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탄력적 근로시간제(이하 탄력근로제)를 도입한 기업 가운데 가장 시급한 개선사항으로 '단위기간 확대'를 요구한 답변이 겨우 3.5%에 불과하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더구나 탄력근로제를 아직 도입하지 않은 기업 역시 '단위기간 확대'를 요구한 경우는 0.9%에 그쳐 보수진영 및 경영계의 주장과 달리 대부분의 사업체는 단위기간 확대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20일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산하기구인 '노동시간 제도개선 위원회' 발족식을 갖고 1차 전체회의를 열었다.
이날 전체회의에서는 한국노동연구원 김승택 박사는 경사노위의 의뢰로 지난 9월부터 11월까지 5인 이상 사업체 2436개소를 대상으로 실시한 '탄력근로제 활용실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탄력근로제 도입 기업 겨우 3%25…도입 이유 절반 이상 '물량·인건비' 때문
조사 결과 탄력근로제 도입 비율은 3.22%, 노동자 수 기준으로는 조사 기업 전체 노동자의 4.3%(5만 6417명 중 2432명)에 불과했다.
'향후 탄력근로제 도입계획 있음'으로 답한 비율도 겨우 3.81%에 불과했고, 전체 유연근로제 가운데 가장 효율적인 제도에 대한 질문에서도 보상휴가제(25.8%), 선택(23.0%), 재량(19.0%), 탄력(16.0%) 순으로 답해 탄력근로제가 가장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
규모별로 살펴보면 300인 이상 사업체에서는 탄력근로제 도입 비율이 23.8%에 달했지만, 50~299인 4.3%, 5~49인 3.1%로 사업체 규모가 작을수록 도입 비율이 급감했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전문·과학·기술서비스'가 66.7%, '영상·정보서비스'가 50%로 높았고, '제조'는 34.8%, '건설'은 25.0%를 기록했다.
탄력근로제를 도입한 이유로는 '물량변동 대응'(46.7%)이 가장 많았고, '여가생활 등 근로자 요청'이 37.8%로 뒤를 이었다. '주52시간제 대응'을 목적으로 도입했다는 답변은 25.9%였다.
다만 이는 중복답변을 허용해 1순위와 2순위를 합산한 결과로, 1순위 답변만 따져보면 '물량변동 대응'(35.4%), '인건비 절감'(22%) 등 사측의 필요에 따라 도입했다는 답변이 주를 이뤘다.
산업현장이 탄력근로제 확대를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는 보수진영의 주장과 달리 정작 사업체들은 단위기간 확대 논의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탄력근로제 활용 사업체의 75.7%는 '현행 제도로 근로시간 단축에 대응 가능'하다고 답한 반면, '대응이 어렵다'는 답변은 24.3%에 불과했다.
규모가 큰 300인 이상 사업체가 80.6%가 대응할 수 있다고 답했을 뿐 아니라, 비교적 규모가 작은 300인 미만 사업체도 75.6%는 대응 가능하다고 답했다.
탄력근로제 도입 사업체들은 제도 도입 과정에서 겪은 주요 애로사항으로 '임금보전 방안 마련'(44.3%)이나 '장시간 불규칙 근로'(38.5%)가 주를 이뤘다.
사업체 규모 별로 보면 300인 이상에서는 '근로시간 사전 특정', 300인 미만에서는 '임금보전 방안 마련' 응답이 가장 높았다.
반면 '단위기간 합의 곤란' 답변(10.6%)은 6개 답변 항목 가운데 2번째로 낮은 순위를 기록했고, 특히 1순위 답변만 모아서 보면 2.5%에 불과했다.
이들 사업체들이 탄력근로제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는 사항에 대해서도 '개선사항 없음' 답변이 49.2%로 가장 높았는데, 이는 두번째로 높은 답변인 '사전특정 요건 완화'(24.6%)의 두 배에 가까웠다. '단위기간 확대'를 요구하는 답변은 3.5%에 불과했다.
특히 사업체 규모별로 보면 300인 이상 사업체 중 17.6%가 '단위기간 확대'를 요구했지만, 300인 미만 사업체는 3.0%만이 '단위기간 확대'를 요구했다.
이에 반해 '짧은 단위기간'을 문제 삼은 답변은 15.7%에 불과했다.
탄력근로제를 도입하기 위한 개선사항으로는 300인 이상 사업체는 '서면합의 요건 완화'(56.7%)를, 300인 미만 사업체는 '근로시간 사전특정 요건 완화'(46.4%)를 주로 답했다.
하지만 '단위가간 확대'를 요구한 답변은 겨우 0.9%로, 300인 미만(0.9%)과 300인 이상(1.9%) 모두에서 답변 순위가 가장 낮았다.
그동안 보수진영과 경영계는 주52시간 상한제에 따른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해결하기 위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노동계 및 시민사회는 탄력근로제는 곧 연장근무수당 없이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는 제도로, 사실상 주52시간 상한제를 무력화하는 조치라며 강력히 반대해왔다.
하지만 진보정당을 제외한 여야 정치권은 경사노위에서 단위기간 확대를 비롯한 탄력근로제 개선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내년 2월 국회에서 관련 법 개정을 강행해 단위기간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경사노위도 이날부터 단위기간 확대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획이지만, 탄력근로제 도입을 위한 산업현장의 애로사항 해결이라는 목적에 비춰보면 차라리 제도상의 다른 문제점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