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하드디스크도 통째 보관…근거없는 양승태 컴퓨터 '디가우징'

"대번관 이상 사용했다" 이유로 폐기처리가 통상절차?
양승태 민간인 신분일 때 하드디스크 디가우징, 재조사 착수 시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이 사용한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지난해 디가우징(파일 영구 삭제)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이 '통상 절차'라고 설명했지만 법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거듭 공론화되면서 재조사를 앞둔 시점에, 민간인 신분이었던 양 전 대법원장의 컴퓨터 하드디스크 디가우징 된 경위에 대해서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7일 대법원 법원행정처 등의 설명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의 폐기 시점은 지난 해 10월 31일이다.


폐기 근거에 대해 대법원 측은 "대법관 이상이 사용하던 컴퓨터는 그 직무의 특성상 임의로 재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퇴임시 폐기가 원칙"이라면서 대법원장실에서 이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디가우징 시점은 이미 관련 의혹이 불거져 2차 조사를 앞둔 때였다. 일선 판사들 사이에선 일찌감치 관련자들의 컴퓨터를 동결하라는 지적이 나온 상태였다.

무엇보다 문제는 디가우징 시점, 양 전 대법관이 퇴임을 한 민간인 신분이었다는 것이다.

양 전 대법관은 디가우징이 실시되기 한달 전 이미 자리에서 물러났다. 역시 디가우징이 된 박 전 처장의 컴퓨터의 경우, 적어도 퇴임 당일에 컴퓨터를 못쓰게 만들었다.

양 전 원장의 컴퓨터는 관련 재조사를 앞둔 시점에, 그 것도 민간인 신분의 상태에서 디가우징이 이뤄진 것이다.

게다가 이같은 조치의 법적 근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공공기록물관리법은 공공기관 업무수행의 모든 과정과 결과가 생산, 관리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지만 해당 컴퓨터들은 불용처리되는 바람에 최소한의 인수인계조차 거치지 못했다.

대법원 측이 불용처리의 근거라고 든 '전산장비운영관리지침'에도 마찬가지다. 해당 행정예규에 따르면 불용품은 수리를 해도 사용불능 상태인 전산장비를 가리킨다. 어떤 직책의 공무원이 썼는지, 어떤 직무에 소비됐는지와는 관계가 없다.

폐기처분되는 근거는 대법원의 설명처럼 '직무'와는 전혀 상관이 없고, 물리적·기능적 이유밖에 없는 셈이다.

공공자원을 대법원장이 썼다는 이유로 디가우징해 폐기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법원 관계자조차 "대법원장이 쓴 컴퓨터는 법원에서도 제일 좋은 사양일텐데, 포맷해서 다시 쓰면 되지 굳이 디가우징해서 폐기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다.

그럼에도 대법원이 해당 컴퓨터들이 불용처리 대상이었다고 강조하는 것은 디가우징, 즉 하드디스크의 정보를 '통째로' 지운 것의 명분을 찾기 위해서로 보인다. 인수인계를 통해 계속해서 쓸 컴퓨터는 굳이 디가우징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사용한 컴퓨터를 그간 '통상적으로' 디가우징해 불용처리 했으므로, 증거인멸 등의 비판은 억울하다는 대법원 설명도 논란이다. 엄연히 공공행위인 사법행정 기록물들이 아무런 기준 없이 폐기됐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김주은 활동가는 "사법부는 전반적으로 컴퓨터 안의 문서들이 공공기록물관리법의 관리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면서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 컴퓨터 같은 경우는 하드디스크째 보관을 하는데,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의 컴퓨터는 이렇게 쉽게 디가우징돼 왔다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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