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김정은 맞이한 자금성 '비밀의 화원'…한국언론 첫 공개

청 건륭제 때 건립한 건복궁…자금성 다른 공간보다 자유로움 돋보여
전소됐다 복원 후 국빈외교에 사용…방중 문화예술인 위해 특별 공개

붉은 누각에 오르자, 평지에서는 그 넓이를 가늠할 수 없던 구중궁궐이 한눈에 들어왔다. 베이징 창공을 덮은 뿌연 스모그도 황금빛 전각들을 덮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아득한 정취에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비롯한 과묵한 한국 '선비들'도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자금성(紫禁城·쯔진청)은 베이징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데, 그 안에서도 중심이 되는 길이 중축선입니다. 길이 7.8km에 이르는 중축선을 따라 남북으로 늘어선 이 건물들의 높고 낮음에서 운율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12일 연춘각(延春閣·옌춘거) 2층에 선 주훙웬 고궁박물원 서기가 손으로 물결을 타며 말했다. 연춘각은 자금성 북서쪽에 자리한 건복궁(建福宮·젠푸궁) 화원의 전각 중 하나다.

청 건륭제가 1742년(재위 7년) 강남 정원을 본떠 지었다는 건복궁 화원은 '금지된 도시'(Forbidden City)로 불리는 자금성 내에서도 유독 비밀스러운 공간 중 하나로 꼽힌다.

중국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최고 국빈에게만 문을 연 건복궁 화원 내부가 한국언론에 처음 공식 공개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또한 방중 당시 이곳을 방문했다는 것이 현장을 안내한 인사들의 설명이었다.

연합뉴스는 중국 봉황위성TV 및 아리랑TV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 해외홍보문화원이 후원하는 한중 문화교류 프로그램 참여차 방중한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동행해 건복궁 내부를 둘러봤다.

넓이가 72만㎡에 이르는 자금성은 거대한 미로였다. 중심인 태화전(太和殿)을 지나 북서쪽 방향으로 8m 높이 암적색 벽 사이를 한참 걷다 보니, 그 많은 인파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비개방구역·관람객 출입 금함'이라고 적힌 표지판들과 붉은 울타리, 연이은 신원 확인 절차는 이 일대 출입이 엄격히 금지되고 있음을 말해 줬다.

마침내 도착한 건복궁 화원 입구는 생각보다 단출했다. 새로 칠한 듯한 암적색 벽면에 화석처럼 박힌 그을린 목재가 1923년 전소됐다가 2000년 홍콩 기업인의 기부로 재건된 건복궁 화원의 지난날을 말해주고 있었다.


2개 문과 좁은 회랑을 통과하자, 첫 번째 주인공인 정이헌(靜怡軒·징이쉔)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금성 내 으리으리한 전각들과는 달리 건물은 아담하나, 황색 유리기와 아래 화려한 단청으로 잔뜩 멋을 부렸다. 화재 전 자료를 기초로, 옛 모습을 고증했다는 게 현장 안내원 설명이다.

"건복궁은 건륭을 포함해 역대 황제가 소장한 보물들이 있던 곳입니다. 그런데 청 말기 환관들이 몰래 이것들을 팔기 시작했어요. 이를 안 마지막 황제 푸이(선통제)가 장부를 대조하고 조사를 시작하려는 참에 큰불이 났고 모두 불탔죠."

금박 문양이 수놓은 붉은 문을 열어젖히자, 정이헌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현대적 감각을 가미한 접견실이다.

높은 옥색 천장에는 서양식 샹들리에가 번쩍이며 내부를 비췄다. 청대 편찬된 사고전서(四庫全書)와 도자, 분재 등으로 채운 서가는 중국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듯했다. 서가 오른쪽에는 중국식 의자 8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정중앙 의자 2개 중 왼쪽은 시 주석이, 오른쪽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등 손님들이 앉았던 곳"이라는 현장 도슨트 설명에 한국 문화예술인들도 두 의자에 잠깐 몸을 기댔다.

공간을 찬찬히 둘러본 정 전 관장은 "중국 고전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살린 공간"이라면서 "현대적으로 만들었지만, 중국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고 평했다.

정이헌은 이웃한 연춘각과 회랑 하나로 이어진다. 연춘각은 지난해 11월 '황제 의전'으로 화제를 낳은 미ㆍ중 정상회담 당시 만찬이 열린 곳이다. 2008년 방중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부부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을 환영하는 연회장도 이곳이었다.

정이헌과 마찬가지로 사고전서 서재로 장식한 1층을 지나 나무계단을 오르자, 자금성 북쪽 경산공원부터 남문까지 자금성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연춘각의 진가가 드러났다. 명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작은 푸른 정자도 보였다.

이곳에 오르면, 황색 일색인 자금성 내 다른 곳과는 달리 건복궁 화원 기와는 황색과 청색을 자유롭게 섞어 사용했음을 알아차린다. 일종의 파격인 셈이다. '안전' 문제로 나무를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자금성에서 건복궁 화원만큼은 독특한 형상의 태호석과 수풀로 장식돼 있다는 점과도 연결된다.

주 서기는 "삼대전(태화전·중화전·보화전)처럼 황제가 업무를 보는 공간들은 전체가 황금색"이라면서 "황색에 청색을 함께 쓴 것은 건복궁 화원만큼은 여유를 즐기면서 사적으로 보내는 공간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총넓이가 4천㎡인 건복궁은 정이헌과 연춘각을 비롯해 경승재(敬勝齋), 중정전(中正殿) 등 6개 건물로 구성된다.

이날 동행한 봉황위성TV 유명 문화예술 MC인 왕노상은 중국 정부가 건복궁에서 국빈을 맞이하는 이유를 묻자 "중국의 유구한 문화를 자랑하는 것과 동시에, 5대 국빈을 그만큼 극진히 대접하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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