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태안화력 낙하산, 구의역 닮은 '발피아'

태안화력, 전직자 8명이 모두 팀장급 이상…하청업체 장악
낙하산 배경에는 발전업계 카르텔 구조…민간 자격증의 위력
인력 줄어 2인 1조 불가…"구의역 판박이"

(사진=자료사진)
최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 청년 김용균(24)씨가 근무 중 숨진 사고 이면에는 하청업체를 장악한 발전업계 퇴직자들로 인해 안전관리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 '발피아(발전소 마피아)'들이 안전을 책임지는 동안 인력난에 시달리던 현장에서는 2인 1조 수칙이 지켜지지 못했다는 점 등에서 이들은 2년 전 구의역 참사 때 드러난 '메피아'에 비견된다.


◇ 하청업체 장악한 발전업계 마피아

17일 국회 과방위 소속 민중당 김종훈 의원실에서 조사한 '전력관련기관 민간정비업체 이직현황'을 보면, 김씨가 소속된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 태안사업소'에는 발전업계 출신 임직원 8명(지난해 10월 기준)이 모두 팀장급 이상 보직을 맡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 5명은 태안발전소를 운영하는 원청업체 '한국서부발전'에서, 2명은 한국전력의 자회사 한전KPS에서, 나머지 1명은 한국수력원자력에서 각각 재취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민중당 김종훈 의원실에서 조사한 '전력관련기관 민간정비업체 이직현황'.
정부가 20여년째 추진해온 발전소 정비분야 민간 외주화의 바람을 타고 하청으로 흘러들어온 이들은 모두 소장‧팀장‧차장 등 관리직을 맡았다.

주요 업무는 현장 노동자들의 업무와 안전을 관리감독하고 서부발전 측에 보고하는 일. 연봉은 직급에 따라 최소 5천만원 중반에서 많게는 7천만원 넘게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 퇴직자 카르텔 핵심은 민간 자격증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정년퇴직을 앞둔 이들이 비교적 쉽게 하청업체로 이직할 수 있었던 건 '발전 정비 자격'이라는 자격증이 한 몫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자격증은 한국서부발전 등 5개 발전소 운영업체가 모여 만든 '한국발전교육원'에서 발전소 근무 경력 등을 기준으로 발급한다.

업계 내에서는 이 자격증이 국가기술 자격처럼 인정됐다는 게 현장근무자와 노조 등의 판단이다. 급수에 따라 발전정비사 3급은 기능사, 2급은 산업기사, 1급은 기사로 읽혔다고 한다.

김씨의 유품. 휴대전화 충전기,물티슈, 세면도구 등.(사진=공공운수노조 제공)
이 자격증은 특히 운전정비를 맡는 하청업체가 원청인 발전소 운영회사와의 계약을 따는 과정에서 위력을 나타냈던 것으로 보인다. 자격증 보유직원 수가 일정한 수준을 넘어야만 심사에 지원할 조건이 됐기 때문이다.

하청업체에 낙하산으로 내려올 수 있던 배경에 이처럼 경력에 따라 주어지는 민간자격증을 중심으로 잘 짜여진 카르텔 구조가 있던 셈이다.

국회 산자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은 "'퇴직자를 몇명 보유하고 있는가'에 따라 입찰이 결정되기 때문에 이건 퇴직자 일자리 만들어주기"라며 "위험한 일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얼마나 열악해지겠나. 이번 사고와 무관하지 않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원청인 한국서부발전 측은 "아무래도 설비를 잘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업체와 계약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런 조건을 달았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 2인 1조 유명무실…구의역 참사 반복

내부 직원들은 야간근무 등 실무에 투입되지 않는 이 발피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동안 현장 점검 인력만 계속 줄어들었다고 주장했다.

숨진 김씨의 한 동료는 "우리는 실무 경험 없이 관리자 행세하는 그들을 올드보이, OB라고 불렀다"며 "발전소의 주력 설비인 보일러 터빈만 보다가 오니 하청업체에서 다루는 변두리 설비는 구경도 못한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김씨의 이름이 붙은 작업복과 지시사항을 적어둔 것으로 보이는 수첩엔 탄가루가 묻어 있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제공)
한국발전기술 노조 관계자 또한 "누워서 떡먹기로 재취업한 OB들을 보면서 월 200받는 젊은 직원들은 '우리가 그들을 먹여 살린다'고 얘기할 정도"라며 "그런 현장 점검 인력은 현재 더 감축된 상태"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씨가 지난 11일 숨질 당시 현장점검에 배치된 투입된 인력은 6명에 불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9명이 있었던 지난 2015년 용역계약 체결 당시보다 3명이나 줄어든 것이다.

컨베이어 벨트 운전원인 김씨가 직접 나서야 했던 것도 '2인 1조' 지침이 유명무실해지고, 떨어진 석탄을 치우는 '낙탄 처리' 인력이 야간에 편성되지 않아서다.

이는 지난 2016년 5월 서울 지하철 구의역에서 정비공 김모(당시 19세)군이 홀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열차에 끼어 숨진 사고의 배경으로 지목된 '메피아'와 닮은 모습이다.
김씨가 쓰던 플래시. 김씨는 플래시를 켜야 앞이 겨우 보이는 밀폐된 공간에서 석탄을 꺼내는 일을 했다.(사진=공공운수노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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