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방송된 드라마에 이른바 '로맨스' 씬으로 나온 것들이다. 당사자의 동의 없이 이뤄지는 언행이 대다수였지만, 마치 애정 표현의 한 종류인 것처럼 다뤄졌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는 지난 16일 저녁 서울 마포구 합정동 미디어협동조합 국민TV 카페에서 '드라마 모니터링 결과 발표회'를 열었다.
민우회 드라마 모니터링단(40명)은 9개 방송사(KBS1·KBS2·MBC·SBS·JTBC·MBN·OCN·TV조선·tvN) 120개의 드라마 2946편 중 625건의 문제 장면을 분석했다.
발표는 드라마 모니터링 활동을 한 민우회 황소연 활동가가 맡았다. 625건의 상황 중 가장 많은 것은 로맨스(282건, 45.12%)였고, 준로맨스(197건, 31.52%), 짝사랑(146건, 23.36%)이었다. 즉, 로맨스 관계일 때 폭력적인 장면이 가장 많이 나온 것이다.
인물들의 상하 관계 중 사회적 지위는 남성이 우위인 경우가 48.64%(304건)였고, 누구도 우위에 있지 않을 경우가 45.44%(284건), 여성이 우위에 있는 경우가 5.92%(37건)였다.
연령 상하 관계 역시 남성이 나이가 많은 경우가 더 높았다. 남성이 우위인 게 48%(300건), 여성이 우위인 게 9.6%(60건), 우위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42.4%(265건)였다.
로맨스를 가장한 폭력행위 중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은 강제적 신체 접촉(425건, 57.51%)이었다. 구체적인 유형을 살펴보면 손목을 돌리거나 낚아채는 장면이 34.29%(179건)로 가장 많았다.
이밖에도 뒤에서 포옹 1.34%(7건), 무릎에 앉히거나 무릎을 만지는 것 0.95%(5건), 머리에 손 올리기 0.57%(3건), 갑자기 다가서는 행위 0.57%(3건), 옷 잡아당김 0.38%(2건), 때림 0.38%(2건), 때리는 시늉 0.19%(1건), 입을 닦아 줌 0.19%(1건), 둘러업거나 안음 0.19%(1건)였다.
로맨스를 가장한 폭력행위가 일어날 때 행위 주체는 대부분 남성(534건, 85.44%)이었다. 여성은 14.56%(91건)에 그쳤다. 이때 행위 주체는 자신의 행위에 관해 긍정적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94.24%(589건)로 압도적이었다. 부정적 태도는 5.76%(36건)였다.
피행위자의 성별은 여성이 85.12%(532건)였고, 남성이 6.24%(93건)이었다. 피행위자는 로맨스를 가장한 폭력행위가 일어났을 때 긍정적·부정적 태도가 비슷한 수치로 나타났다. 부정적 태도가 50.08%(313건), 긍정적 태도가 49.92%(312건)였다.
또한 이런 장면이 나올 때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편집요소가 함께 등장했다. 배경음악 깔기가 94.40%(371건)로 제일 높았고, 클로즈업 3.05%(12건), 슬로우 모션 1.01%(4건), 대사 1.01%(4건), 내레이션 0.50%(2건) 순이었다.
결과 발표 후에는 김수아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드라마 모니터링단으로 활동한 소형과 황소연 씨, 이소연 KBS 드라마PD, '괜찮지 않습니다'를 쓴 최지은 작가가 이야기를 나눴다.
최 작가는 "개별 드라마에 대한 비판은 시간이 지나면 흩어지는 것 같다. 현재 (한국 드라마) 상황이 어떤지를 전수조사라는 방법으로 증명해 냈다고 본다. 이런 자료가 개선 방안을 찾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고 바라봤다. 그러면서 보이콧, 문제되는 점 지적 및 방심위 민원, 좋은 콘텐츠 널리 알리기 등 적극적인 행동을 '동시에' 하는 것을 권했다.
김 교수는 "창작자의 입장에서 양적 데이터는 몰이해 된 추상적인 데이터로 보일 수 있다고 본다"면서도 "오래전부터 반복돼 왔고 시청자들이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여성의 '수동성'이 반복된다. 이런 재현 관습에 대한 데이터로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PD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은 100% 대중을 의식한다. 작품의 사활이 걸려있기 때문"이라며 "여성 시청자들이 주를 이루는 장르라 여성의 시선을 많이 의식한다"고 밝혔다.
이어, "새로운 여성 캐릭터와 서사가 더 많은 대중에게 인기를 끌고 사랑받는다면 드라마 만드는 사람들은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적극적인 대안을 찾는 게 필요한 단계가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