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성은 범행 현장에 간 적도 없다고 주장했지만 2심 역시 검찰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유일한 증거인 쪽지문 감정 결과로 볼 때 범행 사실이 인정된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사건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1월 29일 오전 3시 30분께 부산 해운대구 한 주택에 남성이 침입해 주방에 있던 흉기로 잠자던 부녀자를 위협해 성폭행하고 달아났다.
피해 여성은 큰 충격에 빠졌고 새벽 귀가한 남편이 2∼3시간 만에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여성 집에서 발견한 과도 칼날에서 쪽지문 2점을 채취했다.
이 과도는 여성이 구매해 사용해온 것으로 당시 주방이 아닌 방바닥에서 발견됐다.
여성 몸 등에서 피의자 DNA가 나오지 않아 쪽지문은 이 사건 유일한 증거였다.
당시 경찰은 쪽지문을 감정했지만 비슷한 대상자를 찾지 못해 사건은 미궁에 빠지는 듯했다.
6년 뒤 경찰은 미제사건을 재조사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이 쪽지문을 재감정한 결과 A(54)씨 지문과 같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A씨는 피해 여성 집과 480m 떨어진 곳에 거주하던 토박이였다.
A씨는 사건 발생 6년 만에 주거침입 강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아무런 형사처벌 전력이 없던 A씨는 피해 여성 집에 간 사실이 없고 범행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시종일관 주장했다.
쟁점은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과도에 묻은 쪽지문이 A씨 것이라는 감정 결과를 과학적 증거로써 신뢰할 수 있는가였다.
1심 재판부는 "우리나라 자동지문검색시스템에 등록된 지문은 신원확인을 위한 비교대조군으로 신뢰성이 매우 높고 지문 감식 전문가 4인의 감정을 거쳐 오류 가능성이 매우 낮고 믿을 만하다"며 "이를 근거로 A씨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인정된다"며 징역 5년을 선고했다.
A씨는 재판에 불복해 항소했다.
A씨는 지문 감정 결과는 오류 가능성이 있고 설사 지문이 일치하더라도 알 수 없는 경위로 과도에 지문이 남겨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항소심 재판부인 부산고법 형사2부(신동헌 부장판사)는 "사실상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지문 검색은 불가능하며 범행 내용·장소 등을 토대로 지문 대조군을 한정해 같은 지문을 찾는 수사방법은 합리적이며 이런 검색방법이 지문 감정 정확성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어 피고인은 평소 낚시를 즐겨 재래시장에서 칼을 만져보는 습관이 있어 그 과정에서 지문이 남은 과도를 피해 여성이 샀거나 진범이 피고인 지문이 묻은 과도를 두고 갔을 가능성을 주장하지만 이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고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 판사는 주문을 낭독한 뒤 A씨에게 "신이 아닌 이상 (진실을) 알 수 없지만 과도에 묻은 지문 등 증거를 바탕으로 과학적·논리적으로 추론해보면 범행을 저질렀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