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의 '키맨' 역할을 하며 위에서 시킨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해서 '마타하리(도맡아서 한다)'라고 불리웠던 것도 옛말이 될 것 같습니다.
양승태 사법부 시절 '차기 대법관 1순위'로 평가받던 그가 이제는 조금 다른 의미로 '넘버 1'을 차지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법원이 최근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사법농단 의혹 사건에서 임종헌 전 차장이 졸지에 '넘버 1'의 운명을 짊어지게 생겼다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사법농단 의혹 수사팀(팀장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의 첫 압수수색 대상도 임 전 차장이었습니다.
첫 구속영장 청구, 첫 구속, 첫 구속기소 모두 임 전 차장에게 돌아갔습니다.
여기다 누구나 임 전 차장의 윗선이라고 봤던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으로의 연결선이 법원의 영장기각으로 잘려나갔습니다.
이쯤되면 임 전 차장을 이번 사건의 '몸통'이라고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법조계에서는 임 전 차장이 이미 구속된 이상 재판에 사활을 걸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이 추후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죠.
하지만 중대한 사정 변화가 생겼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졸지에 본인이 '넘버 1'이 된 것입니다. 대략 '넘버 3~5'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고나니 '넘버 1'이 됐습니다.
실무자로 일했다고 하는 건 책임을 나눠 질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만, 책임자로 일한 것으로 귀결된다면 소위 '독박'을 써야할 수도 있습니다.
옛날 일을 떠올려볼까요? 자택에 대한 첫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됐을 때 임종헌 전 차장은 현장에서 검찰 관계자들에게 "정말 나한테만 (압수수색영장이) 발부됐느냐"라고 여러 차례 물었습니다.
전 대법관에 대한 영장기각으로 임 전 차장은 법원이라는 조직이 본인선에서 '꼬리자르기'를 시도했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법원은 임종헌 전 차장에게 '넘버 1'이라는 독배를 넘겼습니다. 이제 임종헌 전 차장의 '결단'을 지켜봐야겠습니다. 검찰의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영장 재청구 방침과 맞물려 주의깊게 지켜봐야할 '관전 포인트'가 생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