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적 북미회담 중…반목과 대결의 70년 역사 종지부 찍나

"한반도 평화와 관련한 역사적 사건 될 것"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12일 오전 싱가포르 F1 피트 빌딩에 설치된 인터내셔널미디어빌딩에서 세계 각국의 취재진이 TV 모니터에 중계된 북미 정상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세기의 회담으로 불리는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이 싱가폴에서 진행중인 가운데 이번 회담이 70년 반목과 대결로 점철된 북미관계를 청산하는 획기적 전환점이 될지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12일 오전 싱가포르 센토사섬의 카펠라호텔에서 취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진 첫 대좌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우리는 굉장한 대화를 할 것", "엄청난 성공을 거둘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또 "우리는 아주 훌륭한 관계를 맺을 것이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여기까지 오는 길이 그리 쉬운 길이 아니었다"며 "우리한테는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또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는데, 우리는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고 말했다.

남북관계 전문가들은 이날 회담이 한반도 평화와 관련한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라는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미가 이미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북미관계 정상화라는 핵심적 의제에 합의했고, 양 정상이 서로 원하는 바를 잘 알고 있으며 이행의지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북미관계는 1948년 남북이 각각 독립정부를 수립해 한반도 분단이 시작된 이후 70년 동안 적대와 불신,대립으로 점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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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정전협정으로 한국전쟁이 휴전 상태에 들어가고 이후 동서 냉전의 해체되는 등 대격변에도 북한과 미국은 갈등과 대립을 이어갔다.

1968년 미 해군의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가 원산 앞바다에서 북한에 의해 강제 나포되고 승무원들이 억류됐다.

미국은 항모전단을 원산 앞바다에 집결시키고 핵무기 탑재 전폭기를 준비한 상태에서 북한과 협상에 들어갔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이라는 정식 명칭을 사용한 사과문에 서명하는 굴욕적인 합의를 통해 승무원들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1969년 미군 정찰기가 북한 전투기에 의해 동해상에서 격추당한 사건, 1976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미군과 북한 경비병들이 충돌해 미국 장교 2명이 살해당한 '도끼 만행 사건' 등이 잇따라 벌어지면서 미국의 대북 인식은 극도로 악화됐다.

북한은 구소련의 해체 등 탈냉전 시대를 맞아 평화협정을 통한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꾀하려 했지만 관계정상화는 요원했고 북한은 핵개발에 골몰했다.

북한은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고 미국을 상대로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1994년 제네바 합의로 1차 북핵 위기가 봉합된 뒤 북·미관계는 급진전하는 듯 했지만 줄곧 합의와 파기가 반복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집권 직후인 2012년에도 북한 핵동결·미사일 발사 유예와 미국의 대북 식량 지원이 뼈대인 2·29 합의가 발표됐지만 북한이 2개월 뒤 장거리로켓 '은하 3호'를 발사하며 백지화됐다.

이후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를 중단하고 핵능력 고도화에 매달리기 시작해 지난해 20여차례 미사일 발사시험을 하고 11월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인 화성 15형을 시험 발사하고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북한의 핵무력 완성 선언과 미국 본토 위협이라는 한계상황에 도달해서야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게 된 것이다.

70년간 이어진 적대와 불신,대립의 북미관계가 이날 역사적 정상회담을 계기로 청산의 길로 들어서길 세계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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