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랑'의 임중경(강동원 분) 대의를 위해 인간병기의 몫을 충실히 해 오다, 집단을 벗어나 차츰 개인의 인간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인물이다. 그를 변하게 하는 사람은 이윤희(한효주 분)다. 임중경은 이윤희의 여동생 죽음에 책임이 있는 상황이었지만, 두 사람은 오래지 않아 서로에게 끌린다.
김지운 감독은 '인랑'을 찍은 이유로 그동안 SF와 멜로라는 장르를 해 본 적이 없다는 점을 들었다. 그만큼 '인랑'에서는 두 남녀의 멜로가 비중 있게 다뤄진다. 하지만 이에 대한 호불호는 확 갈리는 편이다. 특히 원작과 SF라는 장르에 대해 기대하고 온 관객은 뜬금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둘이 사랑에 빠지는 게 너무 빠르고 개연성도 부족해 보인다는 설명이다.
'인랑' 개봉 당일이었던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강동원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영화 속 두 사람의 관계 진전이 빨라 보인다고 하자, 강동원은 "관객들이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봤다"고 답했다.
(노컷 인터뷰 ① 강동원 "'인랑', 거절할 이유 없었다")
일문일답 이어서.
▶ 디렉터스 노트를 보면 '야만의 시대에도 사랑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서 임중경-이윤희의 로맨스가 출발했다고 한다. 본인은 가능하다고 보나.
당연히 가능하다.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 (그런 상황이 된다 해도)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고. 시위나 테러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남산타워에 평범한 사람들 엄청 많지 않았나. 혼란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도 (사랑에 빠지는 게) 가능한가 생각하면 그것도 가능할 것 같다. 남산타워 장면에서 보조출연자들이 커플이 얼마나 많았나. 다들 데이트하고 있었다. (웃음)
▶ 임중경-이윤희가 극중에서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빠르다는 반응이 많았다.
빠를 순 있다. 관객들이 그런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는 충분히 가능한 스토리라고 생각한다. 친해지는 데 빨리 친해지는 사람도 있고 오래 걸리는 사람도 있지 않나. (두 사람의 사랑이) 논리적으로 가능한지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그날 만나서 밤을 지새우는 경우도 있지 않나. 그들은 심지어 서로의 목적이 있었고. 뒤에서 이윤희가 돌변하면 '아, 저래서 둘이 진도가 빨리 나갔구나' 하고 느끼리라고 생각했다. 이윤희는 임중경을 자기한테 반하게 하는 걸 목적으로 접근한 거고, 저는 한상우(김무열 분)가 이 여자를 내게 붙인 건 이유가 있고 역으로 공안부를 쓰러뜨리려고 준비한 거였다. 작전도 하고 서로 할 수 있으면 위로도 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웃음) 어차피 작전인데 뭐. (웃음) 작전하다가 서로 좀 많이 끌리게 된 건데, 사실 둘은 처음 봤을 때 서로 상처받은 영혼이라는 걸 알아봤다. 자기와 비슷한 사람이라고. 임중경은 죽은 소녀(신은수 분)에 대한 감정 동요도 있고, 이윤희의 상처를 들으면서 동화도 되는 설정인 거다.
빨리 끝났어야 하나. 전등이 확 넘어지고 이런 것도 있었는데 그건 빼셨더라. (웃음) 저는 (멜로 부분을) 논리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그냥 남녀가 끌리면 그럴 수도 있지 싶었다. 끌림이 있고 분위기까지 되면 왜 안 돼? 이런 생각이었다. 서로에 대해 둘 다 염탐을 계속하니까. 한국에서는 전개가 빠르다고 느끼는 지점이 있는 것 같은데, 아무 정보 없이 보는 외국인들은 어떻게 생각하려나 궁금하다. '유 콜 잇 러브'를 보면 배우들 이름이 나오고 타이틀 뜨기도 전에 둘이 사랑에 빠진다. 그런 것을 보고는 왜 전개가 빠르냐고 묻지 않는다. 뭔가 우리 연기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 (웃음)
어쨌든 가상현실이니까 충분히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고 봤다. 통일이라고 하면 정말 뜬구름 같지 않았나. 요즘은 알고 썼냐고 묻지만 (시나리오 쓸 당시에는) 허무맹랑한 일이었는데, 잘하면 평양에 여행 갈 수도 있을 것 같은 분위기가 생겼으니까. 요즘 다시 주춤하긴 했지만. 아무튼 저는 되게 공감했다. 여러 시나리오 중에 근미래 버전이 제일 좋았다. 근미래라고 해도 사실 현재와 똑같은 느낌이다.
▶ 원작자인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인랑'을 칭찬했고, 특히 강동원 씨의 연기도 호평했다. 혹시 따로 들은 말이 있나.
대기실에서 뵙고 인사만 드리고 그 뒤로 못 봤다. 말씀이 되게 없으셔서 저도 인사만 하고 갔다. 따뜻한 미소를 보여주셨다. 다른 사람들은 (감독님과) 얘기를 좀 했다고 하더라. 저는 일단 말이 안 통하니까. (일본어는) 대화할 정도는 아니라서.
▶ 김지운 감독과 처음 작업했다. 현장에서는 어떤 스타일이던가.
감독님 되게 마음은 따뜻하신데 따뜻한 말을 하시는 분은 아니다. 저도 약간 비슷한 과다. 칭찬하거나 이런 게 전혀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그냥 쿨하게 촬영했다, 현장에서. (일동 웃음) (저를 칭찬한) 기사를 뒤늦게 보면서 '이 정도까지였나?' 싶더라. 편집하면서 '동원이가 고생을 많이 했구나' 생각하신 건지. (웃음) 촬영할 때 감독님도 고생을 많이 하셨다. 몸도 안 좋으셨고.
▶ 김지운 감독 작품이라서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는데, 혹시 어떤 작품을 좋아했나.
저 '장화, 홍련' 되게 좋아한다. 호러를 좋아해서. 그 부엌 밑에 있는 걸(귀신을) 잊을 수가 없다. '장화, 홍련'도 쉽게 만들 수 없는 영화였는데 되게 잘 만드셨다. 지금 생각하면 저걸 어떻게 찍을 생각을 했지 싶다.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좋았다. 그래서 '인랑'도 하셨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인랑'도 그냥 만화 같고 허무맹랑한 스토리가 될 수 있지 않나.
아무래도 예산이 너무 크니까 다들 꺼리는 지점이 있었다. 투자나 이런 게 원활하지 않았고, 시나리오 수정도 굉장히 많이 했다. 6년 전에 하자고 해 놓고 이제 개봉했으니까. 아무래도 원작이 워낙에 어둡고 스토리가 되게 복잡한 지점이 있다. 큰 사이즈 영화는 그렇게 복잡한 내용으로 성공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다들 고민 많이 해서 열심히 만들었다. 잘 됐으면 좋겠다.
당연히 흥행이 되면 좋고, 흥행해야 앞으로도 진취적으로 스텝을 밟아나갈 수 있다. 잘 안 되면 보수적으로 선택해야 하나 생각하게 되긴 한다. 그러진 않았으면 좋겠다. '인랑'이라는 영화가 워낙 새로운 도전이고, 여러 사람의 우려와 걱정도 많았는데 다 같이 힘 합쳐서 만들어 낸 영화이니 관객에게 사랑받아서 또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그동안 영화 속에서 많은 의상을 입어봤는데 본인에게 가장 잘 맞았다고 생각하는 게 있다면.
글쎄. (웃음) 잘 모르겠는데. 일단 갑옷은 맞춤 제작이었기 때문에 제 몸에 잘 맞았던 것 같다. '군도' 한복도 기억에 남는다. 그린 컬러가. 신부님들이 입는 사제복 같은 경우도 되게 특별한 경험이었다.
▶ 할리우드 진출작 '쓰나미 LA'는 어느 정도 진행됐나.
여러 가지 스케줄이 연기되면서 제작진도 바뀌었다. 9월 말에 아마 촬영에 들어갈 것 같다. 미국은 신기하게 스케줄이 안 되니까 감독님도 바뀌더라. 한국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인데. (웃음)
▶ 영화가 공개되면 할리우드에서도 강동원이라는 배우를 인지하는 이들이 생기겠다.
전 세계적으로 영화가 잘 된다면 얼굴이 알려지겠지. (웃음) 해외 진출을 해야지만 한국 영화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한국도 포화상태이니 배우가 진출해서 계속 시장을 넓혀줘야 활로가 생겨 숨이 좀 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배우들은 괜찮더라'라는 소리 듣기 위해 엄청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약간 한계를 느낄 정도로. 언어가 쉽지 않더라. 남의 나라말을 직업적으로 한다는 게. 그냥 대화만 통하면 되는 게 아니고, 대사와 감정을 전달해야 하니까. 외국 방식으로 감정 전달하는 게 쉽지 않더라. 연기 수업도 받고 리허설도 계속하는데 쉽지 않다. 열심히 해야 한다. 제가 영화 안에서 중요한 캐릭터라서 되게 잘해야 한다.
(한국에 있었으면) '이런 스트레스는 받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은 많이 했다. 외국 생활을 하는 게 생각보다 스트레스가 엄청나더라. 좋았던 건, 그냥 저를 한 사람으로만 봐 주니까 편했다. 미국은 '쟤 유명한 사람이래' 그런 게 없고 '쟤 배우래'라고 하면 '그렇구나' 하더라. 널린 게 배우고 저는 그중 한 사람일 뿐이라는 거다.
▶ 이번 '인랑'도 그렇고 할리우드 진출도 그렇고 여러 가지 도전을 하는 편인데, 강동원에게 '도전'의 의미는 무엇인가.
일단 제 성격이 도전하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 침체돼 있다고 생각하면 견디지 못한다. 모니터할 때도 전보다 더 나아졌는지, (문제점을) 얼마나 극복했는지를 많이 본다. 이번에 미국 영화 하는 것도 되게 또 도전인데 잘 돼야 한다. 제가 잘해야 앞으로 활로도 뚫릴 수 있을 것 같다. 액션이 아니라 드라마 연기를 영어로 해야 하니 저도 걱정된다. 제가 잘해야 욕 안 먹을 테니까. '저 자식 밖에 나가서 나라 망신 시키고 있어' 이런 얘기 안 들어야 할 텐데. 국위선양을 할 수 있으면 하고 싶은 마음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