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신체 접촉, 스토킹… 드라마 속 '로맨스'로 가장한 '폭력'들

민우회, 2017년 7월부터 2018년 6월 방송 드라마 전수조사
로맨스로 가장된 폭력 중 강제 신체 접촉이 57.51%로 가장 높아
행동 통제 14.07%, 스토킹 8.38%, 언어폭력 7.57% 순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는 16일 '드라마 모니터링 결과 발표회'를 열었다. 사진은 2017년 7월부터 올해 6월에 방송된 드라마 중 로맨스로 가장된 폭력 장면을 모은 것이다. (사진=한국여성민우회 제공)
자리를 떠나려는 여성의 손목 낚아채기(SBS '엽기적인 그녀', MBC '왕은 사랑한다'), 내비게이션 방향을 바꿔 원래 목적지가 아닌 곳으로 귀가시키기(MBC '20세기 소년소녀'), 상대가 거절했는데도 꿋꿋이 고백하기(KBS2 '란제리 소녀시대'), 거부 의사를 표했는데도 강제로 신체 접촉하기(JTBC '미스티'), 하이파이브하자고 해 놓고 갑자기 끌어안기(tvN '명불허전'), 잡지에서 보고 배웠다며 갑자기 이마에 기습키스(SBS '훈남정음'), 전 연인의 휴대폰 몰래 보기(tvN '시를 잊은 그대에게')…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방송된 드라마에 이른바 '로맨스' 씬으로 나온 것들이다. 당사자의 동의 없이 이뤄지는 언행이 대다수였지만, 마치 애정 표현의 한 종류인 것처럼 다뤄졌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는 지난 16일 저녁 서울 마포구 합정동 미디어협동조합 국민TV 카페에서 '드라마 모니터링 결과 발표회'를 열었다.

민우회 드라마 모니터링단(40명)은 9개 방송사(KBS1·KBS2·MBC·SBS·JTBC·MBN·OCN·TV조선·tvN) 120개의 드라마 2946편 중 625건의 문제 장면을 분석했다.

발표는 드라마 모니터링 활동을 한 민우회 황소연 활동가가 맡았다. 625건의 상황 중 가장 많은 것은 로맨스(282건, 45.12%)였고, 준로맨스(197건, 31.52%), 짝사랑(146건, 23.36%)이었다. 즉, 로맨스 관계일 때 폭력적인 장면이 가장 많이 나온 것이다.

인물들의 상하 관계 중 사회적 지위는 남성이 우위인 경우가 48.64%(304건)였고, 누구도 우위에 있지 않을 경우가 45.44%(284건), 여성이 우위에 있는 경우가 5.92%(37건)였다.

연령 상하 관계 역시 남성이 나이가 많은 경우가 더 높았다. 남성이 우위인 게 48%(300건), 여성이 우위인 게 9.6%(60건), 우위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42.4%(265건)였다.

로맨스를 가장한 폭력행위 중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은 강제적 신체 접촉(425건, 57.51%)이었다. 구체적인 유형을 살펴보면 손목을 돌리거나 낚아채는 장면이 34.29%(179건)로 가장 많았다.

강제적 신체 접촉 유형으로는 손목 낚아채기, 볼-입맞춤, 포옹, 어깨나 양팔 제압, 손발 만지기, 벽치기 등이 있었다. (표=한국여성민우회 제공)
볼과 입술에 입을 맞추는 것 24.9%(130건), 포옹 13.21%(69건), 어깨와 양팔 제압 8.04%(42건), 손발을 만지는 것 5.36%(28건), 벽치기 3.44%(18건), 얼굴 부위 만지기 3.25%(17건), 붙잡음 2.29%(12건) 등이었다.


이밖에도 뒤에서 포옹 1.34%(7건), 무릎에 앉히거나 무릎을 만지는 것 0.95%(5건), 머리에 손 올리기 0.57%(3건), 갑자기 다가서는 행위 0.57%(3건), 옷 잡아당김 0.38%(2건), 때림 0.38%(2건), 때리는 시늉 0.19%(1건), 입을 닦아 줌 0.19%(1건), 둘러업거나 안음 0.19%(1건)였다.

로맨스를 가장한 폭력행위가 일어날 때 행위 주체는 대부분 남성(534건, 85.44%)이었다. 여성은 14.56%(91건)에 그쳤다. 이때 행위 주체는 자신의 행위에 관해 긍정적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94.24%(589건)로 압도적이었다. 부정적 태도는 5.76%(36건)였다.

피행위자의 성별은 여성이 85.12%(532건)였고, 남성이 6.24%(93건)이었다. 피행위자는 로맨스를 가장한 폭력행위가 일어났을 때 긍정적·부정적 태도가 비슷한 수치로 나타났다. 부정적 태도가 50.08%(313건), 긍정적 태도가 49.92%(312건)였다.

또한 이런 장면이 나올 때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편집요소가 함께 등장했다. 배경음악 깔기가 94.40%(371건)로 제일 높았고, 클로즈업 3.05%(12건), 슬로우 모션 1.01%(4건), 대사 1.01%(4건), 내레이션 0.50%(2건) 순이었다.

결과 발표 후에는 김수아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드라마 모니터링단으로 활동한 소형과 황소연 씨, 이소연 KBS 드라마PD, '괜찮지 않습니다'를 쓴 최지은 작가가 이야기를 나눴다.

위부터 SBS '훈남정음', KBS2 '학교 2017', MBC '밥상 차리는 남자'에 등장한 장면들 (사진=한국여성민우회 제공)
소형 씨는 "왜 굳이 이 불쾌감을 감수하면서까지 시간과 주기적인 노력을 들여서 (드라마를) 봐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컸다. 보이콧이 아니라 적극적인 방법으로 참여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한국 드라마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많이 마련되면 저희가 바라는 시류가 앞당겨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최 작가는 "개별 드라마에 대한 비판은 시간이 지나면 흩어지는 것 같다. 현재 (한국 드라마) 상황이 어떤지를 전수조사라는 방법으로 증명해 냈다고 본다. 이런 자료가 개선 방안을 찾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고 바라봤다. 그러면서 보이콧, 문제되는 점 지적 및 방심위 민원, 좋은 콘텐츠 널리 알리기 등 적극적인 행동을 '동시에' 하는 것을 권했다.

김 교수는 "창작자의 입장에서 양적 데이터는 몰이해 된 추상적인 데이터로 보일 수 있다고 본다"면서도 "오래전부터 반복돼 왔고 시청자들이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여성의 '수동성'이 반복된다. 이런 재현 관습에 대한 데이터로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PD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은 100% 대중을 의식한다. 작품의 사활이 걸려있기 때문"이라며 "여성 시청자들이 주를 이루는 장르라 여성의 시선을 많이 의식한다"고 밝혔다.

이어, "새로운 여성 캐릭터와 서사가 더 많은 대중에게 인기를 끌고 사랑받는다면 드라마 만드는 사람들은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적극적인 대안을 찾는 게 필요한 단계가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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