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밖 첫 반달곰 방사, 사람과 공존 가능할까

반달곰 복원사업, 지리산 개체 수 복원에서 전국 지역사회 공존으로
백두대간 타고 곰 퍼지면 인간과 갈등도 우려돼
로드킬·올무·비등산로 등 전면 개선하는 계기 돼야

그동안 지리산에만 방사해온 반달가슴곰이 경북 김천의 수도산까지 영역을 확대하면서 곰과 인간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준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달 27일 반달가슴곰 'KM-53'을 경북 김천의 김천 수도산에 방사했다.

환경부가 2004년 반달가슴곰 종 복원 사업을 시작한 이래 지리산이 아닌 다른 지역에 곰을 방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국내에서 야생 상태로 자연에 서식하는 반달가슴곰은 55개체에 달한다. 2020년 달성목표였던 반달가슴곰 50마리 복원을 2년 앞당겨 달성한 쾌거다.

이처럼 반달가슴곰이 특정 생물종이 최소 단위로 존속할 수 있는 개체 숫자인 '최소 존속개체군'인 50마리를 넘어섰지만, 그 부작용으로 서식지가 밀집돼 생존경쟁이 심해지자 곰들이 방사구역인 지리산을 탈출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번에 수도산에 방사된 KM-53도 2017년 6월 이후 2차례나 수도산에서 포획돼 지리산에 방사됐고, 지난 5월 3번째 '탈출'을 감행하다 고속도로에서 버스에 치이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KM-53은 2015년 1월에 태어난 3살짜리 수컷 반달가슴곰으로, 어미 품을 벗어나 독립할 나이다. 지리산에 서식할 수 있는 최대 개체수를 이미 넘어서면서 더 많은 먹이와 짝짓기 기회를 찾아 새로운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곰이 이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 환경부는 곰이 마음대로 이주하게 방치하면 주민과 곰이 부딪히면서 안전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곰이 탈출할 때마다 붙잡아 지리산에 방사했다.

하지만 지난 5월 '개체 중심 복원' 사업을 '지역사회 공존' 정책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곰을 지리산에 돌려보내지 않고 발견된 곳에서 그대로 살아가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앞서 KM-53이 지리산에서 수도산까지 스스로 이동한 경로를 위치추적기를 통해 확인한 결과 산청 생초-거창 감악산-숙성산-미녀봉-비계산-우두산-단지봉을 거쳤다.

애초 KM-53이 있던 지리산 서식지에서 수도산까지 거리는 90km로, 다른 곰들도 수도산 뿐 아니라 인근 산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면 곧 백두대간을 타고 전국 산지에 곰이 진출할 가능성이 크다.

환경부도 이에 발맞춰 반달가슴곰이 1회 이상 활동했던 지역 또는 활동 예상지역인 전남, 경남 등 5개 도와 17개 시·군, 시민단체 및 전문가, 국립공원관리공단 등이 참여하는 '반달가슴곰 공존협의체'를 지난 5월 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수도산 방사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도 높았다. 무엇보다도 맹수인 곰이 산 곳곳을 활보하면 언제든지 인명 피해가 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비교적 산세가 크고 장기간 곰과 인간의 공존이 검증된 지리산을 벗어나 다른 산에도 곰이 산다면 그만큼 인간과 마주칠 가능성이 높다는 걱정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반달가슴곰은 주로 나무열매 등을 먹는 채식동물로 성격이 온순하고, 동물의 본능으로 인기척을 느끼면 스스로 피하는 습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또 반달가슴곰은 사람과 만약 마주치더라도 먼저 자극 받지 않으면 쉽게 공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리를 내지 않고 뒷걸음질로 곰으로부터 벗어나고, 등을 보이고 뛰지 말아야 하는 등 주의사항을 잘 지키면 큰 사고를 피할 수 있다.

더구나 이미 국내 깊은 산에는 반달가슴곰 못지 않게 위험한 맷돼지나 삵 등 맹수가 많이 있기 때문에 곰이 방사됐다는 이유로 급작스레 인명사고가 늘어날 확률도 높지 않다.

다만 반달가슴곰이 먹이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과일이나 꿀 등 단 음식을 좋아하기 때문에 사람과 충돌할 가능성은 남아있다.

이에 대비해 정부는 곰의 성격이 예민해지는 출산시기나 활동반경이 넓어지는 이동시기에는 관련 탐방로 등에 안내 현수막과 진입금지 방송시스템을 설치하고, 대피소와 탐방로마다 곰 활동지역과 대처요령 등을 적극 안내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인근 주민들에게는 농가에 전기 울타리를 치고, 곰 퇴치 스프레이 등을 갖추도록 행정 지원을 실시하기로 했다.

광양 백운산 지역에서 올무에 걸려 숨진 채 발견된 반달가슴곰 KM-55
오히려 잘 관리된 국립공원을 벗어나면서 사람 때문에 반달가슴곰이 위험에 처하는 일도 많을 것으로 우려된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대표적 위험은 '로드킬'이다. KM-53도 지난 5월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왼쪽 앞다리가 어깨부터 팔꿈치까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다행히 사고 엿새만에 포획돼 수술을 받아 회복에 성공한 덕분에 수도산에 방사됐지만, 자칫 생명을 잃을 뻔한 위기였다.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생태보전국장은 "곰은 활동반경이 굉장히 넓은 동물이어서 백두대간을 타고 이동할텐데, 생태이동통로가 없는 도로가 많다"며 "이번 기회에 로드킬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국립공원은 휴식년제를 둬서 등산로를 폐쇄하고, 등산로를 벗어난 비등산로 이용에 대한 감시도 있다"며 "이번 반달가슴곰 방사를 계기로 시민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또 다른 위협은 곰의 '발밑'에 있다. 지난 6월 광명 백운산에서는 반달가슴곰 'KM-55'가 불법 올무에 앞발이 걸려 숨진 채 발견됐다.

지역 주민들로서는 마당과 논밭으로 내려오는 야생동물을 쫓아내기 위해 총기를 이용하는 등 다양한 수단을 사용하는데, 이 때 곰을 선별해 보호하기는 쉽지 않다.

환경부 관계자는 "불법 올무가 아닌 산지 인근 농가로서는 유해조수를 막기 위해 총기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막을 수 없지 않느냐"며 "야간에 야생동물을 발견하면 곰인지 아닌지 구분한 뒤 대응하기 어려울 텐데, 현재로서는 안전수칙과 함께 공격적인 대응을 자제해달라고 부탁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 국장도 "비단 반달가슴곰이라는 특수한 멸종위기종만의 일이 아니라 야생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사회로 나아가도록 행정적 조치와 함께 시민들의 인식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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