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많은 세상의 희망을 찾아, 어둠 속의 빛을 찾아
CBS는 세월호 참사와 대구 지하철 참사 유족, 화성 씨랜드 화재 참사 유족, 태안 해병대 캠프 사고 유족, 천안함 사건 생존자뿐 아니라 미국 9‧11 테러 사건 유족, 컬럼바인과 플로리다 파크랜드 고교 총기 난사 사건 생존자, 파리 테러 유족, 에어프랑스 추락 사건 유족 등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테러‧재난 사건 유족과 생존자들을 취재한 라디오(표준FM 서울 98.1MHz) 특집 해외 르포 4부작「남겨진 이들의 선물」을 11월 12일부터 15일까지(19:25~19:50) 나흘간 방송한다.
1부 ‘유족 119’
2016년 유경근 세월호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유럽으로 가서 각국의 재난 참사 가족들을 만난다. 그때 그는 프랑스에서 재난 참사 피해자 협회 연대 ‘펜박’(FENVAC)이라는 단체의 관계자들을 만난다. 펜박이 하는 일은 이전에 재난을 겪은 사람들을 새로 발생한 재난 현장에 ‘출동’시키는 것이다. 일종의 ‘유족 119’이다. 펜박은 국가와 협약을 맺어서 국가의 이름으로 파견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재난을 경험한 당사자들이 재난을 당한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제일 잘 아는 것 아니냐는 판단 때문이다. 출동이란 단어로 세상을 보니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2014년 이후 4년이 넘는 시간 세월호 유족들은 어떻게 살고 무슨 힘으로 살고 있고 어떻게 그들의 정신을 형성해 왔나? 어떤 순간 그들의 눈에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세상의 슬픈 사람들이었다.
2부 ‘세월호에 출동한 사람들’
세월호 참사 발생 일주일 뒤 두 대의 차가 진도대교를 통과했다. 그 차에 탄 사람들은 진도대교를 넘어서자 침묵 속에 빠졌다. 그들은 대구 지하철 참사 유족들이었다. 대구 지하철 참사 유족들이 팽목항에 간 이유는 무엇일까? 비슷한 시각 한 깔끔한 신사가 팽목항에 나타났다. 그는 별다른 말이 없었지만, 명함을 한 장 남겨 두고 갔다. 화성 씨랜드 화재 참사 유족인 ‘한국어린이안전재단’ 고석 대표였다. 그들은 왜 약속이나 한듯 팽목항에 나타났을까? 지나간 세월 동안 그들이 아픈 삶을 견뎌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3부 ‘파리의 천안함 병사’
천안함 생존자 최광수 씨는 사건 발생 두 달 뒤 전역한다. 그 사이 그는 “양심선언을 하라”는 압박에 시달리고 댓글에 시달리고 악몽에 시달리고 결국은 자비로 정신과 진료를 받던 중 한국과 좀 떨어져 있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간다. 그가 도착한 이듬해 떼제베 탈선 사고가 일어난다. 그때 그는 낯선 속보를 본다. 속보의 내용은 ‘심리 치유팀’이 파견되었다는 것이다. 심리 치유팀이 재난 현장에 간 것이 속보로 뉴스에 등장하는 것이 그에게는 낯설었다. 그런 일이 한국에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호기심이 인 그는 뉴스를 찾아보다가 펜박이란 단체를 발견한다. 2014년 프랑스에서 세월호 참사 뉴스를 듣는다. 2015년에는 파리 테러가 일어났다.
4부 ‘희망, 희생자, 생존자, 변화를 만드는 자’
세월호 유족 최경덕 씨는 세월호가 인양되었어도 배 가까이 가는데 두 달의 시간이 걸렸다. 많은 학생이 발견된 4층 유리창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아들 성호군도 바로 거기서 발견되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다른 유리창에 대한 기억도 있다. 9‧11테러의 유리창이다. 테러에도 불구하고 단 한 장의 유리가 깨지지 않고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한 장의 유리는 반드시 깨졌어야 하는데 깨지지 않아서 절망의 상징이 됐고 다른 한 장의 유리는 기적처럼 깨지지 않아서 희망의 상징이 됐다. 과연 큰 상실, 비극, 무거운 슬픔 속에 있는 최 씨에게 희망은 무엇일까? 그는 희망을 찾아 나섰다. 9‧11 테러 유족이 생각하는 희망, 컬럼바인 사건 생존자들이 스스로 만든 희망,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희생자, 생존자이면서 변화를 만드는 자’로 규정한 플로리다 총기 난사 사건의 고등학생 등 세상의 슬픈 사람들에게 희망에 관해 묻는다.
아직 우리나라는 재난의 경험을 안전한 사회를 위한 소중한 자원으로 만드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적다. 아직 유족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가 아무리 고통스러운 것이라도 미래를 만드는 데는 과거가 필요하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변화에는 가장 핵심적이다.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유족들은 상황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려는 고통스러운 노력을 했기 때문에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고통스럽지만, 미래를 위한 희망의 요소가 있다.
재난 경험은 안전한 사회를 위한 소중한 자원
유족들은 아직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해서 노력하는 것을 체념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것을 희망이라고 부른다. 진심으로 변화를 원할 때, 우리 모두에게 좋고 큰 변화가 필요할 때 꼭 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이런 희망이다.
이번 특집을 제작한 정혜윤 피디는 “살면서 거의 모든 사람은 두 가지 일을 겪는다. 사랑과 죽음이다. 그 중 사랑하는 누군가의 죽음은 사람을 두 번 다시 예전처럼 살 수 없게 만든다. 이 일을 가장 비극적으로 겪은 유족들이 혼돈 속에서 삶을 ‘견디고 서로 돕는’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아주 중요하다. 그들이 잃어버린 것(사랑하는 사람, 가치, 삶의 의미), 버려진 느낌, 고독, 고통은 우리 모두에게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삶을 살든 상실, 슬픔, 죽음, 고통은 어떻게든 우리를 찾아온다. 유족들은 끝까지 용기 있게 진실을 감당했고 무력한 희생자에서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는 사람, 변화를 원하는 사람, 변화를 만들 수도 있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유족들이 사랑의 힘으로 만드려는 세상은 어떤 것일까
그들이 약함에서 강함으로, 힘없는 사람에서 힘 있는 사람으로, 무력한 사람에서 꼭 필요한 사람으로 바뀌어 가는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가 가장 강할 때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가장 강할 때, 우리의 가장 좋은 부분은 우리의 미래가 더 낫게 바뀌길 원한다. 우리가 강할 때 우리는 자기 인생을 체념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들의 사랑을 명예롭게 만들 줄 안다. 사랑한다는 것의 핵심에는 사랑의 힘으로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데 있다. 유족들이 사랑의 힘으로 만들려고 하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많은 사람이 이번 특집을 함께 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경험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의미 있는 차이를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정 피디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