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사업계획서 대필해 드려요…스타트업 눈 먼 돈

스타트업계, 정부자금 사업계획서 대필 기승
정부기관 벤처 평가위원이 대필사업 병행도
서류심사 강화 역효과…현장실사 전환 필요성 대두

외주 인력사이트에 게재된 대필 광고 (사진제공=김삼화 의원실)
정부 지원금을 받아 창업한 스타트업·벤처 기업들이 정부 정책자금 신청시 필요한 사업계획서를 대신 써주는 ‘대필(代筆) 사업’에서 수익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업계획서 대필을 맡은 벤처기업 대표 중에는 심지어 정부자금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평가위원도 포함돼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바른미래당 김삼화 의원이 11일 ‘스타트업·벤처기업 정부지원 사업현황’을 조사한 결과, 외주 인력사이트 크몽(KMONG)에서 ‘기술혁신형 창업기원 지원사업’ 등 사업계획서를 대필해준다는 광고는 총 252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해당 광고를 살펴보면 창업진흥원 공통양식 대필에는 70만원, 창업진흥원 외 양식 대필에는 99만원을 요구하는 등 창업진흥원 지원사업들을 중심으로 대필이 진행되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자금 지원을 담당하는 창업진흥원은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기관이다.

문제는 예비 창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해당 사이트의 대필광고 중 상당수가 정부 지원금을 받아 창업에 성공한 기존 벤처기업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필을 홍보한 한 제안자의 경력을 보면, ‘2016년부터 현재까지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사업을 운영하는 업체의 대표’라고 기록돼 있다. 실제 확인 결과, 해당업체와 대표의 정보는 사실이었다.

정부 지원금을 받아 창업에 성공했음에도, 본업 대신 예비 창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사업계획서 대필 사업에만 몰두하는 것을 두고 스타트업계 내부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외주 인력사이트에 게재된 대필 광고. 사진제공=김삼화 의원실
더 큰 문제는 대필 사업을 벌이고 있는 이들 중에는 정부지원금과 R&D 선정에 참여하는 현직 평가위원도 있다는 점이다. 해당 광고를 올린 제안자는 자신에 대해 “약 24년 간 ICT 업무 경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최근 10년 간 정부 R&D 사업기획부터 진행까지 경험을 보유한 전문가”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현재 산업기술평가원과, 중소기업벤처부, 서울산업진흥원, 정보통신산업진흥원 등 국가 출연기관 평가위원으로 활동 중”이라고 설명했다. 확인 결과, 정보통신산업진흥원 평가위원 활동은 사실이고, 나머지는 허위로 드러났다.

예비 창업자들이 제출한 사업계획서에 대한 정부 지원의 적절성을 판단하는 평가위원이, 대필 사업을 운영하는 것을 두고 사실상 브로커 역할을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일정 부분 대가를 받고 자신이 대신 써준 특정 업체의 사업계획서를 본인이 재차 평가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대입 전형에서 학생의 자기소개서를 대신 써준 업자가, 입학사정관으로 평가에 참여하는 것과 흡사한 셈이다.

김 의원은 이같은 현상이 좀비(zombie) 벤처기업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잘못된 접근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뚜렷한 사업성과 없이 정부지원금 등으로 연명하는 업체를 의미하는 좀비 벤처를 줄이기 위한 해결책으로 정부가 사업계획서 심사를 강화하자, 서류를 대신 써주는 업체들이 증가했다는 등 역효과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정부지원금 및 R&D 과제 선정과 연관 있는 인사들을 조사해 대필이나 금전거래를 한 사실이 드러나면 전원 징계해야 한다”며 “정부자금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에게 사업계획서 대필 금지를 공지하고 이를 어기면 지원을 취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타트업에게는 수준에 맞는 간소한 사업계획서를 요구하고, 실사중심의 심사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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