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목공학 전문가들은 이번 열수송관 파열 사고는 연약한 지반위의 무계획적인 건축물 공사로 인한 지반 변형이 근본 원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백석역 인근 대형 공사장 주변에서 도로 침하 사고가 잇따라 발생한 점은 열수송관 사고와 땅 꺼짐 현상 간의 연관성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003년 7월 대한주택공사(현 LH)가 발표한 '고양일산(2)지구 대지조성 및 기반시설공사 토질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일산신도시(일산동 일대) 지층 상부는 모래로 구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 차이는 있지만 지표면으로부터 0.2~6.5m 정도에 실트질모래 및 모래가 섞인 실트질 점토가 분포돼 있으며, 상대밀도는 '느슨~보통조밀'로 연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트질모래란 점토가 섞여 약간의 점성이 있는 모래로, 서울 잠실 석촌호수 주변 지역도 실트질모래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토목공학 전문가들은 일산동 보다 모래 분포도가 높은 백석동 일대는 수년간 부적절한 토목공법이 적용된 건물 공사로 지반이 침하돼 배관 이탈로 이어졌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퇴적층인 일산동과 달리 백석동 일대는 진흙층을 복토해 신도시로 조성한 지역이다.
한강 바닥을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가 한강변에 둑을 쌓아 개활지로 만들어 농경지로 활용한 곳이기도 하다.
장성환 대진대학교 건설시스템공학과 교수도 "배관 절반 크기의 용접부위가 떨어져 나가 사고가 발생했다"면서 "사고 지점 인근 도로에서 지난해 2월 발생한 대규모 지반 침하 현상으로 배관이 이탈됐을 가능성까지 파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목공학 전문가들이 이처럼 지반 변형에 대한 조사를 강조하는 것은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취지다.
열수송관을 비롯한 도시가스, 상하수도, 전기·통신선 등 많은 기반시설이 도로를 중심으로 매설돼 있는 만큼 자칫 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고양시는 터파기 공사 과정에서 지하 굴착 중 물막이 틈새로 누수가 발생하면서 모래층이 쓸려나가 침하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했다.
고양시에 따르면 이 사고를 포함해 일산에서는 지난 2005년 이후 모두 9차례 크고작은 땅꺼짐 현상이 반복되고있다.
이 교수는 "지금이라도 지질의 특성에 맞는 공사 매뉴얼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며 "자치단체에서도 지반의 특성을 고려해 공법 개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양시도 연약한 지반에 대한 조사 필요성은 공감하고 있지만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조사를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지난 6일 이재준 고양시장은 열수송관 파열 사고 현장을 찾은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정부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건의서를 전달했다.
이 시장은 "1기 신도시가 조성된 지 25년이 지나 기반시설 노후화가 진행되고 있고, 지하 기반시설은 관리 주체가 달라 정부 차원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이 총리에게 설명했다.
건의서에는 ▲일산신도시 기반시설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점검과 대책 수립 ▲연약지반의 노후 열수송관 최우선적 일제 점검 및 교체 ▲신규 택지개발지역 열수송관 공동구 포함 설치 등의 내용이 담겼다.
또 일산동구 백석동과 마두동 일대 아파트 단지 2,861세대와 상가 17곳에 난방공급이 중단돼 주민들이 밤새 추위에 떠는 등 불편을 겪었다.
지난 5일부터 9일 오후 2시 현재까지 한국지역난방공사에 접수된 인명피해는 57건, 자동차 등 대물 파손 65건이 각각 접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