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 입맛 맞추려"…'일사불란'했던 양승태 사법부

국가배상 인정한 판사 압박 위해 학회 변호사 수임내역 조사
1심 판결 뒤집기 위해 '패스트트랙' 강구 방안 등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자료사진. (사진=윤창원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박근혜 정부의 입맛에 어긋나는 판단을 내린 법관을 압박하기 위해, 해당 법관이 속한 학회의 변호사들 수임 내역도 들여다봤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2015년 9월 김기영 부장판사가 박정희 대통령 시절 긴급조치 피해자들의 손해배 청구를 받아들이자 그가 회장으로 있던 학회를 뒤지는 데 법원행정처가 동원된 것이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2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은 뒤 기자들에게 "법원행정처가 김 부장판사가 회장으로 있던 학회 구성원들에 대한 수임사건을 조사하는 등 불이익 조치를 해 본인이 사임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변호사 시절 긴급조치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해자들을 대리했고 이날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에 소환됐다.

김 부장판사는 최근 검찰 조사에서 "1심 판결을 작성하며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을 포기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김 부장판사의 1심 판결이 이른바 박근혜 청와대와 코드를 맞춘 대법원 판결에 반하는 결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앞선 대법원 자체 조사 결과에서도 법원행정처는 대법원 판결에 반하는 하급심 판단이 나오는 것을 경계하면서, 이런 결론을 내는 법관에 대해 '직무윤리 위반'이라며 징계를 검토한 것이 드러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당시 법원행정처는 민간인에 해당하는 변호사들의 수임내역을 들추려 했다는 의혹이 추가된 것이다. 김 부장판사가 학회장으로 있던 특허학회는 법관 뿐 아니라 변호사들이 소속돼 있었는데, 이들에 대한 수임 사건 조사 등 불이익 조치 움직임이 보이자 김 부장판사가 부담을 느껴 사퇴 했다는 것이다.

법원행정처가 이미 하창우 전 대한변협 회장의 수임내역을 조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비단 법관 사찰 뿐 아니라 민간인에 대한 사찰에도 사법행정권을 불법적으로 남용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모양새다.

이 의원은 또한 양승태 법원행정처가 박정희 대통령의 긴급조치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 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뒤집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인 내용도 확인했다고 말했다.

대법원 판례에 반하는 하급심의 판결을 신속하게 교정해 다른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거나, 항소심 재판을 빠르게 진행하기 위해 '패스트트랙'과 유사하게 활용될 수 있는 예규를 발굴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 그 것이다.

실제로 당시 김 부장판사의 1심 판결은 소송 제기 2년 만에 나왔으나, 항소심은 불과 3개월만에 나왔다. 심지어 대법원은 5개월 뒤인 2016년 5월 별도의 심리 없이 원심 판단 그대로 기각해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에 힘을 보태줬다.

이 과정에는 법원행정처의 모든 기관이 동원됐다고 이 의원은 주장했다. "그 모든 것이 박근혜 정권이라는 하나의 피라미드 꼭지점을 향해 일사불란하게 작동했다"는 것이다.

변호사 수임 내역을 조사하는 데 동원된 의심을 받고 있는 전산정보관리국의 경우 현재 검찰의 자료 임의제출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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