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 없이 자습만 할래?'…가짜 체험학습에 고3 내모는 학교

보름치 체험학습 신청 안 하면 7교시까지…급식은 없어
담임교사가 '친척집 방문, 도서관에서 진로 고민' 예시까지 보여줘
경기도교육청 "체험학습은 학생 자율, 학교가 강요해서는 안 돼"

(사진=자료사진)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수능이 끝난 고3 학생들에게 현장체험학습 신청을 강요해 논란이 일고 있다.

6일 학생과 학부모에 따르면, 경기도 A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지난달 27일 정기고사가 끝난 후 학교로부터 현장체험학습 신청서를 제출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현장체험학습은 학교장 허가로 교외 체험학습을 수업으로 인정하는 제도로 한 학생당 20일 이내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A고등학교 학부모들은 학교가 체험학습을 안내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협박에 가까운' 강요를 했다고 주장했다.

학교 측이 체험학습 날짜를 12월 6일부터 27일까지로 못박고, 신청하지 않을 경우 7교시까지 자습을 해야 한다고 공지했다는 것이다.

학부모 B씨는 "선생님이 이걸 안 쓰게 되면 7교시까지 나와 있어야 하고 급식은 못 준다고 했다"며 "사실상 어리숙한 아이들을 협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급식 편성도 안 돼 있으면서 7교시까지 하는 게 말이 되냐고 학부모들이 따지자 그제서야 '강요는 아니'는 아니라며 슬그머니 전달사항을 추가했다"고 말했다.

A고등학교 담임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체험학습 신청서의 예시를 보여주며 '그대로 베끼지 말고 비슷하게 쓰라'고 지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학교 교사가 든 예시로는 '친척집을 방문해서 가족 간의 정을 나눴다' '도서관에 가서 진로에 대한 고민을 했다' '부산에서 맛집 탐방을 했다' 등이 있었다.

이처럼 '남아서 자습을 해야 하며 급식도 안 된다'는 학교 측 강압에 못 이겨 대부분의 학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체험학습 신청서를 꾸며 제출한 상황이다.

B씨는 "친척집 방문이 체험학습도 아니거니와, 갑작스럽게 보름치의 계획들을 오전과 오후로 나눠 자세하게 쓰라고 하니 거짓말을 하라는 꼴밖에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4분기 수업료가 아깝다는 생각도 들고 이럴 거면 차라리 방학을 빨리 하는 게 낫겠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해당 학교 학생 C군도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학교에서 7교시까지 붙잡혀 있느니 체험학습을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걸 수도 있지만, 체험학습 신청을 안 하면 급식도 안 주고 배달음식도 안 된다고 하니 아이들이 화가 많이 나 있다"며 학교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대해 A고등학교는 "필요하고 원하는 학생들에게 체험학습 신청서를 받는 것이지 강요는 아니"라며 "신청을 하지 않은 학생들에 대해서는 7교시까지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받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학교장이 승인하는 현장체험학습 계획서를 목적에 맞게 꼼꼼하게 받는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다"며 "학교는 최대한 아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A고등학교는 논란이 계속되자 지난 4일 현장체험학습을 신청하지 않은 3학년 학생들에게 추가 점심급식 신청을 받았다.

이어 같은 날 수능 이후 교육활동에 대한 가정통신문을 뒤늦게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했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수능이 끝난 고3학생들에게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학사일정을 운영하도록 공문을 보냈다"며 "현장체험학습은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쓰는 것이지, 학교에서 반강제적으로 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능이 끝난 후 고3 교실의 파행은 해마다 되풀이되는 구조적 문제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송재혁 대변인은 "수능 후 고교 3학년 교실은 사실상 교육적으로 의미가 상실된 활동을 형식적으로 운영하는 경향이 있다"며 "합의를 거쳐 3학년에 한해 수업일수 자체를 단축하는 등 교육과정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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