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도 개혁 방향을 놓고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하던 여야5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검토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합의안을 이끌어냈다.
이는 바른미래당 손학규,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단식에 들어간지 열흘 만이다. 두 사람은 이날 단식을 중단했다.
여기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지지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메시지도 한몫했다.
이날 합의가 이뤄지기까지 야3당의 집요한 압력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연동형' 찬성으로 돌아선 게 크게 작용했지만, 끝까지 버티던 자유한국당이 전향적으로 태도를 바꾼게 주효했다.
합의안을 발표하면서 야3당이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김성태 전 원내대표는 앞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해 원칙적으로 동감한다는 내용의 합의안에 서명하려다가 당내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이날 합의안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는 내용 뿐아니라 의원정수를 10%이내에서 늘리는 방안도 검토한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야3당과 많은 전문가들은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선 의원정수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국민 여론은 연동형에 찬성하면서도 국회에 대한 불신으로 정수 확대에는 반대가 더 많다.
한국당 역시 국민들이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정수 확대에 적극 반대했고, 야3당은 '선거제도 개혁에 뜻이 없는 것'이라고 거세게 반발해왔다.
이번에 극적인 합의가 이뤄지면서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기대감은 한층 높아졌다.
'연동형'이라는 구체적인 내용으로 여야가 뜻을 모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청와대까지 나서 적극 지지하겠다는 뜻을 내비치면서 분위기는 어느때보다 무르익었다.
정치권은 선거제도 개혁 관련 법안을 오는 1월 임시국회에서 합의 처리한다는 타임 테이블도 마련했다.
그러나 선거제도 개혁이 순탄하게 결실을 맺을지는 미지수다. 우선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결론을 낼 지역구 의원 선출방식을 놓고 여야가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지금의 소선구제를 원하고 있지만, 한국당은 도농복합선거구제(대도시는 중대선거구제, 농어촌 지역은 소선구제)를 더 선호하는 분위기다.
의원정수를 늘리기 위해 여론을 설득할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이를 위해선 세비 동결은 물론 적지 않은 국회 특권을 내려놔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같은 '연동형'이라 하더라도 권역별로 나눠서 할지, 한꺼번에 전국을 묶어서 할지 등을 놓고도 각론에서 엇갈릴 공산도 적지 않다. 구체적인 방식에 따라 각당의 득실이 달라질수 있기 때문이다.
이정미 대표가 "합의를 끌어내는데 거대 양당이 보인 태도를 생각하면 앞으로 한 달간 과정도 험난할 것"이라면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선거제도 개혁 관련 법안 개정과 동시에 곧바로 권력구조개편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 논의를 시작한다'는 조항이 복병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는 나경원 원내대표가 주장한 것인데, 한국당은 개헌을 통해 대통령제가 아닌 이원집정부제나 의원내각제로 바꿔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4년 중임 대통령제를 당론으로 정했다. 청와대도 같은 입장이다.
여야가 권력구조 개편에서 평행선을 달린다면 선거제도 개혁에서 접점을 찾더라도 모든 논의가 무위도 돌아갈 수 있다는 어두운 전망도 나온다.
물론 가장 최상의 시나리오는 선거제도 개혁에 이어 권력구조 개편에서도 여야가 당리당략을 떠나 합의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1987년 개헌이래 30년 이상을 지나면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정치제도가 획기적인 변화를 맞게 될지는 향후 한달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