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프로그램들은 예능 프로그램과 교양 프로그램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잡고 있으며 시청자들의 지적 욕구를 채워주는데 집중한다.
인문학 예능 프로그램의 포문을 연 것은 tvN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다. 나영석 PD가 연출을 맡은 '알쓸신잡'은 지식 수준이 상당한 다양한 분야의 패널들이 여행을 다니면서 각 장소에 얽힌 인문학적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낸다.
지난해 첫 방송된 시즌1에는 유희열·유시민·황교익·김영하·정재승이 패널로 출연했고, 시즌2에는 유희열·유시민·황교익·유현준·장동선이 출연해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이들은 수준 높은 지식을 과시하는 게 아니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전달하는 방식을 택했다. 마치 마인드맵을 그려 가듯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현재에 적용될 수 있는 의미까지 찾아냈다.
시즌3에는 시청자들의 요구를 반영해 최초 여성 출연자인 김진애 건축가가 합류했다. 사실 시즌2 제작 당시에도 제작진은 여성 패널 섭외에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시즌3에 김진애 건축가와 함께 할 수 있었다. 현재 김진애 건축가는 유희열·유시민·김영하·김상욱 중 유일한 여성 출연자로 여성주의적·건축학적 시각으로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JTBC '방구석1열'은 '영화'라는 테마로 지식 토크를 진행한다. 영화를 사랑하는 패널들은 '영화' 콘텐츠에 인문학을 더해 이야기를 나눈다.
가수 윤종신과 장성규 아나운서가 진행을 맡고 유시민 작가와 변영주 감독이 인문학적 관점으로 영화 이면에 감춰진 폭 넓은 지식을 전한다.
이 프로그램은 가장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영화 콘텐츠에 대해 우리가 몰랐던 궁금증을 해소한다. 영화가 자체적으로 가진 1차적인 재미를 넘어 그 배경과 인문학적 해석이 재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미 검증된 지식인 유시민 작가는 물론이고 늘 진보적으로 영화계를 이끌어 온 변영주 감독의 입담까지 어우러져 '알쓸신잡'과는 또 다른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사실 최근까지도 정치·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시사'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자신이 가진 인문학적 지식을 내보이는 프로그램은 없다시피 했다. 어딘가 따분하게 느껴지는 '인문학' 소재가 예능 프로그램의 '밑천'이 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앞선 '시사' 예능 프로그램들이 보편적 관점을 뒤바꾸면서 일상적인 분야에서까지 이런 지식을 다루는 프로그램들이 생겨났다. 가볍게 웃음을 주는 것만이 아니라 유익한 생각과 메시지를 전하는 것 역시 예능의 목적이 되기 시작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서점가 인문학 열풍이라든지 인문학 강의라든지 그런 수요에 대한 조짐은 이미 있었다. 새로운 소재는 언제나 필요하니까 예능프로그램도 거기에 맞춰서 지식을 다루고 있는 것이고 예능이 인문학에 적응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지식을 전하는 예능프로그램들이 재미를 담보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누구나 지식을 얻는 것에 대한 쾌감이 있다. 적당히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지적 포만감을 줄 수 있는 선에서 재미있게 프로그램을 예능적으로 편집한다. 본격적으로 파고들기 시작하면 지루할 수 있지만 거기까지는 들어가지 않는다"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