열사릉에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농림부 장관과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조봉암은 1958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돼 이듬해 처형됐으나, 대법원은 2011년 전원 일치 의견으로 간첩 혐의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독립운동을 한 사학자 안재홍, 국학자 정인보 등은 애국열사릉보다는 급이 낮다고 알려진 재북인사묘에 안치됐다. 재북인사묘는 북한이 평양 룡성구역에 남한 출신 명망가를 위해 2004년 조성했다.

애국열사릉에 묘가 있는 3·1운동, 임시정부 인사는 대부분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았다. 건국훈장은 대한민국 건국에 공로가 뚜렷하거나 국가 기초를 공고히 하는 데에 이바지한 사람에게 수여하며, 5등급으로 나뉜다.

가장 등급이 높은 대한민국장에 추서된 사람으로는 김규식과 조소앙이 있고, 다음 등급인 대통령장 수훈자는 오화영·유동열·조완구·윤기섭이다. 오동진·강제하·최동오·엄항섭에게도 건국훈장이 추서됐다.

다만 1948년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직에 올랐고 한국전쟁 때 북한을 선택해 월북한 김창준에게는 건국훈장이 주어지지 않았다.

반병률 한국외대 교수는 "북한 애국열사릉과 재북인사묘에 무덤이 있는 납북인사들은 북한으로 간 뒤 발언과 행적이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며 "남북 대결이라는 냉전적 차원이 아니라 민족이라는 높은 차원에서 그들의 행적을 밝히고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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