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정말 북한식으로 영화를 만들어서 가스 채굴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기자인 제 친구가 평양에 갔다가 김정일이 집필한 '영화와 연출'을 구매해 제게 줬는데 읽다보니 괜찮더라고요. 자본주의 방식은 이미 가스 채굴을 정당화하는 영상들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었어요. 제게 그런 수백만달러의 예산도 없었고요. 하필 북한이었던 이유는 두 가지였어요. 일단 모든 사람들이 북한에 관심이 많으니 그것 자체가 사람들이 영화를 볼 수 있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했죠. 또 여자 감독이 북한에 가서 독특한 경험을 한다면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었죠. "
실제로 북한에 가서 목도한 북한 영화의 세계는 어떨까. 현존하는 공산주의 국가들과 달리 북한의 선전영화는 63년 동안이나 변화없이 지켜져왔다. 디지털이나 인터넷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만의 선전 방식을 고수해 온 것이다. 그 독특한 영화세계, 그리고 북한 사회에는 강력한 힘이 있었다.
"현재 북한 상태만 놓고 보면 독재국가이기 때문에 좋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주체사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굉장히 옳은 말로만 쓰여 있어요. 부자가 되기 보다는 서로 어울리고, 연대해 일어나야 한다는 철학이 담겨 있죠. 현실적 모순을 이겨내고 미래를 위해 싸워야 된다는 메시지도요. 북한 영화 '꽃파는 처녀', '피바다' 등을 봐도 그래요. 제가 북한을 선택한 건 절대 우연이 아니에요. 이 사회는 전세계 노동자들이 단합해야 한다는 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자본주의 사회는 이 이야기를 무시하기 일쑤죠. 사회주의의 중요한 이념은 하나된 민중은 패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실제로 이 세상의 많은 문제들이 자본주의 부작용으로 인해 일어나고, 저는 이 문제를 사회주의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본주의는 이미 통제불능 상태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자신들 삶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나서야 하는 거죠."
"제 영화 '가드너' 주인공의 연기를 북한 여배우가 보여줬고, 남자 주인공, 나쁜 악당 역의 연기도 모두 북한 배우들이 보여줬어요. 북한 촬영 감독이 건넨 조언도 그대로 영상에 담았죠. 그걸 '가드너'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봤고, 총체적인 의견을 나눴죠. 북한 영화인들과 호주 영화인들 간에 진정한 소통이었다고 생각해요. '가드너'라는 영화에 대해서는 협업이라는 말이 맞아요. 이 영화에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북한 영화인들의 경험이 녹아 있어요. 고통스러운 고립 상황에 있으면서도 호주 사람들을 이해하려 노력하면서 도움을 준 부분이 제게는 의미가 깊었죠. 완성된 영화('가드너')를 보여주기는 했지만 내용상 특별히 북한의 허가를 받거나 한 부분은 없어요."
북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에 감동을 받은 적도 여러 번이다. 안나 감독은 판문점에서 복무 중인 21살 군인, 그리고 배영삼 작곡가와 만났던 기억을 떠올리며 애틋한 눈빛을 그렸다.
"키가 큰 21살 군인을 판문점에서 만났는데 제 손을 잡고 놓지를 않더라고요. 차에 올라타는 순간까지 세상에 이 메시지를 전해달라고 했어요. 우리도 역시 세계와 친구가 되고 싶다고. 그 군인의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배영삼 작곡가는 우리 영화를위한 노래를 작곡했는데 북한에서는 오스카상이라고 할 수 있는 민중예술가상을 받은 유명한 분이에요. 그런데 정말 겸손하게, 우리를 위해서 노래를 작곡하고도 마음에 안들면 어떻게 할지 걱정을 하시더라고요. 함께 노래를 들어보자고 하시기에 단촐한 연주를 생각했는데 홀이 열리더니 150명 오케스트라 단원이 등장했어요. 너무 아름답고 감동적인 풍경이었죠."
"호주에는 북한 대사관이 없기 때문에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있는 북한 대사관에 메일을 보냈는데 전혀 답이 없더라고요. 그러다가 북한에서 관광회사를 운영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을 알게 됐는데 그는 이미 20년 동안 북한에서 사업을 했기 때문에 신뢰 관계가 대단했어요. 처음에는 얘기를 했더니 '북한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기다려야 한다'고 답을 했는데 제 프로젝트에 대해 전부 설명을 들은 후에는 '너무 기발한 생각이니 도와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북한의 문화정책은 주는 만큼 받아갈 수 있다는 교환정책이 기반인데 보통 서양에서 영화를 찍는 이들은 북한 사람들에게서 어떤 것들을 가지고 가려고만 하지, 주려고 하지 않았다고 해요. 영화 찍기 전에 사전답사를 하면서 소주와 평양냉면을 먹고, 노래를 부르며 친해졌는데 서로 신뢰를 쌓은 후에는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던 25편의 북한 영화를 제 영화에 삽입하도록 제공해주기도 했어요."
북한에서 지내는 동안 어려운 일도 있었다. 바로 김정일에 대한 북한 내부에서의 검열 때문이다. 안나 감독은 김정일과 관련해서 자유로운 표현을 할 수 없었고, 말과 행동을 조심하며 지내야 했다. 촬영 현장을 답사했을 당시에는 북한 영화에 '나쁜 양키' 역으로 단골 출연하는 외국계 영화 배우들에게도 적대시 당하는 상황을 겪기도 했다. 이들 배우들은 외모만 서양인일 뿐, 모두 북한 국적을 가진 북한 사람들이라고.
"김정일을 '김정일'이라고 부를 수가 없어요. 앞에 '장군님'이라든지, '위대한 지도자' 등 수식어를 붙여야 하는 분위기더라고요. 자칫 잘못하면 예의가 없어 보일까봐 굉장히 신경을 썼어요. 김정은이나 김정일 사진, 그림 등은 '풀샷'을 찍거나 뒷배경으로도 사용할 수 없고요. 신문을 읽을 때도 그들의 사진이 있으면 그 부분은 접을 수가 없더라고요. 외국계 배우들은 외모는 서양인이지만 정말 뼛속까지 북한 사람들이라 외국인인 저를 서구의 나쁜 '양키놈'으로 생각하면서 싫어하더라고요. 그 배우들은 모두 월북한 미군 조셉 드레스녹의 아들이에요. 아마 서양인의 외모로 북한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다 보니, 북한 사람들보다 더 북한 사람 같더라고요."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 같아요. 여러분들의 상황에 대해 제가 판단할 권리는 없죠. 어쨌든 저는 남북 분단이 강대국들의 일방적인 외압으로 발생한 부당한 비극이라고 생각해요. 한국 친구도 있고, 북한 친구도 있기 때문에 언젠가 통일이 돼서 함께 어울려 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봅니다. 이런 변화들이 흥미로워요."
한국 영화 100주년인 2019년, 국내 영화계는 북한 영화계와의 활발한 교류를 준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북한 영화인들과 직접 작업해 본 그에게 우리 영화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을 물어봤다.
"만약 합작 영화를 만들게 되면 너무 보고 싶어요. 한국 감독들의 영화는 어느 정도의 폭력성이 있으면서도 굉장히 완성도 있고, 화면이 독특하게 아름다워요. 북한은 최신 제작 기법이 없어 완전히 다른 세계이지만 영화 제작에 있어서는 그들 역시 완벽주의자죠. 북한이 찍는 필름 영화는 조명 등에 있어서 정말 섬세한 안목이 필요하기 때문에 장인급이 아니면 찍을 수 없어요. 가장 좋은 방법은 서로를 아티스트로서 존중하고, 함께 풀어나가고 싶은 이야기를 찾는 거라고 생각해요. 기술을 서로 교환하는 것도 좋죠. 중요한 건, 북한 영화 제작자들을 만났을 때 낙후됐다고 생각하면 안돼요. 이들의 영화에 대한 장인정신, 그 자부심이 대단하거든요.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