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잘 날 없는 공정위, 재벌개혁 주도권 '흔들'

재벌개혁 주도하던 공정위, 재취업 비리로 위상 추락
사태 수습 과정에서 김상조 위원장 리더십에도 상처
공정위 흔들리자 "재벌개혁 반대" 의견 본격적으로 내놓는 재계
38년만에 전면개편 공정거래법 개정안 처리 놓고 논란 커질듯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사진=자료사진)
현 정부 출범 이후 재벌개혁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오던 공정거래위원회가 퇴직자 재취업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 이후로 각종 구설에 오르면서 위기를 겪고 있다.

특히 그동안 재벌개혁에 대해 공식적인 반응을 자제하던 재계에서조차 공정위의 숙원사업인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안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내면서 개혁작업에 차질이 우려된다.

◇퇴직자 재취업 비리로 공정위 신뢰에 치명상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사진=박종민 기자)
'재벌 저승사자'로 불리던 김상조 공정위원장 취임 이후 거침 없이 개혁 드라이브를 걸던 공정위가 삐긋하기 시작한 건 지난 6월 중순.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지난 6월 20일 김 위원장 취임 이후 신설돼 검찰의 옛 중앙수사부와 비견되는 기업집단국 등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공정위 고위직 출신 퇴직자들이 대기업 등에 재취업하며 특혜를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취업 특혜가 개인의 일탈이 아닌 공정위 차원의 조직적인 일탈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후 정재찬 전 공정위원장을 비롯해 전직 공정위 수뇌부들이 줄줄이 구속됐고 현직 지철호 부위원장 역시 기소되는 등 공정위는 사상 초유를 위기를 맞게 된다.

결국 검찰 수사가 시작된지 2달 만인 지난 8월 20일, 취임 이후 거침없이 내달려온 김 위원장이 국민 앞에 머리를 숙이며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김 위원장의 사과 이후 재취업 비리에 대한 비판 여론은 전보다 수그러들었지만 그 후폭풍은 계속되고 있다.

'경제검찰'로 불리며 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감시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공정위가 조직적으로 불공정 행위에 가담함으로써 신뢰에 치명상을 입은 부분이 가장 뼈아픈 대목이다.

◇'뚝' 떨어진 경제검찰 공정위 구성원 사기

재취업 비리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김 위원장의 리더십에도 생채기가 났다. 대표적으로 재취업 비리 혐의로 기소된 지 부위원장에 대한 김 위원장의 업무배제 지시 논란이다.

지 부위원장은 지난 2016년 공정위 상임위원을 마친 뒤 중소기업중앙회 상임감사로 취업할 때 취업 심사를 제대로 받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으며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현직 부위원장에 대한 업무배제는 한편으로는 당연한 조치일 수 있다.

그러나 전원위원회 구성원인 지 부위원장을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지시없이 업무에서 배제한 것으로 알려지며 전원위원회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월권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런 혼란 속에 공정위 소속 공무원들이 대거 전출을 신청하는 등 내부 사기가 땅에 떨어진 상황이다.

인사혁신처 등에 따르면 하반기 들어 공정위에서 다른 정부부처 및 지방자치단체로 전출하기 위해 신청서를 낸 직원이 6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 본부 인원이 500여 명인 점을 감안하면 10% 이상이 공정위를 떠나겠다고 마음먹은 것으로 전례가 없는 현상이라는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김상조 효과에 속앓이 하던 재계는 '상황반전'

내부에서 촉발된 위기 상황이 공정위의 위상 추락으로 이어지면서 그 반대급부로 공정위가 추진하고 있는 주요 개혁작업에 대한 저항이 강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38년만에 전편 개편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재계의 공개적인 반대 목소리다. 대한상의는 지난달 30일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에 대한 경제계 의견'을 공정위에 전달했다.

대한상의는 건의서를 통해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안 내용 중 일부는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늘릴 수 있다"며 △전속고발제 개편 △정보교환 행위 담합추정 △공익법인 의결권 제한 △내부거래 규제대상 확대 △형사처벌 조항 정비 등에 대한 개선을 건의했다.

그런데 대한상의가 지목한 5개 항목은 전면개정안 가운데 재벌개혁과 관련된 핵심적인 사항으로 '건의'라는 형식을 빌었지만 사실상 공정위가 추진하고 있는 재벌개혁의 방향에 대한 공개적인 반대를 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 취임 이후 거침없는 재벌개혁 행보에 대해 속앓이만 해오던 재계가 본격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으로 향후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논의 과정에서 야당을 중심으로 이같은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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