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으라고 준 의자가 아니래요" 판매노동자들의 '앉을 권리'

"의자 있어도 앉지 못하게 하거나 휴게실 열악"
"정부 실태점검, 형식적으로 진행될 가능성 높아"

정부가 백화점과 면세점, 대형마트 등에 의자를 비치하도록 한 지 10년 가까이 됐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제대로 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마트에서 일하며 노조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정민정씨는 "의자에 앉았더니 회사 관계자가 앉지 못하게 해서, 이유를 물었더니 '앉으라고 준 의자가 아니다'라고 말하더라"고 얘기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는 "때때로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이용할 수 있도록 의자를 갖추어 두어야 한다"고 적혀 있는데, 그 '때때로'가 언제인지는 회사가 정한다는 논리였다.

정씨는 "고객들 중에 뭐라고 하는 사람도 많지 않은데, 사업주가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면세점에서 20년간 일했다는 김인숙씨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는 면세점이라는 업종의 특성까지 작용했다.

김씨는 "면세점은 보세구역이라는 특성상 최소한의 공간에 최대한의 상품을 넣어야 해 의자가 놓는 공간은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며 "의자를 놓을 공간에 집기를 놓고, '휴게실에서 쉬면 되지 않느냐'며 쉴 수 있는 공간은 휴게실로 빼돌리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매출이 올라갈수록 휴게실과 화장실의 위치는 직원들에게서 멀어졌다고 김씨는 털어놨다. 휴게실이 "같은 층과 위층에 있으면 감사한 수준"이고 "대개는 5~10분을 쉬려고 20분을 왕복하게 된다"는 얘기였다.

이렇게 몇 년씩 일하다 보면 자연스레 족저근막염과 허리 통증, 디스크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 정씨와 김씨의 하소연이다.

이들은 정부의 조처에도 불구하고 휴식 관련 환경은 제대로 개선되지 않았다며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2009년 고용노동부는 유통대형매장에 노동자를 위한 의자를 비치하도록 했고 2011년에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도 의자와 휴게시설을 설치하도록 하는 조문이 생겼지만, 노동 환경이 열악해 이를 제대로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와 운영에 관련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취약사업장을 중심으로 실태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이들 노동자들이 소속된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은 "고용노동부의 체크리스트는 단순히 의자가 있는지 여부만 확인할 뿐"이라며 "의자가 있어도 앉지 못하는 문제, 휴게실이 있어도 제대로 사용되지 못하는 문제 등은 빠져 있어 형식적인 실태점검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2일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의자에 앉아 쉴 권리와 휴게시설에서 쉴 권리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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