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은 '재판'으로 압박…국민 기본권은 '빅딜' 시도

"사법행정권 남용 관계 없다" 공개 안하던 문건에서 의혹 속속
양승태 대법원 의원 로비 과정에서 재판개입, 기본권 거래수단 이용 정황

'대법원 전경. (사진=자료사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설치를 추진하면서 의원들이 관계된 재판을 거래 대상으로 삼고, 국민 기본권을 정부와의 흥정 수단으로 삼았던 정황이 확인됐다.

31일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추가 공개한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문건 196개 가운데 '거부권행사 정국의 입법환경 전망 및 대응방안(15.6.30)'이란 제목의 문건은 상고법원 설치 입법화를 위해 의원들에게 줄을 대려던 흔적으로 가득하다. 각 의원 별 맞춤 대책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가운데 눈길을 끄는 대목은 당시 서기호 정의당 의원에 대한 '압박' 방안이다.

문건은 상고법원 설치에 부정적이던 서 의원에 대해 '강온 양면전략'을 구사하자면서 압박 방안으로 서 의원이 법원행정처장을 상대로 낸 재판을 거론한다. 판사 신분이었다가 재임용에 탈락했던 서 의원은 2012년 "연임하지 않기로 하는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냈는데, 문건은 당시 진행 중이던 해당 1심 재판에서 "변론 종결 등을 통해 심리적 압박을 주는 방안"을 언급했다.

변론 종결은 재판장이 판결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심리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해 내리는 것이다. 변론 종결 후에는 새로운 주장이나 입증이 불가능하고 그간 주장에 대한 참고서면 정도만 제출이 가능하다. 따라서 서 의원이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변론이 종결되면, 그 자체만으로 굉장한 압박이 될 수 수밖에 없다.


이밖에 '상고법원 입법을 위한 대국회전략(15.5.6)'이라는 제목의 문건은 '설득 거점 의원'으로 전병헌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설정하고, '공략 포인트'를 정리했다. 여기서 재판거래 의혹 대목은 법원에 대한 '민원'을 거래 포인트로 삼았다는 점이다.

문건은 전 의원이 "최근 개인 민원으로 법원에 먼저 연락했다"며 "민원이 해결될 경우, 이를 매개로 접촉과 설득을 추진"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법원이 들어줄 수 있는 '민원'이 재판과 관련된 것이라고 보고, 이같은 내용이 정리된 문건을 추가 제출할 것을 법원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이밖에도 해당 문건은 국회 법사위 소속이 아니지만 동료들에게 영향력이 있는 의원들까지 '거점'이라고 정리하면서, 지역구 현안이 무엇이고 거기서 법원이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지 상세히 밝히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또 국민 기본권을 거래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내용을 담은 '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한 법무부 설득방안(15.7.13)'이라는 문건도 만들었다. 법무부와 '건곤일척의 협상'을 목전에 둔다며 무협지적 발상을 드러낸 해당 문건은, '빅딜을 위한 협상 카드'로 영장 없는 체포를 활성화해 수사기관에 재량권을 부여하겠다는 내용을 제시한다.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등 국민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발상이지만 고민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같은 맥락에서 디지털 증거의 압수수색 절차 정비 및 증거능력 인정 확대 방안, 플리바게닝 제도 도입 등을 제시하면서 검찰의 바람을 '협상 카드'로 제시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법조계 안팎에서는 "법원이 자체 조사를 끝내고 2달이나 지나서야 문건을 공개한 이유가 있었다"는 반응이다. 이미 검찰은 이번에 모두 공개된 410개 문건 외에 추가로 확보한 자료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나 일본군'위안부' 관련 재판거래 정황을 포착했다. "재판거래는 없었다"는 법원의 일관된 주장은 계속 힘을 잃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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