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서삼릉(西三陵), 서울 태릉(泰陵), 의릉(懿陵)은 모두 1960년대 이후 건물이 들어서면서 능역(陵域)이 크게 훼손된 무덤으로 꼽힌다. 태릉에는 엘리트 체육의 요람인 태릉선수촌, 의릉에는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청사가 각각 세워졌다.
중종 계비 문정왕후가 묻힌 태릉과 그의 아들인 명종과 인순왕후가 잠든 강릉(康陵) 사이를 갈라놓은 태릉선수촌은 지난해 9월 충북 진천에 새로운 선수촌이 준공되면서 국가대표 훈련장 겸 숙소로서의 생명을 다했다.
문화재위원회는 지난 11일 대한체육회가 신청한 태릉선수촌 시설에 대한 문화재 등록 안건을 심의해 건물 3동과 운동장을 보존하고, 다른 시설은 철거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조선 제20대 임금인 경종과 계비 선의왕후 무덤인 의릉은 중앙정보부 강당이 세계유산 등재 이전인 2004년 문화재로 등록됐다. 왕릉 북쪽에 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 캠퍼스는 이전 작업을 추진 중이다.
이처럼 태릉은 세계유산센터와 협의 절차가 남기는 했지만, 세계유산 등재 9년 만에 복원 실마리를 찾았다. 의릉은 한예종이 남아 있으나, 관람 자체가 불가능하지는 않다. 상황이 가장 좋지 않은 무덤은 서삼릉이다.
◇ 젖소사업소 안에 고립된 서삼릉 효릉…일반인은 희릉·예릉만 관람
지난 12일 서삼릉에서 만난 문화재청 조선왕릉관리소 관계자는 "관람객은 중종의 첫 번째 계비인 장경왕후 무덤인 희릉(禧陵), 철종과 철인왕후가 함께 묻힌 예릉(睿陵), 왕자 무덤인 효창원과 의령원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삼릉인데 왕릉이 두 개뿐이어서 의아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며 "예릉에 봉분이 두 개여서 희릉과 합쳐 서삼릉이라고 이해하는 관람객도 있다"고 말했다.
서삼릉은 예릉, 희릉, 효릉(孝陵)으로 구성된다. 효릉은 인종과 인성왕후 무덤. 하지만 예릉, 희릉과 멀찍이 떨어진 효릉은 문화재 수리·보존과 학술조사에 필요한 경우에만 출입할 수 있어서 일반 관람객은 가지 못한다. 효릉은 젖소개량사업소 안에 섬처럼 고립돼 있다.
아울러 연산군 생모인 폐비 윤씨 무덤인 회묘(懷墓), 일제가 전국 각지에서 강제로 이전한 빈·후궁·왕자·공주 묘, 왕실에서 태어난 아기의 태를 묻은 태실(胎室)이 모여 있는 영역도 젖소개량사업소로 인해 관람이 불가능하다.
서삼릉에는 능 3기, 원 3기, 묘 47기, 태실 54기가 있다. 그런데 1960년대 능역 일부가 매각되면서 무덤과 태실 영역이 4곳으로 분리됐다. 지금은 농림축산식품부 젖소개량사업소가 68만1천여㎡, 한국마사회가 37만4천여㎡, 문화재청이 24만8천여㎡를 보유한다.
문화재청은 세계유산 등재 직후부터 서삼릉 능역을 복원한다는 계획을 세웠으나, 진척된 사항은 거의 없다.
농림부와 젖소개량사업소는 국내 유일의 종모우(種牡牛) 생산지여서 일반에 개방되면 방역에 문제가 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실제로 구제역이 확산하면 서삼릉은 관람이 중단되기도 한다.
이에 문화재청은 예릉과 효릉, 효릉과 회묘 영역을 잇는 관람로를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젖소개량사업소 땅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 현실적인 타협책을 모색한 셈이다.
관리소 관계자는 "효릉과 사업소 건물 사이에는 나무숲이 있다"며 "구제역이 공기로도 전파된다고는 하지만, 관람로를 효과적으로 만들면 방역과 차폐가 가능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어 "장기적으로는 사업소 땅에 있는 효릉 연지와 재실(齋室), 금천교 복원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2016년 시범 개방한 파주 장릉, 2년 만에 전면 개방
조선왕릉 가운데 일반 관람이 허용되지 않은 곳은 서삼릉 효릉과 회묘 영역, 중종의 첫 번째 비가 잠든 양주 온릉(溫陵)이다.
파주 장릉(長陵)도 2016년 5월까지는 문화재 훼손 우려를 이유로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다. 그해 6월 17일 시범 개방이 실시됐고, 오는 9월께 전면 개방될 예정이다.
장릉에는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 제16대 임금 인조와 인열왕후가 묻혔다. 인조 능은 본래 파주 운천리에 있었으나, 뱀과 전갈이 석물에 집을 짓고 불이 나는 피해가 잇따르자 영조 3년(1731) 현재 자리로 옮겼다.
문화재청은 전면 개방에 앞서 장릉 주변을 도는 산책로를 개설하고, 임시 사무소와 안내 표지판을 설치한다. 이후에는 문화재 지정구역 안에 있는 사유지를 매입하고 역사문화관과 화장실을 지을 방침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파주 장릉은 18세기에 무덤을 이전하면서 석물을 다시 세워서 17세기와 18세기 왕릉 석물을 동시에 볼 수 있다"며 "정식 개방 이후에도 능역 정비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