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복무제 없어 감옥행은 '헌법불합치'…14년 만의 진전

처벌조항 합헌 결정났지만 사실상 현행 병역법 위헌으로 보는 효과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로 해석"

이진성 헌법재판소장(가운데)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허용 여부 선고를 하기 위해 자리에 앉고 있다. 헌재는 병역법 제88조1항1호 등과 관련한 위헌법률심판 사건과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4(합헌)대4(일부위헌)대1(각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다만 병역의 종류를 5가지로 구분하면서 대체복무제를 포함하지 않는 병역법 제5조1항에 대해서는 재판관 6(헌법불합치)대 3(각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하면서 2019년 12월 31일까지 개정토록 촉구했다. (사진=황진환 기자)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대체복무제도가 없어 감옥에 가는 시대는 끝났다.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 규정이 없는 병역법 5조가 헌법에 어긋난다며 내년 12월 31일까지 개정할 것을 결정했다. 2004년 대체복무제가 '국가안보를 저해할 수 있는 무리한 실험'이라며 합헌 결정이 내려진 지 14년 만이다.

헌재는 28일 병역법 5조1항 등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과 헌법소원 심판 사건을 재판관 6대 3(각하)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로 보고 이같은 개정 결정을 내렸다. 헌법불합치 판단은 법 조항이 헌법에는 위반되나 법적 공백 발생시 사회적 혼란이 예상되는 경우 법 개정 시한을 두는 것을 가리킨다.

헌재는 보충역 등 병역의 종류를 정한 병역법 5조1항에 대체복무제가 아예 반영되지 않은데서 기본권을 침해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봤다. 해당 조항이 병역의 종류를 한정적으로 열거하면서 모두가 군사훈련을 받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에 종교나 비폭력·평화주의 신념 등에 따라 입영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양심과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판단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기본권 침해 상황에 대한 전향적 인식에 따른 것이다. 2004년 헌재가 처음 대체복무제 요구에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하급심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사례가 잇따르는 등 사회적 인식도 변했다. 당장 올해에만 28건의 무죄판결이 집중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20대 양심적 병역거부자 2명에게 연달아 무죄를 선고한 서울남부지법 형사4단독 이재욱 판사는 "양심의 자유에 따른 병역 거부자들을 계속 처벌할 것이 아니라 현행 법률을 헌법합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위헌적 상태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헌재는 이날 병역법 제88조1항1호 등과 관련한 위헌법률심판 사건과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4(합헌)대4(일부위헌)대1(각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다만 병역의 종류를 5가지로 구분하면서 대체복무제를 포함하지 않는 병역법 제5조1항에 대해서는 재판관 6(헌법불합치)대 3(각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하면서 2019년 12월 31일까지 개정토록 촉구했다 (사진=황진환 기자)
다만 처벌규정인 병역법 88조 1항은 재판관 4(합헌) 대 1(일부위헌) 대 1(각하) 의견으로 합헌 결정됐다. 해당 조항은 현역입영 또는 사회복무용원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일이나 소집기일로부터 3일이 지나도 불응하면 3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로 해석된다는 분석, 사실상 헌법불합치라고 봐야 한다는 설명이 설득력이 있다. 처벌조항을 합헌으로 판단한 것은, 단순기피자까지 한꺼번에 석방해야 하는 문제 등 혼란을 고려한 것인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개별 사건에 대한 판단을 법원에 맡기겠다는 의미가 강하다. 이찬희 서울변호사회 회장은 "4인의 재판관의 위헌의견이 있고 사실상 법원에서 무죄선고를 하면 되므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하여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 생활을 했던 백종건 변호사 역시 "사실상 법원에서 무죄선고를 하면 된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며 "헌재 결정의 깊은 의미를 검토해 대법원 및 각급 법원은 무죄선고를 내려주시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편 헌재의 이날 결정에 따라 정부와 국회는 입법 준비를 거쳐 내년 말까지 병역법 5조 1항을 개정해야 한다. 개정하지 않으면 2020년 1월1일부터 해당 조항은 효력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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