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바'를 탄생시킨 애니메이션 기업 ㈜투바앤은 이 시리즈물을 전 세계에 알리려는 노력을 꾸준히 이어왔다. 최근에는 넷플릭스와 손잡고 내놓은 신작 '라바 아일랜드'를 전 세계 190여개국에 선보이는 등 눈에 띄는 행보로 회자되고 있다.
'라바' 시리즈는 어떻게 한국을 넘어 전 세계인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있을까. 최근 서울 종로구 투바앤 사옥에서 만난 투바앤 제작본부 안병욱 감독과 남상원 PD, 글로벌사업본부 배창일 본부장과의 대화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라바'가 첫선을 보인 때는 지난 2011년. 앞서 투바앤에서 선보인 슬랩스틱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하다가 2008년부터 '라바' 시리즈에 합류한 원년 멤버 안병욱 감독에게 '라바'가 태어난 계기를 물었다.
"나는 넷플릭스를 통해 선보인 '라바 아일랜드'를 연출했고, 기존 시즌은 모두 맹주공 감독께서 담당했습니다. 맹 감독에게 두 아들이 있어요. 두 아이가 장난치면서 재밌게 노는 모습에서 '라바' 콘셉트를 구상했고, 곰·고양이·강아지처럼 흔한 캐릭터들과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애벌레를 택한 것으로 압니다."
안 감독은 "벌레를 혐오스럽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고 '레드'와 '옐로우'가 그리 귀엽게 생기지도 않았잖나"라면서도 "꾸준히 노출되고 이야기로 웃음을 준 덕에 이제는 사람들이 '귀엽다'고 여길 만큼 친근한 이미지로 각인됐다"고 설명했다.
'라바' 시리즈가 대사 없이 단순한 표정과 몸짓, 상황 설정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대해서는 "우리 회사 모든 콘텐츠는 항상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외국에서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보편적인 캐릭터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애쓴다"며 "'라바' 역시 대사 없이 이야기를 재밌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쉽게 어필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 TV서 디지털로 옮겨가는 시장 흐름…"'라바'와 딱 맞아떨어졌다"
배 본부장은 "대사 없는 슬랩스틱이어서 (널리 알리기에) 용이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쪽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만드는 일이 무척 힘들다는 것을 잘 안다"며 말을 이었다.
"일단 '라바' 콘텐츠 자체가 처음부터 눈에 띄었어요. 그렇게 재밌게 만들 수 있는 스튜디오는 전 세계적으로 봐도 거의 없거든요. 내가 할 일은 기존 업체들이 하던 방식을 벗어나, 얼마나 유연하게 그 좋은 콘텐츠의 독특함을 알리느냐 하는 데 있었죠."
영상 콘텐츠 수요가 TV 채널에서 유튜브 등 디지털 플랫폼으로 빠르게 옮겨가는 시장 흐름은 '라바'에게 호기였다. "'라바' 글로벌화와 디지털 플랫폼 붐업이 딱 맞아떨어졌다"는 것이 배 본부장의 표현이다.
"국내 애니메이션 콘텐츠로는 처음으로 2015년 넷플릭스와 '라바' 시즌 1·2·3 서비스 계약을 맺었죠. 넷플릭스와 접촉하게 된 이유도 '라바'가 기존 TV 쪽에서 빛을 발하지 못한 데 있어요. '이것을 어떻게 알려야 할까' 고민하다가 새로운 플랫폼으로서 넷플릭스 이야기를 접했거든요. 올해에는 넷플릭스와 오리지널 시리즈 계약을 맺고 '라바 아일랜드'를 내놨는데, 이것도 국내 처음이죠."
'라바'와 넷플릭스의 만남은 윈윈 전략으로 평가된다.
투바앤과 넷플릭스 협업의 가교 역할을 하는 남상원 PD는 "우리 콘텐츠가 넷플릭스를 통해 190여개국에 동시 공개된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고, 부수적인 마케팅 효과도 상당하다"며 "넷플릭스 역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서 성장을 꾀해야 하는 입장에서 '라바' 콘텐츠가 구독자를 늘리는 데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창일 본부장 역시 "특히 미국에서는 '넷플릭스 할래?'라는 말이 '영화 볼까?'라는 말로 인식될 만큼 넷플릭스가 대중화 되다보니, 이번 넷플릭스와의 오리지널 시리즈 계약은 미국 시장 진입 장벽을 허물어뜨리는 계기가 됐다"며 "인종·언어 장벽이 없는 애니메이션이어도 들어가기 힘든 곳이 미국 시장이었는데, 넷플릭스를 통해 '라바'를 현지 구독자들에게 선보이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 "수평적 관계 위에서 서로 소통하고 협업해야만 좋은 작품 나온다"
그 동력은 애정을 바탕으로 빚어낸 캐릭터가 오래 살아남기를 바라는 이들의 염원에 있다. 각자 자리에 충실하면서도 서로를 존중하는 수평적인 조직 문화 안에서 그 염원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안병욱 감독은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상상력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라며 "물론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영상 속에 머물지만, 아이들은 이를 마치 살아 있는 친구처럼 여긴다. '라바' 캐릭터도 그런 느낌을 계속 유지해 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배창일 본부장은 "우연찮게 이쪽 업계에 발을 들였는데, 국내에 애니메이션으로 크게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그 성공을 이뤄내면 대박'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도전하게 만든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콘텐츠를 만드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어떻게 비즈니스로 연결시킬까 하는 인식이 이쪽 업계에서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콘텐츠는 뛰어난데 잘 알려지지 않는다거나, 사업 수완은 좋은데 콘텐츠가 훌륭하지 못한 식의 불균형이 심각해요. 창작자와 비즈니스하는 사람이 서로를 깔보는 탓일 수도 있죠. 영원한 숙제일 것 같기도 한데, 그것을 얼마나 유연하게 가져갈 수 있느냐가 관건으로 보입니다."
그는 "이쪽 분야 역사가 길지 않다보니 성공 모델 자체가 굉장히 부족하다. 정말 이 일로 보람과 삶의 여유를 찾으면서 즐겁게 일하는 사람이나 회사를 아직 못 봤다"며 "그러한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는 모델을 만들고 싶다"고 부연했다.
남상원 PD는 "과거 영화제작사 명필름 심재명 대표의 '영화는 꿈이자 밥'이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이 점에서 PD로서 좋아하는 일뿐 아니라 사업화에 대한 이해를 키우는 데 매진하고 있다"며 "'라바'의 지향점은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애니메이션이다. 그 길로 가는 첫 단추를 잘 꿴 느낌"이라고 말했다.
특히 안병욱 감독은 "애니메이션을 하다 보면 감독이라는 인물이 부각되고 그들의 권위에 의해 만들어지는 작품이 많지만, 결국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데도 사람들 사이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권위의식을 내세워 자기 의견만 표출하기보다는, 수평적 관계 위에서 서로 소통하고 협업해야만 좋은 작품이 나온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