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난민 심사 '소걸음'…제주 갈등 심화 우려

심사 인력 부족 등으로 심사 0건…"정부 특단의 대책" 필요

지난 18일 제주출입국·외국인청 앞마당에서 예멘 난민들이 식료품 등의 물품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최근 제주로 들어온 예멘 난민이 500여명에 이르자 수용 여부를 두고 찬반 논란이 가열되는 등 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예멘 난민 심사를 한명도 진행하지 못하는 등 관계 당국의 대응은 더디기만 한 상황이다.

◇지금껏 예멘 난민 심사 한 명도 진행 못해

22일 법무부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 따르면 제주에서 난민 신청을 한 예멘인은 549명이다.

이 가운데 출도 제한 전에 육지로 넘어가거나 자진 출국한 사람을 제외하면 현재 486명이 제주에 남아 난민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예멘 난민 문제가 논란이 된 지 한 달 가까이 되고 있지만,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는 단 한 명도 난민 심사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제주에 아랍어 통역 인력도 없을뿐더러, 심사를 담당할 인력 역시 2명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통역 인력은 다음 주 돼서야 2명 투입될 예정이다.

이밖에 360여명의 예멘인 생계비 지원 심사, 건강 검진 등의 행정 수요가 많아 정작 난민 심사에는 손도 못 대는 상황이다.

현재 인력 수준을 감안하면 난민 심사에 착수할 경우 최소 8개월 정도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 관계자는 "다른 지역에도 지속해서 난민이 들어오고 있고, 전체 난민심사관도 30여명밖에 안 돼 다른 지역의 인력을 데려올 형편이 안 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심사 인력이 부족해 행정자치부에 증원 요청을 꾸준히 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 더 큰 사회적 갈등 촉발 가능…"난민 심사 신속 필요"

이처럼 예멘 난민들이 오랜 기간 제주도에 머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현재 예멘 난민에 대한 혐오와 공포는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이슬람국가(IS) 테러범이 속해 있다' '성폭행범 등 잠재적 범죄자' '일자리 뺏는다' 등의 글이 돌고 있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추방을 요구하는 청원까지 다수 올라오고 있다.

실제로 예멘인들이 묵고 있는 숙소를 찾아가 사진을 촬영하거나 출신지를 묻고, 마을시설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등의 사례도 나오고 있다.

특히 다른 지역과 다르게 제주에는 '아랍인 공동체'가 없어 예멘인들이 제주사회에 적응하는데도 어려움이 많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난민 관련 시민단체에서는 일촉즉발 상황에 대비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자칫하다 예멘인과 도민 간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나거나, 예멘인이 범죄를 저지를 경우 더 큰 사회적 갈등을 낳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예멘인의 도외 이동이 제한돼 제주에 고립된 현 상황에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지금 진행 중인 난민 심사 절차를 빠르게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김성인 제주예멘난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전국적으로 우려가 큰 현재의 상황에서 출도 제한을 풀 수는 없기 때문에 난민 심사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해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들에게 이동의 자유를 줄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되면 '가짜 난민'에 대한 우려도 사라지고, 예멘 난민들도 전국의 아랍인 공동체로 유입돼 한국 사회에 빨리 적응하면서 사회적 갈등이 전반적으로 완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현재 수백명의 난민이 단기간에 들어온 특수한 상황인 만큼 정부에서 심사 인력을 대폭 보강하거나 심사 기간을 줄일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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