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저유소 화재' 스리랑카 노동자에게만 책임 있나

-풍들 날린 외국인 노동자, 동정여론 확산 '이례적'…검찰도 구속영장 기각
-누리꾼 "풍등이 미사일 이냐…대한송유관공사 관계자 과실 여부 수사해야"
-경찰 "제기된 모든 의혹에 대해 철저히 조사할 것"…수사 전담팀 확대

지난 7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화전동 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저유소에서 휘발유 저장탱크 폭발로 추정되는 큰 불이 나 소방당국이 소방헬기를 동원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사진=황진환 기자>
경찰은 CCTV 영상을 통해 휘발유 탱크 인근에 풍등이 떨어져 불이 붙은 것을 확인하고 지난 8일 스리랑카인 A씨를 긴급 체포하고, 다음날 '중실화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때부터 여론은 들끓었다. "300원짜리 풍등이 어떻게 첨단 설비를 뚫고 대형 화재로 이어질 수 있느냐"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풍등이 무슨 미사일도 아니고 저유시설에 불을 붙이냐"부터 "풍등을 국방 무기로 개발해서 국방비 절약하자", "북한이 왜 미사일 개발했는지 의문이다. 풍등 몇 개면 해결 될 일을", "300원 풍등이 50억을 날렸다니 역사에 길이 남을 세기의 황당한 사건"이라는 등의 댓글이 쏟아졌다.

또 "풍등이 문제가 아니라 저유소 화재발생 대책이 허술한 것이 진짜 문제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총체적 부실로 드러난 송유관공사의 안전관리시스템을 집중 조사하라", "고양시 저유소 화재는 스리랑카노동자로 인해 더 큰 피해를 막았다"는 등 시설 관계자에 대한 처벌과 외국인 노동자를 옹호하는 주장이 잇따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외국인 노동자에게만 죄가 있느냐"는 내용의 게시물이 30건 이상 올라왔다. 외국인 노동자가 용의자로 지목된 사건으로는 이례적인 반응이다.

이 같은 여파 때문인지 검찰은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고, 지난 8일 긴급 체포된 A씨는 48시간 만인 10일 오후 풀려났다.

2015년 5월 동생들과 함께 비전문 취업비자(E-9)로 입국한 A씨는 공사현장을 다니며 일용직 노동자로 일해 왔고, 사고 당일 저유소 뒤편 강매터널 공사현장에 투입됐다.

그러나 이날 오전 쉬는 시간에 전날 인근 초등학교에서 열린 아버지캠프 행사에서 날아온 풍등을 주워 호기심에 불을 붙인 것이 화근이 됐다.

중실화 혐의가 인정되면 3년 이하의 금고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경찰은 검찰의 결정에 "피의자가 도주할 수 없도록 출국금지하고,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계속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9일 고양경찰서에서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 관련 풍등과 같은 제품을 공개하며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사진=정석호 기자>
아울러 수사 전담팀을 확대 편성하고 대한송유관공사 측의 과실 혐의에 대해 집중 수사에 나서기로 했다.

기존 고양경찰서 수사팀에 경기북부경찰청 광역수사대 인력 11명을 지원해 총 22명으로 구성된 전담팀을 꾸렸다.

대한송유관공사에 대한 업무상 과실 혐의가 있는지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저유소 시설에 안전 결함이 있었는지, 안전관리 메뉴얼을 제대로 준수했는지 등을 집중 수사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제기된 모든 의혹에 대해 철저히 수사할 예정"이라며 "관련분야 전문가들과 협업해 이번 화재와 관련된 종합적인 사실관계를 객관적으로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고양 저유소 화재는 대한민국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이 불러온 참사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휘발유와 저유시설 등 약 43억5천만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이번 기회를 통해 지금이라도 화재 위험성이 높은 시설에 대한 안전기준을 강화하는 등 안전관리시스템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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