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 과정에서는 민생보다 정략적인 정쟁을 우선하는 정치권의 민낯을 그대로 노출하면서 국민들의 피로도를 한껏 높였다.
민생 현안과 무관한 정치적인 요구사항을 들고 나온 야당에 대한 따가운 시선도 적지 않지만, 타협과 돌파의 정치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여당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여야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27일 이른바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안을 극적으로 합의했다. 애초 오후 2시로 예정했던 본회의를 3시간40분 늦춰 오후 5시40분에 시작했고, 산안법 개정안은 회의 개시 후 3시간 20분 만인 오후 9시에 가결했다.
지난 11일 김씨가 근무 도중 목숨을 잃으면서 산안법 개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지대해졌지만, 법안 내용과 무관한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비서관의 국회 출석이 최대 쟁점이 됐다.
자유한국당은 산안법 개정이 기업들에게 부담이 된다는 명분으로 산안법을 잡아둔 채 조 수석의 운영위원회 출석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더불어민주당은 산안법 개정과 조 수석의 국회 출석은 성질이 전혀 다른 사안이라며 반대의 목소리를 냈지만 사안을 풀 어떠한 뾰족한 수도 내놓지 못했다.
물꼬를 튼 것은 협상의 주체인 여당이 아닌 청와대였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오전 회의에서 "제2, 제3의 김용균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산안법이 연내에 처리돼야 한다"며 조 수석의 국회 출석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조 수석의 국회 출석이 결정되자 여야 간 협상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고, 결국 본회의에서는 산안법 개정안을 비롯해 그간 미뤄져왔던 김상환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등이 한꺼번에 처리됐다.
김용균법은 통과를 시켰지만 민주당의 박용진 의원이 문제를 제기해 논의가 촉발된 유치원 3법은 여야 합의에 실패하면서 바른미래당 유재훈 의원의 중재안을 패스트트랙(fast track)으로 넘겼기는 데 그쳣다.
한국당은 조 수석의 운영위 출석을, 바른미래당은 이학재 의원의 탈당으로 한국당에 잃었던 정보위원장 자리를 각각 얻어냈지만,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이견이 크지 않았고 정부가 발의를 한 산안법 개정만 얻어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패스트트랙은 최대 330일이 걸리는 사실상의 슬로우트랙(slow track)으로 유치원 3법에 반대해 온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에 시간만 벌어준 것이라는 지적마저 나온다.
이같은 연말 강대강 대립은 한국당이 원내대표 회동, 상임위, 법사위, 본회의 등 곳곳에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강하게 내세우면서 시작됐다.
법안 처리 등을 통한 압박이 야당이 가진 중요한 정치적 수단이라고는 하지만, 시급한 민생 법안을 발목을 잡으면서까지 정치적 사안과 연계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은 협상 내내 "한국당이 반대하고 있다"는 불만만 표시했을 뿐 사태를 풀기 위한 대안을 적극적으로 내놓지 못했다.
야당의 반대가 계속됐던 것은 사실이지만 협상의 교착이 지속되자 여당이 조 수석의 국회 출석 저지로 청와대를 비호하면서 청와대가 어떤 시그널을 보내는지만 기다리고 있는 눈총이 쏟아졌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과거의 모든 여당이 그래왔 듯 현 여당도 청와대의 방탄부대를 자임해 청와대와 관련한 의혹이 뭐라도 나오면 어떻게든 막기에 급급하다"며 "자신들이 국회의 일원이고 국회가 국민의 대의기관이라는 의식이 명확하다면 사안별로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합리적인 움직임을 보여야 하는데 전혀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